파리 카르나발레 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아녜스 바르다의 파리, 여기저기>는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사진가로서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가 남긴 초기 작업을 조명했다.
다게르 거리 86번지에 있는 작업실을 거점으로, 바르다는 파리가 품은 빛과 그림자를 담아내며 사진에서 영화로 점차 시선을 확장했다.
하나의 매체에 머무르지 않고 ‘여기저기’를 자유롭게 오가던 바르다의 일생,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바르다의 세계가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숨 쉰다.

Agnes Varda, Autoportrait dans son studio, rue Daguerre, Paris 14e, 1956 ©Succession Agnes Varda

파리를 포착한 예술가는 많지만, 오직 아녜스 바르다의 눈으로 바라본 파리가 있다. 지난 4월 9일부터 8월 24일까지 파리를 대표하는 역사 박물관인 카르나발레(Musée Carnavalet) 에서 열린 전시 <아녜스 바르다의 파리, 여기저기(Le Paris d’Agnès Varda, de-ci, de-là)> 는 영화감독이기 이전에 사진가로서 바르다가 남긴, 우리에게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사진 작업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Agnès Varda, Les Plages d’Agnès, photogramme, 2007 ©Ciné-Tamaris
Collier Schorr, Agnes Varda dans sa cour rue Daguerre, Paris 14e Seance pour Interview magazine, 22 juillet 2018, n° 521 Courtesy Collier Schorr

아녜스 바르다는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삶의 모든 시기에 걸쳐 다채로운 방식으로 예술을 끌어안았다. 1940년대 말 파리 국립극장의 젊은 배우들을 프레임에 담으며 사진가로 경력을 시작했고, 소규모 제작비로 완성한 첫 장편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4)은 누벨바그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70대에는 다큐멘터리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2000)에서 탐구한 주제를 토대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설치 작업 ‘파타투토피아(Patatutopia)’를 선보이며 표현 영역을 한 차원 더 확장했다. 다큐멘터리와 픽션 사이를 오가며 세상을 끊임없이 관찰하던 그는 말년에 이르러 발표한 자전적 다큐멘터리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로 반세기가 넘는 예술적 여정에 아름다운 종지부를 찍었다.

2 Agnes Varda, Fellini a la porte de Vanves, Paris 14e, mars 1956
©Succession Agne`s Varda

전시의 중심에는 파리를 무대로 피어난 바르다 특유의 유머와 서정, 기발한 감각이 담긴 초기 사진 작업이 놓였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1951년부터 타계하기 직전까지 70여 년 동안 그의 창작 공간이자 삶의 터전이던 파리 14구 다게르 거리의 작업실은 바르다의 예술이 시작된 요람과도 같은 곳이다. 좁은 마당에 화장실 하나뿐인 이 작은 공간에 가족과 친구, 동료 예술가, 연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바르다는 다정한 눈으로 그들의 초상을 담았다. 1954년, 영화 <길>의 개봉을 맞아 파리를 찾은 이탈리아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가 철거 현장의 돌무더기 사이를 거니는 모습,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가 길가에서 거대한 모빌을 들고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던 장면이 모두 다게르 거리 인근에서 포착되었다.

<Le Paris d’Agne`s Varda, de-ci, de-la> 전시 전경.

1956년, 바르다는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상징과도 같은 단발머리를 한 채, 또렷한 눈으로 렌즈를 응시하는 바르다의 결연한 얼굴에는 평생 동안 그가 지켜온 독립적인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이후 다큐멘터리에서 직접 카메라 앞에 서거나 내레이션을 덧입히던 방식 또한 자신을 하나의 이미지로 끊임없이 재현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Photographie de Liliane de Kermadec, Quand Cleo va dans la cabine de cinema,
on y projette un film en accelere: Les Fiances du pont Mac Donald avec Anna Karina et Jean-Luc Godard, 1961
©Cine-Tamaris
Agnes Varda, Delphine Seyrig, mars 1961 ©Succession Agnes Varda

다게르 거리 작업실 마당에서 출발한 바르다의 시선은 몽파르나스, 센강 왼쪽 기슭 등 사랑하던 파리의 동네 곳곳으로 확장되었다. 그는 낭만적인 도시의 면면 대신 사람들이 보지 못하거나 흘려보내던 파리의 숨은 얼굴을 포착했다. 그을음과 먼지로 뒤덮인 거리, 가난에 시달리는 시민, 주변부로 밀려난 여성들의 일상이 프레임의 중심에 놓였다. 밭의 이삭을 줍듯 사람과 만남, 감정을 주워 모아 셔터를 누르던 태도는 곧 그의 영화로 일관되게 이어졌다. 정지된 사진은 움직임을 얻어 흘러가는 도시의 시간과 공명하는 여성 주인공의 내면을 담아낸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다게르 거리를 배경으로 상인과 이웃들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다게레오타입>으로 이어졌다.

<Le Paris d’Agnes Varda, de-ci, de-la> 전시 전경.
단편 다큐멘터리 <오페라 무페 거리> 아카이브 북.
Photographie de Robert Picard, Valerie Mairesse, Robert Dadies et Agnes Varda sur le tournage du film d’Agnes Varda L’une Chante, l’autre pas, 1976
Robert Picard ©Cine`-Tamaris

아녜스 바르다의 길고 다채로운 예술 세계를 조명한 이번 전시는 가족이 정성스럽게 보존해온 아카이브 덕분에 가능했다. 다게르 거리의 작업실에서 바르다의 예술 세계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순간을 시기마다 가장 생생히 목격해온 딸 로잘리 바르다(Rosalie Varda)는, 생전 바르다가 이끌던 제작사 시네-타마리스(Ciné-Tamaris)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그는 2만7천여 장의 네거티브 사진, 메모와 일기, 미완으로 남은 영화 프로젝트로 이루어진 방대한 아카이브를 카르나발레 뮤지엄에 제공했고, 이 덕분에 생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아녜스 바르다의 기록들이 세상과 만날 수 있었다.

Agnes Varda, Daguerreotypes(tirages d’exploitation), 1975 ©Cine´-Tamaris
Agnes Varda, Alexander Calder devant son atelier, Paris 14e, octobre 1954 ©Succession Agnes Varda /
2025 Calder Foundation, New York / ADAGP, Paris

하나의 매체로는 담아낼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이고, 삶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던 예술가. 다큐멘터리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여기저기 다니는 게 자연스러워요. 어떤 말을 했다가 동시에 그 반대의 말을 하기도 하죠. 그렇게 해야 덜 갇힌 기분이 들어요. 단 하나의 상태에만 머무르지 않으니까요.” ‘여기저기(de-ci, de-là)’라는 표현은 그의 삶과 예술을 집약해준다. 세상을 자신의 작업 공간으로 삼으며 동시에 서로 반대되는 것을 말할 수 있었던 예술가, 그의 자유가 깃든 사진 일부를 지면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