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과 파멸의 사랑.
드라마 <친애하는 X>를 통해 김유정과 김영대가 그려낸 잔혹하고도 매혹적인 사랑 이야기.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사랑이 파멸이고,
스스로를 온전히 지키는 게 구원에 가까운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영대 블랙 더블브레스트 재킷과 셔츠, 팬츠 모두 Gucci, 슈즈 Dolce & Gabbana.
스케줄을 조율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밤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지금이 <친애하는 X>와 더 잘 어울리는 시간대가 아닌가 싶더라고요. 잔혹한 본색을 아름다운 얼 굴 뒤에 숨긴 채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배우 ‘아진’(김유정)과 그에게 짓밟힌 X들, 그리고 아진을 구원하려 지옥을 선택한 ‘준서’(김영대)의 이야기는 환한 빛보다는 어둠과 더 가깝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유정 맞아요. 확실히 쨍쨍한 낮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완전히 어둑한 밤도 아닌 듯해요.
몇 시쯤이에요?
김유정 해가 뜨기 직전의 시간이요.
김영대 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해가 뜨고 밝아지기 직전이 좀 푸르스름하잖아요. 딱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김유정 뭔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아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카만 밤과는 또 다른 거죠.
어스름한 푸른빛과 닮은 이 작품을 처음 만났을 때는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친애하는 X>, 그리고 백아진과 윤준서를 만난 순간이요.
김유정 원작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인지 알면서도 그만큼 부담이 되기도 했어요. 접근하는 것부터 워낙 어려운 인물이라 이 역할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고민하다 (이응복) 감독님을 만나고 나서야 이 작품을 해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감독님께서 아진이라는 인물의 방향성과 저라는 배우와 어떤 작업을 해나가고 싶은지에 대해 되게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어요. 그 대화 속에서 작품에 애정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김영대 저는 아진과 준서, 그리고 ‘재오’(김도훈) 각각의 캐릭터와 그들의 관계가 흥미로웠어요. 준서를 보면서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는 인물이 또 있었나 싶더라고요. 동시에 준서가 바라보는 아진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고요. 사실 유정 배우가 한다는 말을 듣고 더 궁금하고 욕심이 났던 것 같아요.
아진은 어떤 사람인가요? 등장인물 중 가장 가늠이 되지 않는 인물인데요.
김유정 그런사람이에요.(웃음) 제게도 가늠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고, 연기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이 점을 활용하자 싶었어요. 초반에는 인물과 가까워지기 위해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만들어갔다면, 중반부터는 즉흥적으로 느껴지는 대로, 나오는 대로 하는 지점이 더 많았어요. 그렇게 아진을 다 겪어내고 나서 드는 생각은… 굉장히 처절하게 인간적인 사람이구나 싶어요. 드라마 속 인물 중 누구보다 솔직하고 직설적이거든요. 자신이 가진 인간성을 극단적으로 극대화해서 드러내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준서는 그런 아진을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는 인물이라고요.
김영대 준서는 사랑을 잘못된 방식으로 배우고 받아들이는, 어떻게 보면 좀 안쓰러운 사람이에요. 심리학에 ‘구원 환상’이라는 용어가 있잖아요. 내가 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에 빠져 그게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이 준서예요. 그 구원이 자신을 괴롭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놓지 않는 사람이고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 2화를 미리 감상한 이들의 후기에서, 아진의 눈에 압도되었다는 평이 많았어요. 예고편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아진의 눈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고요.
김유정 좀 전에 얘기한 가늠하기 어려운 아진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가 눈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진만의 미묘함을 눈으로 잘 드러내고 싶었어요.
김영대 유정 배우의 눈이 굉장히 크잖아요. 그런데 아주 풍부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그 눈에서 무엇도 읽히지 않는 순간이 있어요. 그러다 준서를 바라볼 땐 확 달라지고요. 되게 신기했어요. 일단 눈을 거의 깜빡이지 않아요. 그게 가장 놀라운 점이지 않나….
김유정 처음부터 눈을 깜빡이지 말자고 저 혼자 마음속으로 정하고 촬영을 시작했어요.
특정한 신에서요?
김유정 아니요. 그냥 계속.
김영대 진짜로요.
김유정 스스로 그게 아진의 눈이라 상정한 거죠. 어떤 구간에서 깜빡일지도 정할 정도로 아주 가끔씩만 깜빡이자고 마음먹었는데, 나중에는 눈이 피곤해 그러기 어렵더라고요.(웃음)
그럼 준서의 눈은 무엇을 말하고 드러내려 했나요?
김영대 저는 맨날 울고 있으니… 충혈된 눈이랄까요.(웃음)
김유정 준서는 항상 애절하고(웃음) 늘 무언가를 갈구하는 되게 서글프고 외로워 보이는 눈을 가졌어요.
작품 밖으로 나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 어떤 감상이 드나요? 오늘도 함께 찍는 컷에서 눈을 여러 번 마주쳤는데요.
