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음의 진동 속 (라)오흐드의 움직임과 춤은 언어보다 먼저 태어난 저항의 시처럼 다가온다.
지난 10월,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에서 만난 3명의 아티스트와 나눈 대화.

왼쪽부터 | 마린느 브루티, 조나단 드브로워, 아서 하렐

“바다는, 다시 시작한다.”
La mer, toujours recommencée

-폴 발레리 ‘해변의 묘지’ 중.

지난가을, 서울에서 열린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Dance Reflections by Van Cleef & Arpels) 페스티벌에서 (라)오흐드((LA)HORDE)와 마르세유 국립 발레단의 공연 <룸 위드 어 뷰(Room With A View)>를 보고 국립극장이 있는 언덕을 걸어 내려오며 이상한 마음의 진동이 일었다.
단 하나의 문장도, 지침도 없는 이들의 공연은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 속 바다 풍경처럼 매번 회복하고 되살아나는 순환의 에너지를 눈앞에 펼쳐냈다. <룸 위드 어 뷰>는 (라)오흐드가 음악가 론(Rone)과 함께 만든 작품으로 폭력과 해방, 파괴와 재생의 에너지가 강약 없이 몰아친다. 그들의 무대에는 흰 토슈즈 대신 땀에 젖은 운동화가, 고전적 선율 대신 전자음의 진동이 흐른다. 동시에 이들의 춤은 정치적이지만 설교하지 않고, 급진적이지만 감정의 밀도를 잃지 않는다. (라)오흐드는 오늘날 프랑스 무용계에서 가장 도발적이면서도 시적인 집단으로 평가받으며, ‘움직임으로 저항하고, 춤으로 세계를 다시 쓰는’ 예술적 비전을 구현하고 있다. 2013년부터 무용과 영상, 설치미술, 영화,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동시대 예술 실험을 이어온 (라)오흐드의 마린느 브루티(Marine Brutti), 조나단 드브로워(Jonathan Debrouwer), 아서 하렐(Arthur Harel)을 만났다.

<룸 위드 어 뷰>
ⓒ Ryo Yoshimi. Courtesy of Kyoto Experiment

어제였죠. 서울에서 처음 선보인 <룸 위드 어 뷰> 공연을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조나단 드브로워 한국에서 하는 첫 공연이라 매우 행복했습니다. 마치 선물 같았죠. 아시아는 물리적으로 프랑스에서 멀기도 하고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어 프랑스 아티스트로서 이곳에서 공연을 선보이는 건 오랜 꿈이었습니다. 춤은 감정의 언어이기 때문에 문화가 달라도 춤의 표현은 같은 언어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아서 하렐 세계 곳곳에서 관객의 반응을 느끼는 일은 늘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한국 관객은 굉장히 따뜻하고 섬세해요. 무용수에게 집중하고 공연에 몰입하고 있다는 걸 느꼈고, 그 감정이 참 좋았습니다. 이번 주에 한국의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며 느낀 사실은 한국에서 역사와 예술, 문화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 사실을 이해하니 어제의 관객이 얼마나 집중하고, 또 하나의 경험을 함께하려 준비되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저희에게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조나단 드브로워 세계 각지에서 만나는 관객마다 반응이 다르지만, 어제 서울의 관객은 저희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습니다. 특히 공연 중 많은 분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합니다.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그 안에는 존중과 감동이 담겨 있었고 그 진심이 전달되었어요.

아서 하렐 재미있게도, 공연 후 여러분이 다가와서 “고맙습니다,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라고 말해주셨어요. 이런 반응이 흔한 건 아니거든요. 한데 어제는 많은 분이 그렇게 말해주셔서 굉장히 감사했습니다.

무용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정의하는지도 궁금합니다. 나아가 각자의 정의가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요?

마린느 브루티 저희에게 춤은 보편적 언어이며,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예술입니다. 움직임이란 단순한 신체적 행위가 아니라, 왜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움직이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무용의 가장 큰 특징은 직접 경험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즉 하나의 공간에서 관객이 한 방향을 바라보며 앉아 있고, 그 앞에서 댄서와 아티스트가 자신의 몸으로 스토리를 펼쳐냅니다. 그들이 몸으로 읽고 해석한 스토리를 관객에게 전달하며, 한정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공동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관객과 그 경험을 되새기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지잖아요. 공연은 하나의 강렬한 자극이며, 그로부터 생각과 아이디어가 촉발됩니다. 그리고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과 서로 그것을 교류합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무용이 지닌 힘을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기술과 장치로 연결돼 있지만, 정작 직접 대면하는 일을 회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토리에, 그리고 허구인 픽션에, 정보에 자신을 이입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외부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우리는 손안의 작은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어떠한 이야기나 정보, 나아가 사랑마저도 그 창을 통해서 전달받죠. 오늘날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몸에 대한 사유와 인간성을 숙고하고,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몸은 단순한 인터페이스 그 이상입니다. 우리는 몸을 통해, 감정을 통해 무언가를 직접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직감, 사랑, 그리고 나아가 언어로는 개념화하기 힘든 수많은 감정이야말로 바로 몸에서 비롯되죠. 지성보다는 깊은 감수성과 직관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무용을 통해 시도하는 것은 감정의 춤입니다. 그 춤은 깊은 공감을 통해 관객과 강력한 유대 관계를 만들어내고, 보편적 언어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 속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공명하는 스토리로 확장됩니다. 결국 이러한 모든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비로소 작품이 완성됩니다.

