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통과 체질의 상관관계
몇 년째 이어진 두통을 늘 타이레놀 한 알로 버텨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이 습관은 어느덧 일주일에 한 번은 약에 의지해야 하는 생활로 굳어졌다. 하지만 진통제는 늘 순간적으로 통증을 덜어줄 뿐 원인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최근 한 지인이 8체질 검사를 받고 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8개로 나눈 체질에 따라 식이요법과 치료를 달리하는 한의학인데, 생각보다 훨씬 효과가 좋다고 했다. 눈으로 봐야 믿는 직관적인 성격인 나는 한의원에서 어떤 병을 즉각적으로 고칠 수 있다는 것에 다소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예사로 넘기길 며칠, 갑자기 마음속에서 어떤 결심이 용솟음치는 통에 자연스럽게 한의원을 찾았다. 취재가 아닌 체험의 마음으로, 그리고 치료 목적으로. 큰 병은 아니지만 사소하게 나를 자극하는 불편감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다. 그리고 과연 만성질환처럼 지닌 이 모든 증상이 말끔히 사라진 몸 상태가 가능할지 궁금했다.
장기의 유기적 연결
“불편한 증상은 모두 이야기해주세요. 사소한 것까지요. 심리적이라고 느끼는 증상도 괜찮습니다.” 진료실에 앉자 새시대 한의원 김기인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두통을 가장 먼저 언급했고, 이어 변비, 소화불량,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감까지 털어놓았다. 김기인 원장은 맥을 짚은 후 내 증상을 하나로 꿰어 설명했다. 두통은 신경성이나 스트레스성이 아니라, 위 기능 저하와 혈액순환 부진에서 비롯된다는 것. 음식이 잘 소화되지 않으면 어깨와 목 근육이 긴장하고, 이 긴장이 뇌로 가는 혈류를 막아 두통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었다. 그는 내 체질을 ‘8체질 의학’으로 풀어냈다. 8체질 의학에서 체질을 분류하는 방법은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마다 지닌 장기의 크기로 금양, 금음, 목양, 목음, 토양, 토음, 수양, 수음 이렇게 여덟 가지 체질로 나누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간이 폐보다 강한 체질은 그 상태보다 간이 더 강해지거나 폐가 약해지면 병이 생기고, 위가 강한 사람은 지금보다 위의 성질이 더 강해지면 불편감이 나타난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내장의 크기가 다르고 튼튼하고 약한 내장도 제각기 다르다고 한다. 나는 위가 강하고 심장이 작아 육식이 잘 맞는 토양 체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문제는 위가 운동할 수 있는 내장 근육이 약해 소화에 어려움을 겪고 그로 인해 변비가 생기는 것. 충격적인 건 내가 그동안 건강식이라 믿고 즐겨 먹던 음식이 문제를 키운다는 사실이었다. 닭고기, 현미, 홍삼, 매운 음식, 커피. 모두 강한 위를 더욱 자극하고 위장 근육 강화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라니! 김기인 원장이 덧붙인 “호랑이가 풀을 먹으면 아픈 것과 같은 이치”라는 말이 꽤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회사의 한 후배는 어릴 적 없어서 못 먹을 만큼 좋아하던 갑각류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냄새만 맡아도 메쓰꺼운 것이 이상해 다른 한의원에서 8체질 검사를 받았는데, 5분간의 맥진 끝에 수음 체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음 체질은 신장이 강하고 위장이 약한 체질로, 찬 음식과 어패류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후배는 이후에 추천받은 식단으로 바꾼 뒤, 식후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던 배변 습관이 안정적으로 잡힌 것을 체감했다고 놀라워했다. 솔직히 이것이 식단으로 인한 변화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후 조금씩 올바른 식습관을 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또한 수음 체질은 땀 흘리는 고강도 운동보다는 수영이나 발레, 요가처럼 부드럽고 리듬감 있는 운동이 적합하다며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조언까지 들었다고 한다. 후배가 진단받은 광덕안정한방병원의 김경민 원장은 8체질은 예방의학에 가까우므로 맹신하기보단 가이드로 삼으라고 당부했다.
