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 카메라(Leica Camera)가 올해로 45회를 맞이한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어워드(The Leica Oskar Barnack Award, 이하 LOBA)‘가 2025년의 수상자를 공개했습니다.

1914년, 최초의 35mm 소형 카메라인 ‘우르-라이카(Ur-Leica)’를 발명한 기계공학자 오스카 바르낙(Oskar Barnack)의 이름을 딴 이 상은, 그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상 중 하나인데요. 이번에도 어김없이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300여 개의 작품이 접수되었고, 5인의 저명한 심사 위원단이 엄격한 심사를 통해 최종 수상작을 선정했습니다.

올해의 대상은 알레한드로 세가라(Alejandro Cegarra)의 장기 프로젝트 ‘두 개의 장벽(The Two Walls)’이, 신인상은 세르게이 두베(Serghei Duve)의 ‘밝은 기억(Bright Memory)’ 시리즈가 차지했습니다.

대상의 영예를 안은 알레한드로 세가라는 1989년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나 2017년 멕시코로 터전을 옮긴 뒤, 뉴욕타임스, 내셔널 지오그래픽, 워싱턴 포스트 등 세계 유수의 매체에 작품을 실어 온 주목할 만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입니다.

그의 수상작 ‘두 개의 장벽(The Two Walls)’은 작가 본인이 베네수엘라에서 멕시코로 이주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2018년 시작한 흑백 다큐멘터리 시리즈인데요. 이민자들과 그 가족들이 국경 장벽 사이에서 맞닥뜨리는 비인도적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분단과 이주,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정제된 감각으로 풀어냈죠. 특히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물리적 경계뿐 아니라, 두 국가의 정책 공조 아래 더욱 공고해진 행정적·심리적·사회적 장벽까지 함께 포착해 깊은 울림을 전했습니다.

The walker. A migrant walks atop a parked freight train known as The Beast on the outskirts of Piedras Negras, October 8, 2023 ©Alejandro Cegarra

세가라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경계의 이중성을 ‘장벽’이라는 공간과 제도를 통해 병치하며 이주 현실을 거시적 정책과 미시적 삶의 레이어로 동시에 가시화했습니다. 또한 ‘위험’과 ‘결핍’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의 낙인 서사를 벗어나 관계와 사랑, 기쁨의 순간들까지 담아내며 인간 존엄에 기반한 따뜻한 시선을 견지했고, 이를 통해 관객이 보다 정서적으로 작품에 접근할 수 있도록 섬세한 균형을 이뤄냈죠.

이번 수상으로 세가라는 LOBA 역사에 또 하나의 특별한 이력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2014년 ‘다비드 타워의 또 다른 면(The Other Side of the Tower of David)’ 시리즈로 LOBA 신인상을 받은 바 있는데요. 약 11년이 지난 올해 ‘두 개의 장벽’으로 대상까지 거머쥐며, LOBA 역사상 처음으로 신인상과 대상의 영예를 모두 안은 사진가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세가라는 “2014년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신인상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나도 이 사진의 세계에 속할 수 있겠구나’라는 가능성을 느꼈다”며 “올해 ‘두 개의 장벽’으로 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11년의 세이 하나의 원을 닫고 또 다른 원을 여는 순간처럼 느껴졌다”고 진심 어린 소감을 전했습니다.

신인상을 수상한 세르게이 두베는 1999년 몰도바 키시너우에서 태어나 이듬해 독일 하노버로 이주해 지내왔는데요. 독일과 러시아의 언어와 문화가 공존하는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한 그는,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작업의 중심축으로 삼아왔죠. 그의 사진은 언제나 개인적 기억과 정서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이 머무는 지점은 보다 확장된 정치적 현실이며, 결국에는 구조적 권력과 정체성의 관계를 서사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The grandparents’ house, Tiraspol 2022 ©Serghei Duve

2025년 LOBA 신인상 수상작 ‘밝은 기억(Bright Memory)’은 러시아어권에서 고인을 추모할 때 자주 사용하는 관용 표현으로, 상실의 아픔 속에서도 마음에 남는 따스한 기억의 잔광을 의미합니다. 두베는 조부의 죽음을 계기로 이 표현을 작품의 정서적 키워드이자 제목으로 삼았죠.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약 3년에 걸쳐 티라스폴과 드네스트롭스크를 중심으로 촬영된 이 시리즈는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트란스니스트리아(Transnistria)와 가족 간의 정서적 관계를 주제로 하는데요. 한 가족의 여름·식탁·작별·연애 같은 사적인 순간이 분단·전쟁·이주·정보전의 정치적 풍경 위에 자연스럽게 겹치죠. 두베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주제로 시선을 확장하며 정체성과 분단, 그리고 전쟁의 그림자를 드러냈습니다.

©Leica Camera

LOBA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4만 유로(약 6,580만 원)와 함께 1만 유로(약 1,650만 원) 상당의 라이카 카메라 장비가, 신인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1만 유로와 함께 ‘라이카 Q3’ 카메라가 수여됩니다. 한편 이번 LOBA 시상식은 ‘라이카 100주년: 세기의 목격자(100 Years of Leica: Witness to a Century)’라는 슬로건 아래 열린 라이카 100주년 기념 행사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이기도 했는데요. 올해 수상작 전시는 독일 베츨라의 에른스트 라이츠 뮤지엄(Ernst Leitz Museum)에서 첫선을 보인 뒤, 전 세계 라이카 갤러리와 주요 사진 페스티벌로 순회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