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최근 알게 된 한 젠지에게서 들은 말이다. 그는 내게 하루가 멀다 하고 관심이 담긴 연락을 해왔지만, 늘 “그렇군요”, “아하” 같은 짧은 추임새만 남겼다. 딱 사흘째 되던 날, 나는 그 한결같은 대답에 터져버렸다. “왜 그렇게 할 말 없게 대답해요? 차라리 답장을 하지 말든지.” 나도 모르게 ‘요즘 세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직장인이 된 후 ‘MZ세대’라며 수없이 농담의 대상이 되었던 내가 이제는 또 다른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책임감이 필요한 관계가 부담스러워 얕고 넓은 관계를 택했다며 변명하듯 말했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일엔 언제나 책임이 따르는데, 그 무게를 버겁게 느끼는 것이다. 나는 그제야 그의 단답이 ‘무심함’이 아닌, 일종의 ‘방어’였음을 이해했다. 곰곰이 되짚어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은 개인도, 특정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SNS에서 ‘좋아요’만 주고받는 수많은 관계를 떠올려보면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의 시작은 조심스럽고 끝맺음은 점점 흐릿해진다. 우리는 어쩌면 관계에 중독된 채, 종잇장처럼 얇은 인연만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런던 사우스뱅크 대학교 필 리드(Phil Reed) 교수의 2017년 연구에 따르면 관계 중독은 단순한 외로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보상 회로가 과도하게 자극된 상태로 보인다. 진짜 관계가 아닌 ‘관계의 그림자’에도 뇌는 쉽게 반응하며 존재를 증명받는 듯한 착각 속에서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하지만 멘털 뷰티의 관점에서 보면 회복은 관계의 수가 아니라 감정의 깊이에서 비롯된다. 진심이 오가는 대화는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을 촉진해 마음의 안정을 돕지만, 이와 반대로 피상적인 관계는 가벼운 도파민만을 남긴다. ‘좋아요’보다 ‘괜찮아?’라는 한마디가 마음을 더 오래 따뜻하게 만드는 이유다. 관계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마음은 오히려 진정성 있는 연결을 원한다. 누군가의 반응보다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 단단해지는 것. 그것이 건강한 관계의 시작점이며 이 시대에 필요한 멘털 뷰티다.
물론 인간의 가치관은 다양하기에 ‘좋은 관계’의 의미를 하나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서로를 통해 더 단단해지는 것이 관계의 궁극적인 가치라는 점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름이 곧 뷰티 그룹이 된 에스티 로더와 그의 남편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조셉 로더의 관계는 좋은 예가 된다. 두 사람은 함께 브랜드를 일구며 신뢰와 헌신의 의미를 증명했다. 에스티 로더는 늘 “내 성공의 절반은 남편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조셉 로더는 사업의 구조를 세워 내실을 다졌으며, 에스티 로더는 그 위에 뷰티 감성과 시선을 더했다.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이 관계는 단순한 부부의 협업을 넘어 서로의 가능성을 확장한 ‘공존의 예술’이었다. 화려함보다 신뢰를, 빠른 성취보다 꾸준함을 택한 그들의 태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관계는 점점 더 빠르게 소비되고, 갈수록 얇아지고 있다. 주식이나 자산 가치가 하락했을 때 손실을 감수하고 매도하는 행위인 ‘손절매’에서 파생된 ‘손절’이라는 단어는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생일 선물로 받은 물건의 값이 내가 준 것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문자 답장이 매번 늦어서, 친구가 함께 찍은 사진에 자신만 보정해 업로드해서 등 관계를 ‘손절’하는 이유마저 다양하고 사소하다. 특정 관계를 끊어낸 후엔 손가락 몇 번의 스와이프로 손쉽게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데도 우리는 왜 더 공허해질까. 좋은 관계란 완벽한 합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도 함께 머물려는 의지이자, 인간의 어설픔을 감싸안는 느슨한 온기임을 잊은 채 말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깊은 관계를 바라는 건 욕심이라고. 오죽하면 친구이자 연인인 듯한, 얕지만 다기능적 관계인 ‘FWB(Friend With Benefit)’에 중독된 채 여러 명과 얕은 유대를 유지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세상이 각박해서, 이전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아서라며 주변과 환경을 탓하지만 결국 모든 관계의 방향은 자신에게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렇기에 인간은 매일의 삶 속에서 스스로를 단단히 세워야 한다. 수많은 뷰티 스페셜리스트가 말하듯, 진정한 아름다움은 언제나 내면으로부터 비롯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서 예를 든 에스티 로더는 “성공을 꿈꾸지 않았다. 그걸 위해 일했을 뿐이다.(I never dreamed about success. I worked for it.)”라며, 일을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자아를 증명하고 불안을 다스리는 명상적 행위로 대했다. 바비 브라운은 일평생을 가벼운 운동과 건강에 이로운 식단으로 자신을 돌봤고, 샬롯 틸버리는 매일 아침 메이크업을 통해 자신감을 복돋우며 일상 속에서 내면의 확신을 다졌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뷰티 루틴을 단지 겉모습을 꾸미는 일로 여긴다. 특히 ‘꾸밈’에 대한 시선이 극단으로 나뉜 지금, 뷰티 루틴이 정말 자신을 위한 일인지, 아니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그러나 샬롯 틸버리에게 뷰티는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독이고 하루를 단단히 여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그는 이를 통해 내면의 확신을 다졌고, 실제로 이런 뷰티 루틴은 정신적 안정과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2020년 미국 로체스터 대학교의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자기 돌봄 행위는 뇌의 보상 회로를 안정화하고 스트레스 반응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메이크업과 스킨케어 과정에서 비롯되는 반복적이고 섬세한 손의 움직임, 향과 촉감 같은 감각 자극은 자율신경계를 조절하며 과도하게 활성화된 도파민 반응을 진정시키고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 이처럼 멘털 뷰티 케어에는 정답이 없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가꾸고 회복하는 것, 이 과정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아름다운 루틴이다
관계는 사람 사이에 피어나는 하나의 꽃과 닮았다. 색도 형태도 정답은 없지만, 순간의 도파민으로 급히 피어난 꽃이 오래 향을 품기란 쉽지 않다. 결국 흔들리지 않는 관계는 단단한 내면에서 나온다. 관계 중독이라 불리는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연결을 갈망하지만, 진짜 관계는 의외로 고요 속에서 자란다. 어쩌면 그 고요가 건네는 미세한 마음의 움직임이, 우리가 놓치고 지냈던 ‘시작점’을 다시 불러오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 자리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서로’를 향할 작은 걸음을 준비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