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패션 업계를 관통한 핵심 키워드는 단연 ‘리세일’이었습니다. 고물가 시대의 경제적 대안부터 희소성에 기반한 재테크 수단까지. 리세일 시장을 찾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이미 주인이 있었던 물건을 다시 소유하려는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습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인류의 가장 클래식한 하이엔드 거래 방식인 경매와 그 궤를 같이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플랫폼에서 한정판 스니커즈를 결제하는 것과 소더비의 망치 소리를 기다리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존재합니다.

리세일이 돌고 도는 트렌드에 발맞춰 합리적인 소비와 영리한 투자를 지향하는 현재형 시장이라면, 경매는 패션에 역사적 서사를 입혀 이를 자산화하는 완성형 시장에 가깝습니다. 경매의 세계에서는 단순히 희귀하다고 해서 혹은 지금 유행한다고 해서 몸값이 치솟지 않습니다. 누구의 손을 거쳐왔으며 어떤 특별한 순간에 등장했는지를 증명하는 ‘프로브넌스(Provenance, 소장 기록)’와 그 속에 담긴 스토리가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리세일이 시장의 시세를 따르는 거래라면 경매는 아이템이 지닌 독보적인 서사를 평가받는 자리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2025년의 끝자락에서 올해 경매 시장이 가장 높은 금액을 매긴 패션 아이템은 무엇이었을까요? 올 한 해 동안 소더비·줄리엔스 옥션·본햄스·케리 테일러 등 주요 글로벌 경매장에서 낙찰된 아이템을 토대로, 소비재를 넘어 거대한 자산의 가치를 증명한 올해의 주인공들을 소개합니다. 

낙찰가 TOP 3

  1. 오리지널 버킨 백(1985년 프로토 타입) – €8,582,500 

지난 2025년 7월 10일, 파리 소더비 경매장을 뜨겁게 달군 최고의 작품은 오리지널 버킨 백이었습니다. 낙찰품은 무려 858만 유로(약 137억 원)에 최종 호명되며 핸드백 경매 역사상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전설적인 아카이브를 품에 안은 이는 일본의 빈티지 수집가 사키모토 신스케입니다. 그는 이번 경매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패션 유산을 지키는 선택으로고 설명했습니다. 이 가방은 에르메스가 오직 제인 버킨만을 위해 제작해 선물했고, 그녀가 1994년 경매에 내놓기 전까지 실생활에서 사용하며 세월의 흔적은 가방 곳곳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오리지널 프로토타입에서만 볼 수 있는 디테일과 세월을 켜켜이 쌓은 가죽은 제인 버킨의 자유로운 영혼과 에르메스의 장인 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낸 하나의 예술이 된 셈이죠. 이제 이 가방은 개인의 소장품을 넘어, 현대 패션사가 무엇을 기억하고 열광하는지를 대변하는 거대한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2. 코비 브라이언트 1996-97 루키 시즌 데뷔 매치에서 착용한 유니폼 – $7,000,000

패션이 아이콘을 기억하는 방식은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유효했습니다. 소더비 뉴욕 경매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1996-97 루키 시즌 ‘데뷔 매치 저지’에 700만 달러(약 97억 원)라는 경이로운 낙찰가를 매겼습니다. 시중의 일반적인 레이커스 저지가 30만 원 선임을 감안하면, 100억 원에 육박하는 금액은 파격적입니다. 이 천문학적인 숫자가 설득력을 얻은 이유는 NBA 전설의 ‘첫 시작’을 정확히 특정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유니폼에는 익숙한 24번이 아닌, 커리어 전반기의 등번호 8번이 새겨져 있습니다. 코비는 8번을 달고 3회의 우승을, 24번으로 등번호를 바꾼 후 2회의 우승을 추가하며 한 팀에서 두 번호가 모두 영구 결번된 유일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중 8번은 18세 소년이 코트에 첫발을 디딘 미완의 시점이자, 전설적인 ’81득점 경기’를 만들어냈던 거침없던 시절을 품고 있습니다.

3. 마이클 조던 1984 프리시즌 루키 매치 웨어 저지 – $4,215,000

경매가 3위에 이름을 올린 낙찰품 역시 NBA의 영원한 전설, 마이클 조던의 저지가 차지했습니다. 1984년 루키 시절 그가 실착했던 이 유니폼은 421만 5천 달러(약 58억 원)에 최종 호명했습니다. 경매 시장에서 두 슈퍼스타의 실착 유니폼이 낙찰가 상위에 오른다는 사실은, 아이템 자체보다 ‘누가 입었느냐’가 가치 평가의 절대적 기준임을 방증합니다. 이러한 ‘스포츠 아카이브’의 강세는 경매 시장에서 꾸준히 빛을 발합니다. 예컨대 르브론 제임스의 실착 저지는 2025년 3월 26일 소더비에서 $1,016,000에 낙찰됐고, 코비 브라이언트의 실착 운동화도 2025년 2월 7일 소더비에서 $660,000을 기록하며 높은 경매가를 형성했습니다.

아이콘의 아이템 3 

경매장이 늘 최고가만 좇지는 않습니다. 어떤 옷은 한 사람의 태도 혹은 역사적 장면을 고정해 두는 역할을 하면서 가치를 끌어올립니다. 무엇을 입었나보다 그 순간을 누가 만들었나가 먼저 작동하는 셈입니다.

