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가장 희미한 시대에 믿음과 믿음의 실패 사이에서. Good News, Bad World.

변성현 재킷, 컷아웃 터틀넥 모두 Yuji, 화이트 셔츠 Maison Margiela, 선글라스 Balenciaga, 팬츠와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어링은 본인 소장품.
류승범 스티치 롤넥 스웨터, 실크 자카드 파자마 셔츠 모두 Burberry, 선글라스 Gucci by Kering Eyewear, 레이어드한 콰트로 링 모두 Boucheron.
홍경 재킷, 셔츠, 타이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라이더 재킷과 선글라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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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 재킷, 셔츠, 타이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라이더 재킷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류승범 스티치 롤넥 스웨터 Burberry, 스퀘어 프레임 선글라스 Gucci by Kering Eyewear.
오늘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만 봐도 세 분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지, 영화 촬영 현장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되더라고요.
경구 저는 말수가 별로 없어서 대화를 이끌고 이어가는 사람이 아닌데, 승범이가 그걸 잘해요. 경이도 조곤조곤 질문을 잘해 주니까.
승범 우리 셋이 세대가 조금씩 달라서 오히려 더 편한 면이 있어요. 저는 중간이잖아요. 형에게도, 동생에게도 어려움이 없으니까. 그래서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에도 좋았어요.
경 저도 그래요. 승범 선배님은 촬영 내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고, 경구 선배님은 현장이 좀 힘들어질 때쯤 특유의 유머를 툭툭 던지실 때가 있어요. 모두를 기분 좋게 하는.
경구 근데 화보 사진 찍으러 올 때는 기분이 별로 안 좋아요.(일동 웃음)
늘 끌려오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웃음)
경 그래도 오늘은 좀 즐겁지 않으셨나요, 선배님?
경구 덕분에 그랬지.
승범 현장에서 보면 형님 특유의 츤데레라고 하나요? 무심함 속에 살가움과 따뜻함이 있어요. 애정이 툭툭 느껴질 때가. 우리 경이는 되게 스위트한, 스위트 가이예요. 빵에 발라 먹어야 되나?(일동 웃음) 경구 형님은 제가 배우로서 “형님,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고 표현하시는 거예요?” 하고 물어보기도 했거든요. 이럴 때 어떤 선배님들은 앉아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우리 경구 형님은 툭툭 “아, 몰라~”.
경구 아니, 진짜 몰라서 그래. 내 코가 석 자인데 어떻게 상담을 해.
승범 근데 변성현 감독님한테 들어보면 대기실에서 혼자 열심히 대본 보고 있다가 누군가 문 열고 들어가면 갑자기 안 본 척 대본을 휙 저 멀리 던지신대요.
경구 에이! 말도 안 돼.(일동 웃음)
설경구 배우님과는 두 번째 화보 촬영인데요. “이제 고만하죠” 하면서도 끝내 다 해주시더라고요. 그것도 너무나 멋지게요.
경구 모르니까. 하라는 대로 하는 거예요.
경 그 점이 경구 선배님의 마력이죠. 마력.
영화 <굿뉴스> 이야기를 시작할까요. 처음 시나리오를 접하며 이 영화의 어떤 점에 주목했나요?
경구 저는 변성현 감독의 네 작품에 연이어 출연한 배우인데, 그간의 네 작품이 모두 달라요. 시대극이라지만 판타지적인 작품도 있고, 누아르라지만 만화적이었고요. <굿뉴스>는 실제 사건을 있는 그대로 풀지 않고 블랙코미디를 입혀서 오버스럽고 익살스럽게 시나리오를 썼는데, 이 글이 영상으로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어요. 변성현 감독이 콘티 작업을 굉장히 열심히 해요. 한 번 하고, 또 하고 그 과정에서 영화가 보이긴 하는데, 유난히 이번 영화는 어떻게 담길지 궁금하더라고요. 대작이기도 하고.
승범 블랙코미디가 지닌 이중성이 매력적이었어요. 많은 배우가 그렇듯 저 역시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이야기와 역할에 호기심이 먼저 생기거든요. 배우로서 할 말이 많을 것 같고요. 지금까지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를 크게 경험한 적이 없는데, <굿뉴스> 시나리오에서 블랙코미디의 장르적 매력이 전해졌어요.
경 시나리오도 시나리오지만 <굿뉴스>는 제게 20대의 마지막을 보내는, 그 관문을 지나는 작품이에요. 20대를 지나며 느낀 것이 있기에 이를 어떻게든 작품으로 풀어내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 작품 안에 있었고, 그간 품고 있던 마음이 고명이라는 역할에 담겨 있었어요. 그래서 자신의 열망 때문에 맹렬히 돌진하고, 세상의 벽에 부딪히며 넘어지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에 다시 세상을 바라보고 대면하는 모습까지도 모두 좋았어요.
