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좋아해버려요.” 맘껏 좋아하고, 실컷 빠져드는 순간을 숨기지 않는 사람.
배우 최현욱이 반짝이는 순간들.

마리끌레르와 3년 만의 만남입니다. 외모는 그때 그대로인데, 분위기가 퍽 달라 보여요.
차분해진 것 같아요. 최근에 부쩍 성숙해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 것 같아요. 저도 요즘은 잔잔하고 고요한 제 모습이 더 마음에 들고요. 그런데 아직 애 같은 면도 남아 있긴 해요.(웃음)
스무 살이 됐을 때 어른의 모습을 “면허 따서 드라이브하는 사람”이라 말한 적이 있어요.
직관적이고 단순했네요. 그런데 여전히 드라이브하는 사람은 못 됐어요. 차가 없거든요. 운전면허도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랑 <약한영웅 Class 1>에 운전하는 장면이 있어서 딴 거지, 작품 아니었으면 없었을 거예요.
지금 어른의 모습을 다시 표현해본다면요? 어떤 사람이 떠올라요?
잘 모르겠어요. 지난 시간 동안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래서 더 정의 내리기 어려워요. 다만 나이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더 명확한 판단 기준이 된다고 생각해요. 말하고 보니 정리가 되네요. 본받고 싶은 생각이나 태도를 지닌 사람이요. 묻기도 전에 앞서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말고요.
배우로서는 어때요?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와 지금, 생각이나 태도가 달라졌나요?
달라졌어요. 아주 많이 달라졌죠.
어떤 변화인가요?
처음 시작했을 땐 모든 걸 무(無)의 상태에서 순수하게 바라봤던 것 같아요. 에너지도 막 넘쳐흘렀고요. 이제는 상황과 사람을 보려고 해요. 촬영장에 가면 그날 분위기가 어떤지, 내 앞에 있는 배우의 컨디션은 어떤지 그런 걸 더 예민하게 살피게 돼요. 가끔은 이런 태도가 지나치게 강해져서 저를 해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건강한 방식으로 잘 활용하면 좋은 관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내 것만 보는 게 아니라 작품 전체를 넓게 볼 수 있는 관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맞아요. 결국엔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가 고민이지만, 그 앞에 ‘이 작품 안에서’가 붙으면 시선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전체를 보고 그 안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이 순서로 가야 해요.
유수민 감독님이 “나보다 더 넓은 시선을 가진 것 같다”는 말을 괜히 한 게 아니네요.(웃음)
그건 진짜, 정말, 절대 아니고요. 감독님이 유독 제가 나름대로 해석하고 준비해 간 부분을 잘 봐주셨어요. <약한영웅 Class 1>은 시나리오가 되게 딥했어요. ‘수호’도 더 냉소적인 모습이었는데, 극 이 살려면 텐션이 높은 애가 한 명은 있어야 된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목소리도 조금 더 높여서 했는데, 그걸 감독님이 받아주셨어요. 시나리오와는 조금 달라진 수호를요.




그러잖아도 어제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약한영웅 Class 1>을 다시 봤는데, 역시 좋더라고요. ‘시은’(박지훈), ‘수호’(최현욱), ‘범석’(홍경). 세 친구의 관계는 다시 봐도 눈부시게 예쁘고, 안타깝고, 애잔해요.
물론 (제가 출연한) 모든 작품을 사랑하지만, <약한영웅 Class 1>은 느낌이 좀 달라요. 여운이 되게 오래가는 것 같아요. 나온 지 벌써 3년이 다 돼가는데, 계속 호명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감독님과 함께한 배우들, 타이밍,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진 작품인 것 같아요.
지난 작품 얘기를 했으니, 반대로 미래의 작품으로 가볼게요. 인터뷰하기 전 영상 콘텐츠에서 ‘나의 영화로운 순간’에 대해 얘기했잖아요. 언급한 작품 현장이 내년에 공개 예정인 드라마 <맨 끝줄 소년> 맞죠?
네, 맞아요. 3일 전에 촬영을 마쳤어요. 되게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든 캐릭터고 현장이었어요. 분명히 촬영하면서 쉽지 않은 순간도 있었는데, 그래서 배울 점이 많았던 귀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 ‘귀함’에는 함께 호흡을 맞춘 최민식 배우도 한몫하겠죠?
물론이에요. 저 남자한테 손 편지 처음 써봤어요. 감사, 존경, 애정, 이 모든 진심을 담은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선배님께 편지를 썼어요. 같이 작품 하면서 연기를 알려주셨고, 대화하는 법을 알려주셨고, 그냥 모든 것을 배웠어요. 인생의 가르침을 얻었어요.
연기가 아니라 인생의 가르침을요?
인생을 배운 시간이었어요. 현장에서 배운 거지만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태도를 진짜 많이 얻었어요.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각기 다른 캐릭터의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청춘, 청년’의 면면이 담겨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최현욱 배우를 청춘의 표상으로 떠올리는 듯해요.
저는 한 번도 스스로 청춘이라는 느낌을 가져본 적은 없는데요. 그런 건 있어요. 제가 되게 좋은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아니면 여행지를 가거나, 그렇게 경이로운 순간을 만나면 쉽게 빠져들거든요. 확 좋아해버려요. 그래서 “지금 너무 좋다”는 말도 불쑥 잘 꺼내요. 친구들이 맨날 뭐가 좋으냐고 묻는데, 그럼 “좋으니까 좋지” 해요. 그런 마음이 아마 제 얼굴에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잘은 모르지만, 그 모습을 사람들이 청춘답다고 말하는 걸까 생각해요.
나의 청춘이 가장 아름답고 진하게 담긴 작품을 고른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반짝이는 워터멜론>인 것 같아요. 그때 제일 신나게 놀았어요. 손정현 감독님께서 저를 그냥 풀어놔주셨거든요. 이야기 안에서 실컷 뛰어논 작품이에요.



