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현실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하며 공존으로 나아가는 신작 도서 다섯 권을 소개한다.

수잰 스캔런, <의미들>

엘리

“예술은 하나의 빛이었다. 나에게 통곡과 그리움을 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경계선 위에서 혹은 경계선 바로 너머에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수잰 스캔런은 ‘독서가 나를 구원했다’고 썼다. 그리고 이제 그가 과거의 자신과 같은 이들을 향해 손을 뻗은 듯하다. 20대에 정신 병동에 장기 입원한 수잰은 낙인의 과정을 경험했다. <의미들>에서 그는 당시의 상처 어린 기억을 회고하며,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준 문학에 대한 헌사이자 에세이로서 문학 비평의 형식을 확장한다. 실비아 플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 버지니아 울프 등 마음의 고통을 탐색했던 여성 작가들의 문장과 자신의 일화를 교차해 쓰면서 자신의 언어를 되찾고 낙인의 이미지를 성찰의 주체로 다시 세운다. 저자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던 자신을 다른 여성의 삶과 글을 통해 점차 긍정해가는 모습은 독서의 힘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공허와 자기 파괴, 무기력과 광기를 오가는 글들은 삶에 자리한 슬픔과 균열을 더 명료하게 드러내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마주함으로써 깊은 우울을 극복하는 신비한 경험으로 독자를 이끈다. 이 책은 그 제목처럼, 자신이 품고 살아갈 ‘의미들’을 발견하고 말겠다는 한 사람의 처절한 기록이자, 등한시하던 감정들까지 나라는 존재의 일부분으로 끌어안기 위한 시도이다.

저스틴 토레스, <암전들>

“내내 노래하도록, 내내 타오르도록. 우리는 말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퀴어 작가로 자리매김한 저스틴 토레스의 신작 소설 <암전들>은 실존하는 연구서 <성적 변종들: 동성애 패턴 연구>에서 출발한다. 1930년대 사회 학자 잰 게이는 300명이 넘는 퀴어들을 상대로 인터뷰하며 그들의 삶과 욕망에 대한 증언을 수집했다. 하지만 권위 있는 남성 의사의 이름으로만 출판할 수 있었던 당시의 제도적 한계로 인해 레즈비언이자 여성 의사였던 잰 게이는 자신의 이름을 지워야만 했다. 그래도 그는 이 연구를 세상에 내놓는 데 의의를 두었지만, 이후 연구 내 퀴어들의 증언은 병리학적 진단들로 둔갑하고, 욕망은 장애로 번역되기에 이른다.
소설은 바로 그 뭉개진 자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많은 이미지와 사례 연구, 영화 대본과 플래시백이 얽히는 독특한 형식은 독자를 순식간에 끌어들이고, 삭제된 텍스트로 인해 불안정하게 잘려 나간 말들은 시적인 음조로 되살아난다. 까맣게 덧칠해진 첫 페이지를 넘기면, 그 어둠 뒤로도 말하기를 멈추지 않은 이들이 있다. 머릿속을 맴도는 동요, 빛나는 아버지의 목걸이, 비싼 재킷을 입고 짖는 개, 퀴어적 상상력이 스며든 동화의 장면들. 사소한 기억의 조각들은 모여 이들이 경험한 삶과 사랑의 기록이 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걸 하나 알려 줄게. 모호한 것이 모조리 해소될 필요는 없어.” 토레스는정확한 사실을 밝혀내기보다 모호함 속에서 길을 잃으면서도 충만해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며, 암전 속에서 살아간 이들의 삶을 고증하고, 마침내 구해낸다.

시빌 그랭베르, <그 바다의 마지막 새>

열린책들

“프로스프는 독특한 운명을 지닌 피조물이었다. 자기가 속한 종의 감각을 알고 언어를 알고 본능을 아는 마지막 존재, 멸종을 앞둔 큰바다쇠오리들이 지상에서 보낸 수십만 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을 추억하는 유일한 존재가 아닌가.”