세 인물의 욕망이 충돌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각자의 욕망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자 했나요?
경구 ‘아무개’라는 인물은 희생당하고 소모된 수많은 사람 중 하나죠. 영광은 없고 주민등록증 하나를 얻는 인물인데, 또 실화와 비교했을 때 실제 인물이 아니잖아요. 상황 속에 이질적으로 툭 던져진 사람으로 군복을 입은 중앙정보부 회의실에 혼자 섞이지 못한 채 앉아 있고, 거기에 모자까지 씌워놨잖아요. 그래서 헤맸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감독님은 계산이 정확히 있었어요. 저는 그 계산을 믿고 많이 물어봤죠. 대부분의 순간에 오버하고 있지만, 어느 찰나의 순간에는 아무개 본인의 진짜 얼굴과 표정을 보여줘요. 감독님이 타이밍을 잡아주면 거기에 맞춰 연기했어요. 이 작품은 변성현 감독의 치밀한 계산에 따라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듯 완성된 것 같아요. 아무개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거기에 온전히 맡겼고요.
승범 ‘박상현’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 감독님이 제게 “아이 같은 면을 잃지 말아달라”고 했어요. 근데 저는 막상 하려니 매칭이 어려운 거예요. 시나리오를 처음 볼 때는 소위 말하는 빌런으로 읽혔거든요. 한데 아이 같은 면으로 활기를 불어넣어달라니 혼란스러웠죠. 근데 시간 충분히 갖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의도들이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아이답다는 것이 자신의 욕망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 채로 좇는 욕망 같았어요. 그래서 드러날 때 더 무서운 욕망이 될 수 있는. 왜 어린아이들을 보면 그렇잖아요. 아이가 같은 장난감이 있는데 또 사달라고 떼쓸 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 있거든요. 근데 정작 아이는 그 욕망에 대해 몰라요. 이제 제가 아이가 있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아이의 모습을 지켜달라는 변성현 감독님의 말이 ‘자기 욕망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구나, 앞뒤 없이 ‘이거 갖고 싶어!’ 하는 모습을 내비치길 원한 거구나 했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상현을 연기할 때 욕망에 대한 서사는 배제하고, 그저 장난감을 갖고 싶은 아이의 마음으로 연기한 것 같아요.
경구 계산 없는 순수함이 오히려 더 무서울 수 있겠다. 어느 날 세트장에서 승범이가 한마디 딱 하는 걸 들었어요. 박수를 한 번 크게 치면서 “이제 좀 알겠다. 알 것 같다”고 했어요. 그때였구나.
경 저도 들었어요. 기억나요. 경구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부럽다, 씨”.(일동 웃음)
승범 형님, 근데 머리로는 아는데 몸으로 표현이 안 되면 이게 큰일 나는 거예요. 아는데 안 돼.
경 감독님이 이 영화의 심장은 고명일 수 있다고 하셨어요. 이 친구가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거든요. 욕망과 윤리 사이에 놓이는 상황에 대해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동시에 그걸 따라가는 재미가 있었어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홍경 재킷 Dolce & Gabbana, 레더 글러브 Ernest W. Baker,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류승범 수트 셋업 Kimseoryong Homme, 아이웨어 Gentle Monster × Maison Margiela,
레이어드한 T 브레이슬릿 모두 Tiffany & Co., 슬리브리스 톱과 로퍼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링 Repossi,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승범 배우님은 아직 영화를 못 보셨죠. 경구 배우님, 경 배우님이 각각 좋아하는 장면을 꼽아볼까요.
경 지금 바로 떠오르는 장면은 쉽게 지나칠 장면일 것 같기도 한데요. 승범 선배님이 작게 걸리는 장면이에요. 영부인 역의 (전)도연 선배님 앞에 저희 둘이 앉아 있거든요. 우리는 뒤통수만 찍히는 장면이에요. 고명은 이 말을 듣고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며 비스듬히 앉아 있는데, 중앙정보부장은 꼿꼿하게 앉아서 경청하며 고개를 좌우로 막 흔드는 장면이에요. 진짜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고갯짓을 하는데….
승범 또 왜 그런 짓을 했지, 내가? (웃음)
경 자지러집니다. 진짜로. 영화에서 대단히 핵심적인 순간은 아닐 수 있지만, 개인적 취향으로는 그 장면이 좋아요.
경구 저도 지금 당장은 전도연 씨 나오는 장면, 윤경호, 박해수 배우 나오는 순간들이 떠올라요.
본인들이 나오는 장면은요?
