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내일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마음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슬픔의 무게를 덜어내며 삶에 용기를 건네는 네 권의 책을 소개한다.
나탈리 레제, <창공의 빛을 따라>

“내가 너를 구할 단 한마디 말도 발명하지 못했다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내게서 너를 끝내 빼앗아 간 것은 이 소용없는 부끄러움, 어쩌면 그것인지도 모른다.”
나탈리 레제가 남편 장 루 리베이르의 죽음을 마주한 과정을 써 내려 간 에세이. 문헌과 아카이브를 다루는 아키비스트였던 레제는 사랑하는 이의 부재 앞에서 글쓰기가 본질적으로 미완성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지만,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 고인이 여전히 집 안에 있다고 믿는 순간의 허망함,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책망, 그를 붙잡아두려는 마음까지. 솔직한 고백이 담긴 문장은 부서진 감정과 심연의 슬픔을 아우른 채 이어진다. 때론 기억을 더듬는 중 마주한 남편의 말에 위로받기도 한다. “마침표는 사랑이야.” 남겨진 이의 마음에 여전히 존재하는 고인의 문장은 오랫동안 공명한다. 격정적이기보단 담담하게 공허로 가득 찬 세계를 마음껏 헤매고, 끝내 기억을 붙든 채 내일로 향하는 작품 앞에서 독자는 진정한 애도를 경험하게 된다.
최수진, <삼각주에서>

“네가 죽었으니 세상 따위 다 망해버려도 상관없다는 믿음은 건재하지만
사랑과 정의를 부정하는 것은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과 분명 다르다.”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최수진의 연작소설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여성을 중심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직면하는 세 사람의 모습을 따라간다. 타인의 부재를 목격한 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감정의 면면을 탐색하며, 상실이 남긴 흔적이 어떻게 서로 다른 인물들의 삶으로 스며드는지를 섬세하게 그린다. 작가는 죽음이 관계를 단절시키는 사건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지속임을 드러낸다. 이별의 그림자를 통과해 존재의 끈을 더듬는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강줄기처럼 흘러와 하나의 삼각주에 모이고, 그 자리에서 인물들은 자신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와 남겨진 자로서의 책임을 깨닫는다. 애도의 과정에서 여전히 서로를 기억하려는 의지는 삶에의 용기가 되어 견고하게 빛난다.
앨런 타운센드, <우주의 먼지로부터>
“애벌레는 과거의 지혜를 간직한 채 녹아내린 현재를 지나 달라진 미래에 이른다.
그렇다면 번데기는 부활의 메타포라고 말하기 힘들지 않을까. 그보다는 희망의 메타포다.
트라우마와 상실의 때에 극미하게 작아지지만, 그렇다고 그 현존이나 힘이 절대 덜해지지 않는 존재.”
생물지구화학자 앨런 타운센드는 네 살 딸과 동료 과학자인 아내가 1년 사이 모두 뇌암 진단을 받은 뒤, 상실의 한가운데에서 과학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묻는다. 그는 수십억 년 동안 우주먼지를 주고받으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해 온 우주의 역사, 녹아내렸다가 다시 형태를 얻는 애벌레와 번데기, 화산암을 뚫고 뿌리내린 작은 나무, 멸종에서 기어이 되살아나는 밤나무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이 에세이는 기적 같은 완치를 말하기보다 통제할 수 없는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삶의 비극을 과학자의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과학은 끝까지 사랑하고 질문하며 현실과 화해하도록 돕는 하나의 언어이자 애도의 방식으로 기능한다. 그의 문장을 따라가며 필멸의 삶을 우주의 시간 축 위에 놓고 바라보는 순간, 슬픔 너머에 자리한 삶의 면면이 떠오른다.
강미, ≪못 죽≫

강미의 첫 단편집 ≪못 죽≫에는 관계의 틈과 상처를 통과하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가족의 무게에서 벗어나 자신을 다시 호명하려는 여성들, 불안과 기대 사이에서 흔들리는 청춘들, 상처의 그림자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까지. 각기 다른 삶 속에서 끝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용기 내는 존재들은 보다 단단해진 마음으로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작가는 서늘하면서도 다정한 문장으로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살아내는 삶의 태도와 방식을 전한다. 헤어짐과 만남이 겹쳐지는 자리에 선 이들이 비로소 자신에게 건네는 인사는 깊은 여운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