김영대 저는 여전히 아진의 눈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늘 얘기하다 보면 압도당하는 느낌이 있어요. 그게 무서운 게 아니라 매혹적이라 저도 모르게 따라가게 되는 힘이 있어요. 드라마를 보면 알겠지만, 저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그렇게 따라다니게 돼요.
김유정 영대 배우의 눈은 되게 순수하고 맑아요. 그러다 간혹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이 되는.(웃음)


두 분이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난 거죠?
김유정 네. 처음 만났어요.
함께 연기를 하기 전과 후, 서로가 달리 보이는 지점이 있나요? 만나기 전 추측한 모습과 달랐던, 의외의 면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김영대 유정 배우는 좀 의외였어요.
김유정 제가요? 어떤 게요?
김영대 어딘가 좀 유하고 밝을 거라 예상했거든요. 물론 현장 밖에서 만났을 땐 그런 모습이 있는데, 촬영할 땐 되게 카리스마 있고 강단이 있달까요. 멋있어요. 배우로서 본받고 싶은 점이기도 하고요.
김유정 영대 배우 눈도 되게 진하고 또렷한 편이라 어쩐지 가까워지기 어려울 것 같고, 자기만의 바운더리가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친애하는 X> 팀 내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이 같은 밝음이 있더라고요. 그 기운에 현장에서 리프레시가 되기도 했어요. 저는 집중하다 보면 혼자 심각해져서 골머리를 앓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옆에서 말을 걸어주는 게 환기가 되더라고요. 고마웠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친애하다’라는 표현에 대해 상기하게 되었어요. 사전적 정의로 ‘친밀히 사랑하다’는 이 표현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표현했는지 궁금해요.
김유정 ‘친애’라는 표현이 쉬이 쓰이는 말이 아니긴 하죠. 그런데 우연찮게 제가 예전에 이 표현을 쓴 적이 있어요. 연극을 끝내고 인스타그램에 감사 인사로 ‘친애하는 우리 <셰익스피어 인 러브> 팀’이라고 적었죠. 그때를 생각하면 어떤 식으로든 제 사랑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처럼 아진 역시 자신만의 ‘친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김영대 제가 중국에서 유학했는데요. 중국에서는 굉장히 편하게 자주 쓰는 표현이에요. 한자 뜻으로 ‘친(親)’은 친하다 혹은 가깝다, ‘애(愛)’는 사랑하다. 그러니까 영어로는 ‘Dear’와 같이 자주 쓰이는 말이에요.
김유정 그 말을 누구한테 써? 주변 사람들에게?
김영대 그렇지. 친구들에게도 쓰고, 선생님이 학생에게도 쓰고, 공적인 자리에서도 많이 쓰지. 다만 이 작품에서 ‘친애’는 조금 더 개인적이고 내밀한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진을 위한, 아진에 의한, 아진에 대한 말이지 않나 싶어요.
김유정 감정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좋든 나쁘든 아진이 내면에 닿았던 대상들. 그 모든 존재가 ‘친애하는 X’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영대 블랙 더블브레스트 재킷과 셔츠, 팬츠 모두 Gucci, 슈즈 Dolce & Gabbana.

김영대 그레이 헤링본 코트와 재킷, 카디건, 팬츠 모두 Ferragamo.
<친애하는 X>에는 구원이자 파멸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이야기 안에서 양가적 감정을 경험한 이후 사랑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나요?
김유정 어릴 때부터 사랑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면서 가치관이 계속 변해왔어요. 그 과정을 지나 지금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사랑이 파멸이고, 스스로를 온전히 지키는 게 어떻게 보면 구원에 가까운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내가 온전히 존재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나를 먼저 사랑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다만 아진은 좀 극단적으로 자신만을 사랑하는 케이스이긴 하지만요.(웃음)
김영대 저는 이 작품을 하고 나서 사랑이 더 어려운 미궁의 존재가 되었어요. 아진과 준서, 재오, 그 외 모든 인물이 각자 지닌 사랑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거든요. 이를 경험하고 나니 오히려 정의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흥미롭고도 두려운 이야기를 완성한 지금, 두 분에게는 무엇이 남았나요?
김유정 아진을 연기하기 전에 되게 무서웠거든요. 아진의 말이나 행동에는 사회적으로 잘못으로 여겨질 부분이 있어서 그게 순간적으로라도 실제 제 삶에 영향을 미치면 어떡하지 싶었던 거죠. 그런데 이 작품을 하고 나서 사랑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고, 저 자신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모두에게 사랑을 잘 전하는 법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제 안에 사랑이 되게 커진 느낌이 들어요.
김영대 무척 어려운 과제를 하나 끝낸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간 시도해본 적 없는 도전이었고, 최선을 다했고, 후회는 없고, 그래서 관객의 채점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인 것 같아요. 그 외에 무엇이 남았을지는… 작품이 공개되어야 알 것 같아요.(웃음)
후회 없이 사랑만이 남았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영대 맞아요. 지금 되게 후련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