1. 다이애나비의 ‘케어링 드레스(Caring Dress)’ – $520,000 

패션 경매 시장에서 영원히 불멸할 이름은 단연 다이애나 왕세자비입니다. 2025년 6월, 줄리엔스 경매에서 약 7억 원대에 낙찰된 벨빌 사순의 플로럴 드레스는 화려함보다 그녀가 남긴 ‘태도’로 깊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다이애나는 환우들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일부러 이 밝고 화려한 패턴의 드레스를 선택했고, 이는 이른바 ‘케어링 드레스(Caring Dress)’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이 밖에도 그녀가 생전 가장 아꼈던 빅터 에델스타인의 이브닝 드레스는 2023년 경매에서 약 110만 달러에 낙찰되며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위력을 다시금 입증한 바 있습니다.

2. 셰어(Cher) ‘If I Could Turn Back Time’ 코스튬 – $162,500

패션과 엔터테인먼트 역사에 선명한 흔적을 남긴 의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자산 가치가 또렷해집니다. 지난 3월 27일, 팝의 전설 셰어(Cher)가 투어에서 착용했던 의상은 치열한 입찰 끝에 한화로 약 2억 원이 넘는 금액에 낙찰됐고, 예상가를 두 배 이상 웃돌았습니다. 무대 의상계의 전설인 밥 매키가 디자인한 코스튬과 셰어의 영향력이 맞물리며 가격을 끌어올린 셈입니다. 이런 흐름은 동시대 신예에게도 곧바로 이어집니다. 채플 론(Chappell Roan)의 ‘Hot To Go!’ 뮤직비디오 의상 역시 한화로 약 1억 2천만 원에 팔리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처럼 경매는 아티스트가 만들어낸 상징적 장면에 투자 가치를 매기고, 컬렉터들은 그 순간을 미래의 가치로 판단해 미리 선점하려고 합니다.

3. 재클린 케네디의 바이올렛 코트 – $50,800 

1960년 11월 8일, 존 F. 케네디의 대선 승리가 확정되던 날 밤, 재클린 케네디는 바이올렛 컬러의 울 코트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은 승리의 순간을 담은 보도 사진과 함께 전 세계로 확산하며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 후 60여 년이 훌쩍 넘은 지난 12월 소더비 경매에서 이 코트는 추정가의 6배를 웃도는 5만 800달러(약 7,000만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이는 ‘누가, 언제 입었는가’라는 서사가 패션 아이템의 자산 가치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죠. 컬렉터들은 단순히 한 벌의 코트가 아니라 미국 현대사의 결정적 장면과 재클린 케네디라는 시대적 아이콘이 공유한 승리의 기억을 구매한 셈입니다.

아카이브의 귀환 3

경매장의 시선은 박물관급 복식에서부터 동시대 디자이너 아카이브까지 넓어졌습니다. 여기서 럭셔리는 값비싼 신상이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시간의 밀도로 의미합니다. 

1. 1620년대 영국 리넨 러플러(러프 칼라) – £299,000

패션사의 기원을 추적하는 이들에게 박물관급 복식은 궁극의 수집 대상입니다. 17세기 영국 귀족의 상징이었던 리넨 러플러는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당대 권력과 정교한 수공예 기술이 집약된 결정체라고 할 수 있죠. 약 5억 원을 상회하는 이번 낙찰가에는 럭셔리를 바라보는 시장의 관점 변화가 투영되어 있습니다. 컬렉터들은 새것이 주는 일시적 만족 대신 400년의 세월을 버텨온 정교한 공예와 그 속에 깃든 압도적인 아우라를 소유하고자 한 것입니다.

2. 크리스찬 디올 오트 쿠튀르 ‘아모르(Amour)’ 칵테일 드레스(SS 1955) – £33,800

1955년 S/S 컬렉션에서 선보인 디올의 ‘아모르(Amour)’ 드레스는 한화로 약 6,300만 원에 낙찰되며 오트 쿠튀르의 영속성을 입증했습니다. 이 드레스는 화려한 장식보다 오랜 세월 변치 않는 쿠튀리에의 정교한 제작 방식에서 진정한 가치를 드러냅니다. 하우스 라벨이 보증하는 엄격한 공정과 디올만의 미학적 규범을 옷 한 벌에 고스란히 담아낸 덕분입니다. 크리스찬 디올이 전후 패션계를 재정의했던 1955년의 정수와 그가 구축한 세계관은 오늘날 이 드레스를 통해 다시금 그 존재감을 발휘합니다. 

3. 라프 시몬스 ‘클로저(Closer)’ 핸드페인팅 파카 – £10,400

라프 시몬스가 자신의 브랜드를 종료한 이후, 그의 초기 컬렉션은 단순한 의류를 넘어 수집가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문화적 자산으로 통합니다. 2003년 F/W 컬렉션에 등장한 ‘클로저’ 아우터 역시 마찬가지죠. 피터 새빌(Peter Saville)의 그래픽 아트워크와 핸드페인팅 디테일을 결합해 현대 예술품에 가까운 가치를 증명합니다. 약 1,900만 원이라는 낙찰가에는 컬트적 밀도와 서브컬처에 대한 디자이너의 통찰이 녹아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유행을 좇는 소비를 넘어 디자이너의 유산을 소장하려는 컬렉터들의 움직임은 이제 경매 시장의 명확한 흐름을 형성합니다.

결국 올해 경매 시장을 정리해보자면, 2025년 패션 경매에서 주목받은 작품들에는 명확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시간이 남긴 서사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입니다. 누가 입었는지, 어떤 장면을 함께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드물게 살아남았는지와 같은 질문들이 경이로운 낙찰가를 뒷받침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경매는 찰나에 사라지는 패션을 영속적인 자산이자 기록물로 재탄생시키며, 과거의 유산이 미래에 도달하는 통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