어떤 영화나 음악에 빠져드는지도 궁금하네요. 많이 웃고, 많이 울면서 맘껏 좋아한 작품이요.
최근에 애플tv+에서 방영한 <더 스튜디오>라는 드라마를 혼자 배를 부여잡고 깔깔 웃으면서 봤어요. 영화제작 스튜디오의 뒷이야기를 담은 블랙코미디인데, 특히 9화랑 10화가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몇 번을 돌려 봤어요. 그리고 반대로 울었던 건 여지없이 <신과 함께>고요. 아, 그런데 <약한영웅 Class 1>이랑 <반짝이는 워터멜론>을 보면서도 엄청 울었어요.
본인의 작품을 온전히 관객으로 즐긴다는 말로도 들리네요.
전 관객으로 봐요. 물론 ‘저 장면에서 저렇게 할걸’ 싶긴 하지만, 그보다 작품 자체를 감상하려는 마음이 더 커요. 그리고 저는 제가 나오는 작품이 제일 재미있던데요.(웃음)
음악은요? 유독 작품에서 밴드 음악과 인연이 깊은데요.
그래서 신기해요. 제가 실제로 밴드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오아시스 엄청 좋아하고요. 유다빈밴드 음악도 많이 들어요.
자신의 연기는 얼마큼 좋아해요? 스스로에게도 ‘좋다’는 말을 잘하는 편인가요?
늘 모르겠다고 해요. 그러니까 잘했다, 못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거예요. 항상 아쉬운 지점은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걸 생각하다 현장에서 다른 중요한 걸 놓칠 것 같은 거죠. 제 연기는 감독님과 관객이 판단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럼 목표도 세우지 않는 편인가요? 배우로서의 성취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원래 없었는데 최근에 생겼어요. (최)민식 선배님이 연기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면, 이분은 정말 이야기 안에서 살아 계시는구나 싶어요. 물론 기술적 역량도 엄청나지만, 되게 순수한 몰입이 느껴져요. 그게 너무 좋아서 저도 배우로 사는 내내 끝까지 그 힘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실제적인 목표도 하나 있긴 한데요. 말을 해도 되려나…?
이미 말을 꺼냈으니, 해줘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아직은 너무 먼 이야기고,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싶어서요. 음… 그냥 말할게요. 제가 연기하기 전에 야구를 오래 했거든요. 제 야구 인생을 시나리오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일대기라기보다는 제가 겪은 그 시절의 야구 문화를 아주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싶어요.
어떤 장르가 될 것 같아요?
꽤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일 거예요. 다만 제가 직접 쓰고 만드는 거니까 어쩔 수 없이 제 면면이 들어가서 결국은 블랙코미디가 될 것 같아요.
말 나온 김에 주연배우까지 정해볼까요?
제가 하고 싶어요. 이야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저니까요. 꼭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언젠가 그 영화의 배우이자 작가로 이야기를 나눌 날이 오기를 바라요. 언제까지 연기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배우를 하는 동안에 꼭 만들어보고 싶어요. 기회가 온다면 야구 하며 배운 대로 쫄지 않고 해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