<룸 위드 어 뷰> 공연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감정이나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싶은가요?

조나단 드브로워 공연을 통해 관객에게 무엇인가 하나의 ‘정답’을 전달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휴대폰을 내려놓고 어둠 속에서 오롯이 한 시간 동안 하나의 장면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드물고 귀중한 경험이니까요. 수많은 이미지와 정보, 소음이 넘쳐나는 시대에 낯선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은 멋진 일이죠. 우리의 목표는 모든 관객이 공연을 좋아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화하는 것입니다. 공연이 끝난 후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길 기대합니다. 이 작품 자체도 우리가 나눈 대화의 결과입니다. 때로는 답이 없는 질문이더라도, 그 질문을 무대 위에 올려두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에요. 그 주제는 몸, 가치, 조건,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이 될 수 있겠죠. 이런 이유로 저희는 서로 다른 나라, 다른 세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의 감정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공연을 본 이들 각자가 나름의 이유로 작품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 모든 반응이 모여 새로운 층위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해요. 무대에서 본 것을 이야기하면서 대화의 연속성이 생기고요. 저는 우리가 ‘권위’라는 개념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하나의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관객에게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깊이 아낄 뿐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미지를 만들 때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많이 고려합니다. 조명의 배치와 에너지의 흐름을 생각하면서 관객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공통된 경험을 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본 경험이 관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단언하거나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서로를 듣고, 돌보고, 함께 있는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길 뿐입니다.

마린느 브루티 공연을 선보이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관객을 배려하면서도 관객의 평가나 반응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동을 주고 싶지만, 그 감정을 조종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사람의 감정을 통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중요한 점은 각자 자유롭게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조나단 드브로워 이는 때로 관객의 그날의 기분이나 상태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죠. 그것이 바로 삶의 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언제나 ‘감정의 시간선’ 속에서 그 흐름 자체를 함께 느끼고자 합니다.

<룸 위드 어 뷰>
ⓒ Ryo Yoshimi. Courtesy of Kyoto Experiment

현대무용을 막연히 어렵게 느끼는 관객도 있죠.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나요?

마린느 브루티 우리 작업 안에는 진정한 사랑의 자리가 있습니다. 무용은 보편적 언어이기 때문에 공연장에 와서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물론 저희 작품 속에는 수많은 참조와 숨은 상징성이 있습니다. 무용수의 동작 하나하나, 조명, 특정한 오브제 등, 수많은 요소가 얽혀 하나의 공연을 이룹니다. 그래서 작품을 백 번, 천 번을 봐도 매번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도 어제 연출한 장면을 오늘 다시 보면 새로운 의미를 깨닫기도 합니다. 바로 이것이 저희가 전하고 싶은 예술의 아름다움입니다. 저희는 관객을 자극하고, 감정을 일으키는 무언가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무대 위의 이미지는 매일 밤 달라집니다. 매번 무용수의 해석이 미세하게 다르기 때문이고, 매 순간 다른 감정으로 무대에 오르기 때문입니다.
조나단이 앞서 관객의 감정이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 것처럼 무용수의 감정도 그때그때 다릅니다. 누군가와 헤어졌거나 사랑에 빠져 있을 수 있고, 엄마가 아프셔서 슬프거나 언니가 출산해서 조카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감정들을 안고 무대에서 자유롭게 몸짓을 펼칩니다. 그래서 이 순간에는 진심과 진정성, 그리고 무용수의 순수한 관대함이 피어나고 관객은 그 관대함 속에 머물며 자연스럽게 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작품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한국 영화의 열성적인 팬인데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그 안의 한국 문화나 사회적 맥락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전에 <살인의 추억>을 봤을 때는 그 이야기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알았고, <기생충>을 보면서는 서울이라는 한 도시 안에서도 계층 간 격차가 얼마나 심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그 영화에서 무언가를 깊이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안에 불평등, 사회정의, 사랑, 가족 같은 인류 보편의 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조나단 드브로워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영화의 핵심 요소를 알고 싶다면 인터넷을 찾아보고 조사합니다. 즉, 그 감독이 작품에 심어놓은 의미들은 우리의 탐구를 통해 계속 확장되는 것입니다. 관객도 뭔가를 이해하고 싶으면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인터넷을 찾아보며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주제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계속 확장되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마린느 브루티 그리고 저희는 진정성 있는 질문의 힘을 믿습니다. 자신 안의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인간으로서 느끼는 본질적 의문을 진심으로 탐구할 때, 그 진정성은 언어가 달라도 관객에게 반드시 울림으로 전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충실할수록 관객에게 더 크게 공명할 것임을요.

