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일, 다리오 비탈레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지 불과 8개월 만에 베르사체를 떠납니다.




지난 4월, 도나텔라 베르사체(Donatella Versace)의 바통을 이어받으며 기대를 모았던 차세대 디렉터 다리오 비탈레(Dario Vitale). 그러나 그 찬란했던 영광도 잠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지 불과 8개월 만에 베르사체와의 여정을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이번 소식은 그가 첫 컬렉션을 공개한 지 불과 몇 달, 프라다가 베르사체를 12억 5천만 달러에 공식 인수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전해져 더욱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밀라노 패션 위크에서 공개된 그의 첫 컬렉션이 업계 안팎에서 뜨거운 호평을 받았던 만큼, 이번 이별 소식은 더욱 갑작스럽게 다가오는데요. 결과적으로 그의 마지막 쇼가 된 베르사체 2025 S/S 컬렉션은 하이웨이스트 스키니 진, 몸에 밀착되는 실루엣, 대담한 컬러와 메탈릭 룩을 중심으로, 1989~90년대 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 특유의 미학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세련되게 풀어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사이드 프로젝트 ‘Versace Embodied‘를 이끌며 사진, 시, 일러스트레이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챕터 형식의 문화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베르사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여러 아티스트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 프로젝트는 아카이브와 현재를 잇는 문화적 동력으로 기능하며, 브랜드를 단순한 패션 하우스를 넘어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담론의 장으로 확장하려는 그의 의지를 드러낸 바 있죠.



1983년생 이탈리아 출신의 다리오 비탈레는 베르사체에 합류하기 전, 미우미우에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화하며 프라다 그룹의 성장을 이끈 핵심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10년 미우미우에 입사한 그는 약 15년간 레디 투 웨어 디자이너에서 브랜드 이미지 총괄 디렉터까지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으며 존재감을 키워왔는데요. 발레리나 플랫, 마이크로 미니스커트 등 Z세대의 취향을 정조준한 아이템들로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고, 그 결과 2024년 미우미우의 매출은 전년 대비 무려 90% 이상 성장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기록하기도 했죠.
이처럼 프라다 그룹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그는 마침내 지아니와 도나텔라 이후 47년 만에 베르사체 패밀리가 아닌 인물로는 최초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발탁되며 베르사체의 새로운 시대를 열 주역으로 주목받았습니다. 그 새로운 시대가 불과 8개월 만에 막을 내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죠.
그의 갑작스러운 이별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배경은 새롭게 베르사체를 품에 안은 프라다 그룹의 전략적 리셋이라는 분석입니다. 프라다 그룹 최근 카프리 홀딩스로부터 베르사체 인수를 위한 모든 규제 승인 절차를 완료하고, 인수 계약 체결을 공식 발표한 바 있죠. 비탈레의 사임 소식이 프라다 그룹이 12억 5천만 달러 규모의 베르사체 인수를 공식 마무리한 지 불과 이틀 만에 전해진 만큼, 비탈레의 퇴장이 사실상 이번 인수로 촉발된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실제로 베르사체는 인수 전부터 실적 부진에 시달려왔고, 2024년 말 기준 매출이 전년 대비 약 15% 하락하는 등 카프리 그룹 전체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고리로 지목돼 왔습니다. 프라다 그룹이 이번 인수를 ‘루이 비통·케어링 등 프랑스계에 맞설 이탈리아 럭셔리 연합의 출발점’으로 강조한 만큼, 새로운 오너십 아래 보다 뚜렷한 색채의 크리에이티브 팀을 구성해 브랜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하려는 움직임으로도 읽히죠.
또 하나 주목할 만한 해석은 비탈레의 역할 자체가 애초부터 전환기의 브리지(다리)였다는 시각입니다. 즉, 인수 전후의 과도기를 매끄럽게 넘기기 위한 임시적 성격의 디렉터였고, 인수가 완료되면서 그의 미션 역시 자연스럽게 마무리됐다는 분석인데요. 실제로 브랜드의 공식 성명에서도 “전환기 동안의 기여”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그 시점을 명확히 강조한 바 있어, 애초부터 장기적인 비전 아래 임명된 인물은 아니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마지막으로 거론되는 배경은 비탈레 개인의 선택과 피로감에 가까운 요인인데요. 그는 미우미우에서만 14~15년 가까이 몸담았던 인물로, 프라다 그룹의 핵심을 구성했던 인사였죠. 그런 그가 과감히 조직을 떠나 결이 전혀 다른 하우스인 베르사체에 합류한 것은 새로운 도전이자 확실한 이직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라다 그룹의 인수로 다시금 이전 체계 안으로 되돌아오게 되자, 본인 역시 그 환경에서 또 한 번 장기적으로 머무를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거죠. 결국 회사 측의 전략적 재정비 의지와 비탈레 본인의 선호가 맞물리며, ‘상호 합의’라는 가장 매끄러운 방식으로 이별이 정리된 것으로 보는 시선도 적지 않습니다.
인사의 배경이 무엇이 됐든, 비탈레의 데뷔 쇼에 매료됐던 이들에게 이번 이별은 적잖은 아쉬움을 남기는데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갑작스러운 퇴장 이후 베르사체가 내외부적으로 한동안 적지 않은 진통과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이죠. 현재까지 비탈레의 후임은 물론, 그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베르사체 측은 “앞으로 디자인 팀은 CEO 엠마누엘 진츠버거의 리더십 아래 운영을 이어갈 예정이며,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리더십에 대한 발표는 적절한 시점에 이뤄질 것”이라고만 밝힌 상태죠.
비탈레의 다음 행보는 어디를 향하게 될지, 또 프라다 그룹의 품 안에서 새롭게 재편될 베르사체는 어떤 얼굴로 다시 태어날지, 앞으로 전해질 소식들이 더욱 궁금해지는 순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