경구 마지막에 고명에게 솔직한 아무개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계를 주는 신이 있어요. 시계를 던져 주는데, 너무 미안한 나머지 앞에서는 못 꺼내고 옆으로 밀어서 훅 던지거든요. 그게 아무개의 진심이었을 거예요.
경 저도 촬영하면서도 가장 좋았고,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도 좋았던 장면이 그 엔딩이에요. 고명은 영화 내내 아무개에게 ‘제발 진심으로 대답해줘’ 하고 끊임없이 요구해요. 그러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이 사람이 한 번 툭 진심을 던져주고 떠나가거든요. 되게 울컥하는 장면이에요.
맞아요. 마지막 장면은 기성세대가 품는 미안함과 연민, 그리고 청년이 느끼는 상실감이 동시에 들죠. 그 복잡한 감정의 레이어가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 남고요.
경 시나리오 읽을 때 블랙코미디를 외피로 삼지만 이건 완벽한 제너레이션 영화다 하고 느꼈어요. 젊은이가 세상에 부딪히고 일어나서 다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경구 이 영화를 맛으로 표현하면 쓴맛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고명 때문에 쓴맛이 나.
경 제가 세대를 대표할 만한 사람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망설여지긴 하지만, 이 영화가 동시대적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알겠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제 또래, 혹은 조금 어린 세대가 느낄 법한 결핍이나 상실의 감정이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경구 선배님의 말처럼 이야기를 따라 재미있게 달리다 보면 그 끝에 이르러 씁쓸함이 남는 부분이 있어요. 근데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세상이 이런 거야’ 하고 닫히는 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히려 ‘세상은 이렇다.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바라볼래, 어떻게 살아갈래?’ 하고 문을 열어둔 채 마무리되죠. 그래서 저에게는 이 영화가 새드 엔딩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세 인물이 같이 혹은 따로 충돌하는 장면도 꽤 많죠.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느끼기도 했나요?
경구 특정 장면에서라기보다 저는 중앙정보부장 역할에 승범 씨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아했어요. 중앙정보부장 하면 느껴지는 전형성이 있잖아요. 권위주의적 관료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승범이가 연기하면 의외성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경이는 어떤 배우인지 잘 몰랐어요. 이번 작품을 같이 하면서 알게 됐죠.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한다는 거. 궁금한 게 있으면 변 감독에게 전화해 밤새 통화를 한대요.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죠. “풀리냐, 그게?”(일동 웃음) 욕심도 야망도 커서 고명과도 맞닿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젊으니까.
승범 저는 캐릭터 때문에 죄송한 점이 많았죠. 갑자기 형님 볼을 꼬집고, 경이 가슴팍을 때리고… 슛이 들어가면 이제 이걸 해야 하는데 제가 어떻게 경구 형님의 볼을…
경구 너 꼬집었잖어.(일동 웃음)
승범 경이에게도 미안한 게, 내 연기를 한 것뿐인데 어느 순간 고명과 경이가 겹쳐 보여서 괜히 너무 미안한 거예요. 그 쓸쓸함이 느껴지니까.
경 앞에서 짧게 이야기했지만, 경구 선배님께는 제가 내내 ‘너의 진심을 보여줘, 그래서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 거야?’ 하고 끊임없이 물어요. 근데 아무개는 그 질문에 매번 변화구를 던지는 것 같았거든요. 같이 연기하면서도 선배님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던져주시는 거 같았어요. 저는 정신을 못 차리고 그 공을 넋 놓고 바라보는 때가 많았는데, 그러다 마지막에 다다라서 160km의 공을 제 몸 쪽으로 꽉 차게 던져주시는 거예요. 그때 정말 울컥했어요. 또 그런 순간들이 기억에 남아요. 승범 선배님의 에너지에 놀랐던 때인데, 영화에도 그 힘이 온전히 담긴 장면이에요. 4장에 이르러 이야기가 잠시 멈추는 시점이 있어요. 이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나 싶던 순간인데, 그때 바퀴를 다시 굴리는 사람이 중앙정보부장이에요. 홀로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그 자리를 한번 크게 휘어 감아요.
경구 그치, 관제탑에서 테이블을 한 바퀴 쫙 돌면서.
경 맞아요. 그 에너지가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어요.
승범 선배님 말씀대로 중앙정보부장의 아이 같은 면 때문에 잠깐 헷갈리거든요. 이 사람이 진짜 무서운 사람이 맞긴 한가? 무서운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 그러던 차에 한번 확 휘저으며 인물에 대한 두려움을 다시 일으켜요. 공간을 막 휘젓고 다니는데 그때의 생명력이 정말….

변성현 롱 코트, 레더 팬츠 모두 Yuji, 부츠 Versace,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어링과 네크리스는 본인 소장품.



스퀘어 프레임 선글라스 Gucci by Kering Eyewear.
