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갗에 쌀쌀한 바람이 스친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긴 더위가 툭 끊기듯 물러가고, 계절은 어느새 고요하고 서늘한 얼굴로 돌아와 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벌써 10년 전, 수능을 앞두고 가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살아내던 그 시절. 오로지 한 줄의 합격 통보만을 전부처럼 믿고 달렸던 고등학생,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조금은 어설프게 어른이 되어가던 스무 살 무렵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참 잘 버텼고, 꽤 괜찮은 어른으로 자라고 있다고. 그러니 너무 겁내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 마음을 담아 프래그런스 키트를 선물해주고 싶다. 바로 푸에기아 1833의 비타코라 데 콤포지시온. 향을 고르고 조합하는 순간까지도 온전히 나의 감각으로 채워지는 이 키트는 왠지 그 시절의 나에게 조용한 위로처럼 다가올 것만 같다. 롤스로이스와 협업해 고급 가죽 시트의 묵직한 잔향이 느껴지는 ‘더 스피릿’, 스파이시한 우드에 럼주의 깊이를 더한 ‘비글’, 투 베로즈 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플로르 데 우에소’, 포근한 머스크에 벚꽃이 스며든 ‘코모레비’, 건조한 나뭇결이 빈티지하게 퍼지는 ‘자카란다’, 은은한 타바코와 과일, 발사믹 노트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뉴욕’까지. 여섯 가지 향을 클래식한 우드 케이스에 담아 마치 오래도록 종종 꺼내 보고 싶은 나만의 기억 상자 같은 키트를 완성했다. 그 시절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건네는 향들로, 이 계절에 조금은 덜 막막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마리끌레르> 뷰티 에디터 송현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