아서 하렐 그리고 오늘 오후 처음 오는 관객을 위한 조언은 “자신을 믿으세요. 모든 것은 옳습니다. 틀린 것은 없습니다. 감정을 따르세요”입니다. 감정과 댄서, 그리고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길이 열려 있습니다. 극장은 때로 사회적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감정과 만나는 안전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신을 믿고, 자유롭게 보고 느끼면 됩니다.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과 함께 작업하는 과정 중 느낀 바도 많을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인가요?

마린느 브루티 여러 측면이 있는데, 우선 저희 작품과 비전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반클리프 아펠이 있다는 건 아주 멋진 일입니다. 그리고 반클리프 아펠 댄스 및 문화 프로그램 디렉터인 세르주 로랑(Serge Laurent) 역시 수년간 저희의 작업을 지켜봐주셨고, 실험하고 세상과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열망을 보여주셔서 항상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티스트로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감동적인 일이 아닐까요? 저희가 작품을 선보일 때 관객에게 각자의 스토리를 자유롭게 만들어가도록 맡기지만, 동시에 저희를 지지해주는 협업자들이 있을 때, 그 안에서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저희는 스스로를 편집하고 재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기쁨이죠.
세르주 로랑 디렉터는 저희에게 큰 영감을 주는 존재이고, 저희의 작품을 바라보며 스스로 해석을 더하고 그 속의 의미를 찾아냈습니다. “당신들의 작업은 공감과 전승, 기존의 규칙에 질문을 던진다”라고 말해주셨을 때, 그의 시선과 피드백을 통해 저희 스스로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또 저희를 다른 아티스트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게 해주었습니다. 현재 저희는 이탈리아 안무가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와 함께 작업하고 있는데, 이런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됩니다. 아티스트에게 공동체는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같은 미션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건 큰 위안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서 하렐 그리고 이는 반클리프 아펠이 지닌 세계관과 더불어 세상을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혀주기도 합니다. 저희는 수세기에 걸쳐 메종이 간직해온 가치와 무용을 향한 사랑을 공유하며 저희 삶 전반에 걸쳐 관계가 이어지고 있어요. 또한 다른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보면 그 연결성이 매우 명확히 다가옵니다. 올라 마시에예프스카(Ola Maciejewska),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Alessandro Sciarroni), 타오 댄스 시어터(TAO Dance Theater) 무용단의 공연은 모두 전승, 전통, 역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 각각의 공연이 모여 더 큰 서사를 만들어냅니다. 디렉터 세르주 로랑은 큐레이터로서 선택과 창작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그의 이러한 선택은 저희에게 매우 소중합니다. 여러 작품이 함께 만들어내는 ‘큰 그림’이 존재하고, 그 존재는 저희에게 큰 의미를 전하죠.

마린느 브루티 관객이 작품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세심히 고려하는 특별한 배려도 있습니다. 무용수와 아티스트가 현지 커뮤니티와 교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워크숍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희는 아티스트, 연출가, 언론인 등 창작 커뮤니티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단순히 작품을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예술 커뮤니티 네트워크의 연결을 확장하는 자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DANCE REFLECTIONS BY VAN CLEEF & ARPELS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은 1920년대부터 무용계와 밀접한 인연을 이어왔으며, 2020년부터는 현대무용을 지원하는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Dance Reflections by Van Cleef & Arpels)을 설립해 더욱 탄탄한 관계를 쌓아가고 있다. 국제적 파트너와 협업해 진행하는 본 이니셔티브는 안무 유산을 함께 나누고 계승하며, 많은 이들에게 현대무용이라는 예술 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2022년부터 매년 두 차례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댄스 리플렉션 페스티벌을 개최하는데 올해는 지난 3월 런던 페스티벌에 이어 지난 10월 16일부터 11월 8일까지 서울에서 개최했다. (라)오흐드가 뮤지션 론, 마르세유 국립 발레단과 함께한 <룸위드 어 뷰(Room With A View>부터 이탈리아 민속무용에서 영감을 받은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Alessandro Sciarroni)의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Save the Last Dance for Me)>, 그리고 허성임 안무가가 이끄는 허 프로젝트(Her Project)의 <1도씨(1 Degree Celsius)> 등 모든 프로젝트에는 전통과 현대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안무 예술에 대한 깊은 헌신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