홍경 재킷, 셔츠, 팬츠, 타이 모두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라이더 재킷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영화는 동시에 믿음에 대한 화두를 계속 던지잖아요. 무엇을 믿을 것인지, 믿음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요. 세 분이 믿어온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승범 (주먹 쥔 한 손을 힘차게 들어 올리며) 저는 사랑을 믿습니다.(일동 웃음)
음….
승범 진짜입니다. 저는 사랑이 짱이라고 생각해요.
경구 그치. 사랑이지.
경 제 이야기를 하면 저는 경구 선배님, 승범 선배님 세대의 무비 스타들을 보고 자랐잖아요. 그래서인지 그런 믿음이 있어요.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본질에 대한 믿음이. 배우에게는 시대가 요구하는 길이 있고, 그 길에 올라야만 얻는 것들이 있다지만, 선배님들이 남긴 것들을 보며 그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맹목적 요구에 따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이 있어요. 영화 산업이 어렵다고 하고, 많은 것이 빠르게 휘발되는 시대이지만 동시에 선배님들이 이뤄낸 클래식함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라고도 느끼고 있어요. 제가 한번 잘 따라가보겠습니다.
승범 경아, 세상이 변해도 본질을 찾겠다는 마음인 거야? 유행을 좇기보다 본질을 향하겠다는 마음?
경 맞아요. 본질이라는 게 주관적인 말일 수 있지만요.
경구 가끔 경이랑 2000년대 초반의 영화 이야기를 하거든요.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던 시대였고, 영화 한 편 나오면 그걸 보고 영화 전문지에서는 네다섯 페이지에 걸쳐 토론하고, 또 그걸 두고 서로 싸우고, 술 마시면서 밤새 이야기하는 일이 빈번했거든요. 그런 면에서 지금은 아쉬움이 있는 거죠.
승범 콘텐츠가 많아서 그런 것 아닐까요.
경구 콘텐츠는 많은데 그 양에 비해 다양하지는 않은 것 같아. 영화를 보고 할 얘기가 많았다는 건 그만큼 잔상이 많이 남는 영화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에 대한 아쉬움은 나도 있지. 근데 경이는 그 시대를 못 겪었으니 그 아쉬움이 너무 큰 거야. 그 시절에 본인이 없었다는 게.
경 그래서 저는 <굿뉴스>가 경구 선배님이 말씀하신 잔상이 많이 남는 작품이라 좋아요. 시대가 요구하는 재미와 엔터테인먼트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재미라는 말 안에 여러 의미가 담기겠지만, 적어도 재미가 있어야 본질도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봐요. 한데 점점 평면화되어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일차원적 재미나 유흥만 겨냥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경구 선배님 말씀처럼 이 작품이 좋은 건 생각 없이 달리다가 뒤에 가서 뒤통수를 얻어맞고 쓸쓸함을 느끼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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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멀리 왔네요.
승범 저, 바뀌었는데.
네, 말씀하세요.
승범 저 홍경이를 믿습니다!(일동 웃음) 경구 형은 당연히 믿습니다!
경 근데 승범 선배님은 정말 사랑인 것 같아요. 삶 자체를, 사랑을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시기도 하고, 그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주실 때가 있거든요.
승범 저는 온통 사랑입니다.
경구 승범이도 사랑으로 변한 시간이 있었을 거야.
승범 제가 언제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알게 됐냐면요.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에 답해야 할 서면 인터뷰가 있었어요. 바로 적을 수 있는 답들은 채우는데 ‘당신은 예술가입니까?’라는 질문에서 멈추게 되더라고요. 쉽지 않은 질문이니까 비워두고 생각을 좀 해보자 하던 차에 아이가 태어났어요.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을 옆에서 겪고 나니 그 질문에 답하기가 쉬워졌어요. 예술이 중요하지만 이제 내 삶에서 1번은 사랑이다 하고요. 사랑 앞에 무릎 꿇어져버린 거예요. 두 가치의 무게를 떠나서 1번과 2번의 순서가 바뀌더라고요.
경구 저는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 질문을 받았다면 아마 ‘아직’이라고 답했을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아요. 예술이 완전한 창조라면, 배우는 내 안의 것을 계속 뽑아서 쓰는 것이기에 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감독은 예술을 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니까요. 그런데 배우는 작품을 할 때마다 한계를 보거든요. 이거밖에 못 하나? 이 표정밖에 못 쓰나 하며 괴로워해요. 아, 나는 예술가가 아니구나 다른 게 안 나오는구나 하고.
경 그럼 저는 몽상가 하겠습니다.(일동 웃음) 아직 예술을 꿈꾸는. ‘예술, 너 뭔데’ 하며.
경구 예술의 길은 멀고 험해. 사랑이라고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