치료도 초개인화로
8체질 진단 후 치료는 세 갈래다. 침과 약, 식이요법. 침과 약은 약해진 위 근육과 혈관을 재생하고 체력 저하로 무너진 자율신경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여기에 식이요법을 병행하는데, 이는 매일 먹는 음식으로 사소한 자극을 줄이고 약한 장기의 근육을 다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토양 체질인 나는 고춧가루가 들어 있는 모든 음식, 닭고기와 홍삼은 금물. 그 대신 돼지고기와 소고기는 매일 먹으라는 처방을 받았다. 신체로 드러나는 변화는 어느 정도 설명을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이해되었지만, 흥미로운 부분은 불안도 8체질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었다. 나는 내 일을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자부하지만, 무조건 잘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김기인 원장은 그것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체력이 저하되어 감정을 조절하는 자율신경이 약해진 결과라는 다소 충격적인 진단을 내렸다. 순간 마음속에 여러 갈래의 생각이 일었다. 과연 맞는 말인가 싶은 약간의 의심과 그럴 수도 있겠다는 무언의 동의. 원인을 알 수 없었으니 해법 또한 명쾌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느낌이 들었다. 상담이 끝난 후 자리에 누워 침을 맞았다. 8체질 의학에서는 살에 한동안 꽂고 있는 침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튕기는 듯한 자극만 주는 체질침을 사용한다. 나는 왼쪽 손목 부근과 발등에 30~40회 침을 맞았다. 강한 위를 눌러주는 치료라고 했다. 이후 약 3일 치 환약을 처방받고 침 치료와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몸의 변화를 확인하기로 했다.
미묘하고 사소한 변화
병원에 다녀온 뒤 매일 끼니에 소량이라도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추가하고, 매운 음식과 카페인은 갖은 유혹에도 일절 먹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찾은 병원에서 나의 몸 상태 변화를 물었다. 약을 먹고 치료받은 지 며칠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동안 줄곧 묘하게 피곤해 몸이 나아진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 터라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김기인 원장은 “잠이 오거나 졸린가요?”라고 다시 물었고, 나는 사실 지금도 많이 피곤하다고 답했다. 그는 또다시 당연한 결과라는 다소 충격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침을 맞거나 약재를 사용하면 교감신경의 흥분이 가라앉고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졸리는 증상이 나타나며, 면역반응이 활발해질 때는 졸음과 무기력 같은 피로감이 동반된다는 설명이었다. 잠잘 때 면역력이 높아지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몸이 회복 모드로 들어가면서 졸리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 다른 변화는 매일 유산균을 챙겨 먹어도 일주일에 한 번 화장실에 갈까 말까 하던 내가 배변 활동이 원활해졌다는 것. 이것이 치료 효과라고 단정하기엔 이른 감이 있었지만, 일상생활의 불편이 하나 줄어들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체질마다 사람마다
SNS에서 피트니스와 명상, 건강 콘텐츠가 일상적으로 소비되며, 불안과 우울에 대해 더욱 솔직한 세대. 맞춤형 건강 웰니스 트렌드에 누구보다 발빠르게 소비하는 세대가 요즘의 MZ, 그리고 나아가 잘파 세대다. 8체질은 세상에 등장한지 70년 가까이 되었지만, 이런 초개인화된 맞춤형 시스템이 일상적인 잘파 세대의 니즈에 부합해 작년부터 올해까지 꾸준히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경험과학을 바탕으로 직관적인 틀을 먼저 세운 뒤 사람을 끼워 맞추는 방식이어서 지나치게 많은 예외가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또 체질 분류가 맥진에 의존하는 만큼 표준화된 진단 도구가 부족하고, 동일인이 다른 한의사에게서 다른 체질로 진단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맞춤 의학’이라는 개념 자체는 현대 의학에서도 꾸준히 강조하는 키워드다. 8체질 의학이 학문적 근거를 얼마나 더 보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개개인이 자신의 생활 습관을 돌아보고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는 계기는 될 수 있다. 체질을 맹신할 필요는 없지만, 몸과 건강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언어로 받아들일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더구나 완벽히 입증된 의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8체질 의학은 그 틈새를 메우려는 오래된 시도일지도 모른다. 과학적 검증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이 방법론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몸은 모두 같지 않으며, 각자 고유의 균형과 리듬이 있다는 것. 이 사실을 다시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건강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8체질별 특징 체크 리스트
금양 · 금음 | 폐·대장 중심
특징 호흡기, 피부 트러블에 취약, 체력 소모 빠른 편.
음식 반응 담백한 곡류, 채소, 생선류가 잘 맞는 편.
목양 · 목음 | 간·담낭 중심
특징 스트레스와 혈압에 민감하며 간 기능이 약해지면 쉽게 피로함.
음식 반응 채소, 과일, 생선류가 잘 맞으며 육류를 먹으면 답답함 호소.
토양 · 토음 | 위·비장 중심
특징 소화기, 변비 문제에 취약하며 위가 강한 체질.
음식 반응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잘 맞고, 닭고기와 매운 음식은 위를 자극함.
수양 · 수음 | 신장·방광 중심
특징 하체 냉증, 부종, 비뇨기 질환에 취약함.
음식 반응 따뜻한 국물과 곡류가 잘 맞고 해산물과 찬 음식은 복통 유발.
*위 내용은 자가 관찰용 가이드이며, 의학적 확정 진단은 전문가와 상담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