<그 바다의 마지막 새>는 멸종을 앞둔 새와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1835년, 북유럽의 외딴 섬으로 향한 젊은 생물학자 귀스는 멸종 위기의 새 큰바다쇠오리를 만나 ‘프로스프’라 이름 붙인다. 그는 관찰과 기록을 거듭하며 점차 새를 연구 대상이 아닌 타자로 바라보게 되고,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채 언어 너머로 교감한다.
소설은 프로스프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귀스의 시선을 통해 인간이 생태계를 지배해 온 방식을 되묻는다. 문명화의 이름으로 수많은 생명을 박제해 온 역사를 응시하며, 그는 자신이 ‘보호자’이자 동시에 ‘파괴자’였음을 자각한다.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상실 앞에서 귀스는 침묵을 택하고, 그 침묵은 성찰의 시작이 된다. 시빌 그랭베르는 고요한 결말을 통해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윤리를 다시 세운다. 그 자리에는 이해가 아닌 경외, 지배가 아닌 존중의 시선이 남는다.

폴 B. 프레시아도, <천왕성에 집 한 채: 횡단의 연대기>

문학동네

“몸을 만든다는 것, 이름을 갖는다는 것, 합법적인 사회적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물질적인 과정이다. 이는 사회-정치적인 일련의 보철기구(출생증명서, 의료기록, 호르몬, 수술, 결혼계약서, 신분서류) 획득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보철기구의 획득을 방해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사실상 사회적 정치적 형태의 생명의 존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영화 제작부터 글쓰기, 운동과 실험까지 마다하지 않는 철학가이자 활동가, 폴 B. 프레시아도. <천왕성에 집 한 채: 횡단의 연대기>는 그가 5년간 신문에 연재한 글을 묶은 에세이로, 신체와 젠더, 언어와 제도가 얽힌 세계를 근본부터 다시 묻는다. 프레시아도는 테스토스테론을 주사하며 자신의 몸을 실험의 장으로 삼았던 경험에서 출발해, 오늘날 국가와 가족, 의료와 법 안에서 ‘정상’이라 여기는 것들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한다. 작가는 자신의 철학을 시적인 표현에 빗대어 설명하고, 때로는 신조어를 만들어 표현한다. 에세이, 편지, 일기, 논고 등 형식 또한 다양하여 독자는 그의 삶과 사유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가에게 제목의 ‘천왕성’은 경계를 벗어난 상상의 장소, 즉 기존의 질서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존재들이 서로를 발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상상의 집이다. 이곳에서 그는 남과 여, 인간과 비인간, 시민과 이방인을 가르는 선을 허물며, 몸과 언어, 정체성의 새로운 지도를 그린다. 경계를 횡단하던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뭉클한 문장으로 공존을 외친다.

비엣 타인 응우옌, <두 얼굴의 남자>

민음사

“당신은 다시는 무시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당신’에, 유일한 하느님 아래 미미한 존재인 너는 당연히 포함되지 않으며, 아마 네 아들도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쉬지 않고 일하는 1세대와 계급 상승을 이뤄내는 2세대. 아시아계 이민자 가정의 ‘아메리칸드림’을 묘사하는 전형적인 풍경이다. 비엣 타인 응우옌의 가족도 그랬다. 부모는 식료품점을 운영했고, 형은 의사가, 그는 미국 문학 교수이자 소설가가 되었다.
하지만 자전적 에세이 <두 얼굴의 남자>에 대해 작가는 ‘기억하고 싶지 않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썼다’고 말한다. ‘베트남인 때문에 또 한 명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었다’라는 부모님 가게 벽의 낙서, 총을 든 강도의 침입, 백인만이 주인공인 영화들은 작가 자신의 근본에 대한 불안을 남겼다. 때로는 ‘모범적 소수자’로, 때로는 ‘불청객’으로 여겨지던 아버지와 전쟁의 상처로 인해 입원한 어머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신이 느낀 무감각까지. 작가는 성장기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솔직하게 기록하고, 자신이 ‘두 얼굴’로 살아야 했던 이유를 되짚는다. 가족의 이민과 트라우마 중심에는 베트남과 미국 사이의 지난한 역사와 식민의 기억이 자리한다. 그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위계질서를 직시하는 방식으로 개인의 삶에 정치가 미치는 영향력을 고증하고, 이로부터 다음 세대를 지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