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뉴욕 컬렉션을 방문한 때의 일이다. 앨리스 앤 올리비아 쇼의 백스테이지에서 모델들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취재하던 중 한 담당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한국인 맞죠?” “어떻게 알았어요?” “한국 여자들의 특징이 있어요. 잘 정돈된 팬시한 네일과 한결같이 빛나는 피부요.” 생각해보니 그랬다. 한국의 전통적 미의 기준은 정결함과 단아함이다. 그리고 그 인상을 완성하는 핵심에는 언제나 맑고 깨끗한 피부가 있다. 그 덕분에 세안법부터 제품 레이어링까지, 한국의 스킨케어 루틴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세분화되어 발전했다. 클린 뷰티부터 스킨케어 성분의 함량이 높은 기능성 제품까지 선택지도 다양하고, 이 철저한 관리 문화는 피부과 시술과도 맞닿아 있다. 실제로 해외 여러 브랜드에서 한국의 시술 성분을 제품에 적용할 정도로, 한국의 피부 과학은 어느덧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탄탄한 바탕 위에서 탄생한 베이스 메이크업은 단순히 화장을 덧입히는 행위가 아니라 빛을 설계하는 기술에 가깝다. 얇고 촘촘한 결, 피부 안쪽에서 번져 나오는 듯한 윤기, 그리고 스킨케어의 연장선에서 비롯된 투명한 텍스처. ‘커버’보다 ‘결’을, ‘보정’보다 ‘생기’를 중시하는 철학이 바로 한국식 베이스의 핵심이다. K-뷰티를 대표하는 브랜드들은 세럼과 결합한 묽은 텍스처의 파운데이션, 자연스러운 톤 업 기능을 겸비한 선크림 등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의 경계를 허문 하이브리드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으로 이 미학을 세계에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세계는 지금 K-베이스에 주목할까? 그 배경에는 K-팝과 K-콘텐츠의 비주얼 코드가 있다. 무대 위 아이돌의 무결점 피부, 드라마 속 생기 넘치는 여주인공의 결광이 SNS를 타고 확산되며 빛나는 피부가 곧 자기 관리와 자신감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틱톡의 #GlowUpChallenge, ‘Clean Girl Aesthetic’ 같은 글로벌 트렌드 또한 K-글로와 맞물리며 거대한 문화 현상을 낳았다. 뷰티업계 관계자들은 “이 트렌드는 완벽하게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럽지만, 내면에서 빛이 우러나는 듯한 건강한 광채가 핵심”이라며 “K-베이스는 외면의 화장이 아니라 자기 돌봄의 서사로 읽히고 있다”고 분석한다.
최근 패션위크의 백스테이지는 이런 한국식 베이스를 구현한 제품을 공식적으로 사용하며, 세계화의 흐름을 더욱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꾸레쥬(Courrèges) 2026 S/S 쇼에서는 코스알엑스의 더마 스킨케어 제품으로 피부의 광채를 살린 후 얇고 투명한 베이스로 마무리했다. 까르벵(Carven)은 루치아 피카의 지휘 아래 티르티르를 백스테이지 파트너로 초청해 런웨이 조명 아래에서도 유려하게 빛나는 글로 스킨 피니시를 완성했다. 특히 티르티르는 파리 컬렉션의 공식 백스테이지에 초대된 첫 K-뷰티 메이크업 브랜드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에르마노 설비노(Ermanno Scervino)의 백스테이지를 책임진 디어달리아는 파운데이션을 여러 겹 쌓기보다 피부 본연의 결을 살리고 눈두덩이에도 동일하게 터치해 건강한 윤기를 구현했다. 이런 정교한 피부 표현은 우수한 제품력이 기반이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섬세한 스킬 또한 필요로 한다. 이번 디올 2026 S/S 컬렉션에 참석한 블랙핑크 지수의 메이크업을 담당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황희정은 이렇게 조언한다. “글로 메이크업의 핵심은 전체적으로 빛이 나게 바르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조각하듯 새기는 거예요. 본격적인 베이스 전 리퀴드 하이라이터를 콧대와 광대뼈 부근에 얇게 터치한 후, 파운데이션을 미세하게 쌓아올리면 자연스러운 양감을 살릴 수 있죠.”
K-뷰티의 위상은 이미 런웨이 이전부터 글로벌 리테일 채널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세포라(Sephora)는 K-뷰티 섹션을 따로 마련해 조선미녀, 라네즈, 에르보리앙 등 스킨케어 중심의 브랜드를 선보인 지 오래다. 또 미국의 울타 뷰티(Ulta Beauty)는 ‘K-뷰티 월드’를 신설해 롬앤, 네오젠, 아임프롬 등 8개 스킨케어 및 색조 브랜드의 제품 2백여 종을 새로 입점시켰다. 해외에서 열광적으로 주목받으며 국내를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가 된 달바는 해외에서 스킨케어 매출이 매년 2배씩 성장 중이며, 러시아 럭셔리 H&B 스토어 ‘골드애플(Gold Apple)’에서는 아이패치 제품이 전체 브랜드 중 판매 1위를 기록했다. 티르티르는 앞서 언급한 울타 뷰티의 프레스티지 존에 입점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처럼 K-베이스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가 공감하는 문화 현상이 되었다. 그 이유는 빛나는 피부는 전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보편적 언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피로와 경쟁, 과잉의 시대에 사람들은 자신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방법으로 보다 생기 있는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이와 접목한 건강하고 투명한 피부를 꿈꾼다. K-베이스는 그 마음에 응답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결국 K-베이스는 기술이자 문화이며, 나아가 세계가 공유하는 정서적 아름다움의 코드다. 정교한 꾸밈 속에 자연스러움을 담고, 투명함 속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 그 섬세한 균형감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가 K-베이스에 매혹되는 이유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