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로 보내거나 보내지는 연쇄적인 흐름 속에서, 남겨지고 발견된 것들에 주목한 전시 <sent in spun found>.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차연서와 뉴욕에 거주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허지은(Gi (Ginny) Huo)의 2인전 <sent in spun found>는 각자의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가족, 종교, 사회적 맥락 속에서 발생한 정동을 독자적인 시각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들이 다루는 서사는 직접적으로 교차하지 않지만 ‘특정한 믿음’을 중심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태도, 혹은 이를 향한 반복적이고 끈질긴 감응의 고리에서 유사한 결을 드러내는데요. 그렇게 두 작가의 궤적은 충돌하면서 동시에 느슨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죠.
전시 제목인 ‘sent in spun found’는 모두 과거형 동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보내다’의 send, ‘회전하다’의 spin, ‘찾다’의 find, 이 세 단어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두 작가에게 깊이 각인된 시도들을 공통으로 관통하는 언어인데요. 동시에 이 단어들에는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해진’, ‘움직인’, ‘발견된’ 어떤 시간의 흐름과 동사적인 몸짓이 담겨 있습니다. 작가들은 이 전시를 통해 그 움직임이 공간 속에서 다시 살아나길, 관람자의 시선 안에서 다시 한번 ‘보내지고, 회전하고, 발견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죠.
허지은의 작업은 더 나은 삶과 종교적 소명을 좇아 태평양을 건넌 가족의 서사에서 출발합니다. 차연서는 아버지가 남긴 물건과 기억을 재료로 삼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존재들의 비통함을 조용히 돌보고 어루만지는 작업을 이어왔는데요. 이 모든 과정에서 두 작가는 각자의 유산을 되새기고 새롭게 이해하며, 그것을 타인과 나누는 행위를 통해 소외된 이야기들과 주변화된 존재들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지속하죠.


허지은은 이번 전시에서 ‘섬’을 뜻하는 라틴어 어원 ‘insula’에서 파생된 여러 개념들을 엮어냅니다. 고립(isolation)과 보호(protection), 그리고 설탕과 연결된 인슐린(insulin)까지, 서로 다른 결을 가진 단어들은 그의 작업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죠.
전시장 외부 윈도우 갤러리에 설치된 그의 작업 <라이에로 가는 길>(2025)은 이번 전시의 입구이자 출구처럼 기능하는데요. 작가가 20년 만에 고향 하와이의 라이에(Laie)를 다시 찾으며 촬영한 이 작업은 과거 부모님의 집 바로 뒤편에 있던 사탕수수밭이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자동차를 타고 굽이진 길을 따라가며 바라본 듯한 짙은 녹음의 풍경은 신호가 끊긴 화면처럼 도중에 멈추거나 장면이 중첩되며 이어지고, 그 이미지들 사이에 영상이 흐르듯 삽입돼 개인적 기억과 풍경의 흔적이 하나로 겹치죠.


천장에서 바닥까지 길게 늘어진 고무 밴드는 대량 생산과 유통의 상징인 컨베이어 벨트를 은유하고, 뒤엉킨 전선 설치물은 작가가 한국의 할머니 집 창문 너머로 바라보던 전신주와 전화선의 풍경에서 영감받았는데요. 이처럼 익숙한 것에서 출발한 형태들은 관람자에게 거시적 구조와 미시적 단서들을 동시에 직면하게 하고 시점을 전환하도록 유도합니다. 또한 그는 라이에 사탕수수 농장의 아카이브 이미지를 작고 섬세한 드로잉으로 옮겨오거나, 미국 부모님의 집 외벽 단열재를 초근접 촬영한 이미지를 작업에 반영해 기억과 유산의 모호하고 분절된 흔적들을 환기하죠.



차연서의 작업은 몸과 연결된 삶, 그리고 끊어진 삶의 주변을 맴도는 움직임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단절된 존재들을 다시 잇고 돌보며, 잊히거나 밀려난 감정과 기억을 지금 이 순간으로 천천히 끌어올리죠. 특히 최근 몇 년간 집중해 온 닥종이 작업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남겨진 닥종이 무더기를 마주하면서 시작됐는데요. 짙고 깊은 색으로 염색한 닥종이를 잘라내며 만들어진 연작 <축제>(2023~)는 마치 천도재 의식과도 닮은 창작 과정을 통해 죽음과 상실을 기리고,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 속 죽음들을 조용히 응시하죠.
그렇게 그에게 떠넘겨지듯 남겨진 종이들은 이번 전시에서 다시 오려지고 직조돼 서로의 꼬리를 무는 다채로운 색의 ‘순환하는 뱀’으로 변모하는데요. 끝없이 회전하는 이 환영은 흩어지고 사라진 몸들의 비통함을 위무하는 동시에, 퍼포먼스 <저 고양이들! (아홉 목숨, 부활하신 어머니)>의 무대로 확장되죠.
한편 그는 녹으로 얼룩진 흰 가면을 허공에 매달아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몸들이 그 자체로 이곳에 존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데요. 또, 낡은 손대패를 지지대로 삼아 만든 혀 조각과 그에 얽혀 있는 핥기, 씻기, 대패질해 다듬는 행위를 통해 초대의 제스처를 확장합니다. 작가, 퍼포머, 관객을 가리지 않고 전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몸들을 향해 열린 환대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이 전시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은 저녁 6시, 해가 지고 나면 발견할 수 있는데요. 조명이 낮아지고 이미지와 사물의 형태만 희미하게 드러나는 순간 전시장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환되며, 보내졌던 것들과 남겨진 것들, 그리고 지나온 여정과 다시 이어지는 움직임들이 공간 속에 조용히 드러나죠. 그리고 그것들은 결국 작가들이 계속해서 되뇌어온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다시 연결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수렴합니다.
두 작가의 반가운 충돌과 연결이 빚어낸 전시 <sent in spun found>는 10월 22일부터 12월 13일까지 서울 종로5가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에서 펼쳐집니다. 시간과 감각, 서사가 교차하는 이 특별한 장면을 직접 마주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