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December Issue
#우리가 함께 살아온 2025년
창 밖으로 노랗게 단풍이 든 가을 나무들이 줄지어 선 서정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마감 중인 고요한 사무실에 앉아 흰 눈발이 흩날리는 연말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겨울이 보다 따뜻하길 바라며, 마리 피처팀 4명의 에디터들이 함께한 공동 칼럼 ‘To Be With’의 원고를 살폈습니다. ‘관계가 희미해지고 고립감이 깊어지는 시대, 우리는 여전히 함께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글.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마음을 데우는 연대로 이어지는 이야기, 즉 ‘곁’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책과 영화, 음악, 사진을 접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영화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의 <엣 더 벤치>와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이 마음에 남더군요. <엣 더 벤치>는 때론 힘든 상황에서 그 어떤 나무라거나 위로하는 말 한마디 없이도 그저 ‘곁에 있어주는 존재 자체’가 힘이 된다는 시선을 상기시킵니다. 또 소중하고 작은 영화의 힘을 보여주며 최근 10만 관객을 돌파한 <세계의 주인>. 마리끌레르에서도 이미 과 10월호를 통해 감독과 배우의 인터뷰를 소개한 이 특별한 영화에 대해 강예솔 피처 수석 에디터는 다음과 같은 솔직한 마음과 살가운 애정을 드러냅니다.
어른답게, 여성스럽게, 결혼을 해서 혹은 아직 못 해서, 몸이 아파서 혹은 건강하니까. 급기야 MBTI까지. 누군가를 규정하는 숱한 표현 사이에서 온전히 나답게 산 적이 있던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지 말라며 정면으로 부딪혀본 적이 있던가. 영화 <세계의 주인>을 보며 서글펐고, 동시에 통쾌했다. 그리고 끝내 스스로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게 되었다. 친구, 동료, 가족을 더 넓게 바라보게 되었다. “자신의 진실을 용기 내어 발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누구도 절대 혼자가 아니며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영원히 남겨질 상처를 안고도, 자신의 모습을 지키며, 더 깊고 넓은 세계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윤가은 감독이 남긴 메시지처럼, 더 솔직하게 살아갈 힘이 생겼다. 영화 역시 기세 좋게 나아가는 중이다. 겨울 한파 속에서도 도무지 웅크리지 않을 기세로.
#다정함의 힘을 믿으며
인간과 비인간 존재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오늘날, 동물과 마음을 나누는 두 여성의 일상을 조망한 이달의 ‘월드 리포트’. 다정한 존중을 통한 관계의 회복을 담은 이 아름다운 사진을 넋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가 야나 베르니케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소회를 남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 그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다정함이 우리를 더 균형 잡힌 삶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는 희망. 프로젝트의 시작점에서는 동물의 세계와 단절되었다는 데서 오는 좌절감이 컸지만, 그 안에는 늘 그들과 다시 연결되고 싶다는 깊은 그리움이 자리했다. 로지나와 율리를 지켜보며 공존이란 것이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사소하고 일상적인 돌봄 속에서 매 순간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조용한 손길과 사려 깊은 애정 속에서 변화가 서서히 자라난다고 믿는다. 나아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 회복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은 겸손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 그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태도 말이다. 인간성을 회복한다는 건 결국 다른 생명에 대한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회복하는 일이자, 다시 연결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우리가 비인간 존재를 존중하는 삶을 선택할 때 비로소 무너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
몇 해 전부터 서점가에는 ‘다정한’이라는 타이틀을 단 책들이 눈에 띕니다. 이 시대의 대중이 요구하는 그 다정함이란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과학적 위로를 건네는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통해 살핀 문장은 편견과 이기심 대신 다정함과 친화력을, 협력과 소통을 추구해야 한다고 논리적으로 설득합니다. 서로 손잡고 서로에게 다정한 개체들이 살아남았다는 생물학자의 연구 결과. 이는 무수히 전해지는 사건 사고 소식에 불안해하고, 인간의 잔인함에 치를 떨다가도 긍정의 마음으로 그 어둠 너머에 자리한 빛의 희망을 어렴풋이 헤아리고 염원하게 하죠. 서로가 다름에 집중해 경계를 흐리는, 혐오와 차별이 자리하는 차가운 시대에 상처받은 이들이 그 아픔을 딛고 보다 다정한 미래를 꿈꾸는 연말이 되면 좋겠습니다.
#Where Warmth Becomes Memory
늘 따스하고 이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12월호의 타이틀로 ‘Where Warmth Becomes Memory’를 택했습니다. 온기가 기억으로 쌓이며, 따스함이 머물러 추억이 되는 순간이야말로 연말의 홀리데이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진정한 마법이 아닐까요. 시간이 없고 바쁘니까, 내 코가 석 자라 마음이 각박하니까, 더 잘하고픈 욕심에 안달 나던 그 순간들마다 따스한 말 한마디로, 든든한 연대감으로 앞장서 나아가던 팀 마리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리끌레르의 ‘Inclusivity’ 정신, 그 ‘포용력’의 친근하고 다정한 힘으로 새해에도 함께 지치지 않고 나아가야죠. 마리끌레르 독자 여러분도 늘 소중하지만 뒷전에 밀어두었던 가족과 친구,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다정한 말을 건네보면 어떨까요. 쑥스럽다면 올해 함께 나눈 따스한 기억에 덧붙여 고마움과 사랑의 인사를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에 꾹꾹 눌러 담아 적어보는 것도 좋고요. 저 역시 최근 2025년 메모리에 다정한 기억 하나를 보탰습니다. 리프레시와 배움을 위한 휴가차 잠시 해외로 떠난 김경주 뷰티 마켓 디렉터. 마리 디렉터들이 짬을 내어 다 함께 그와 영상통화를 하며 안부를 전하고 눈시울을 붉히는 순간, 우리가 어느새 긴밀히 연결되어 단순히 함께 일하는 동료를 넘어 서로를 응원하고 그리워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다정함은 앞으로 마리끌레르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오늘에도 정겨운 다정함이 깃들길 바라며, 함께한 2025년을 따스하게 추억해보세요.
<마리끌레르> 편집장 박 연 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