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이 곧 막을 올립니다. 대회는 2026년 2월 6일부터 22일까지 열리고, 90개국 이상이 참가해 116개 금메달을 놓고 경쟁할 예정입니다.

이미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팀 유니폼을 앞다투어 공개하며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사실 올림픽은 메달을 향한 치열한 기록 경쟁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만큼, 패션과 문화, 예술 또한 스포츠와 한데 어우러져 거대한 미학의 장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올림픽은 새로운 스타일의 기준을 제시하며 리얼웨이의 풍경까지 흔들어 왔습니다. 1952년부터 독일 스키팀을 입혀온 보그너(Bogner)는 스키웨어 실루엣을 세련되게 다듬으며 럭셔리 스키웨어의 미학을 대중에게 확장했습니다. 몽클레르(Moncler) 역시 1968년 그르노블 동계올림픽에서 프랑스 다운힐 스키팀을 공식적으로 후원하며 설원 위 퍼포먼스웨어의 미학을 각인했고, 이 유산을 바탕으로 테크니컬과 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한 몽클레르 그레노블 라인을 론칭하며 경계를 넓혔습니다.

반대로 리얼웨이의 감성이 경기복 문법을 바꾼 경우도 있습니다. 2010년 밴쿠버에서 버튼(Burton)은 플란넬 체크 재킷과 데님을 닮은 팬츠로 스노보드 경기복을 제안했고, 숀 화이트(Shaun White) 같은 스타 선수들이 그 이미지를 확산시키며 동계 경기복의 고정관념을 흔들었습니다.

이처럼 패션은 올림픽 무대 위에서 단순한 의상을 넘어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메달보다 먼저 룩으로 메시지를 던졌던 결정적 순간들, 그 장면들을 동계올림픽을 통해 다시 읽어봅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도시의 상징을 입고 개막식을 밝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개막식, 경기장은 순식간에 거대한 패션쇼장으로 변모했습니다. 당시 조직위와 필름마스터 그룹은 이탈리아 패션 특유의 위트를 보여주기 위해 모스키노에 특별 의상을 의뢰했습니다. 각국 선수단 앞에서 국가명을 든 피켓 안내요원들을 위한 드레스였죠. 모스키노는 알프스 산맥을 모티프로 입체적이고 구조적인 드레스를 완성하며 퍼레이드의 화제성을 독점했습니다. 특히 개최국인 이탈리아 팀의 피켓 요원으로 등장한 미스 이탈리아 출신 에델파 키아라 마시오타(Edelfa Chiara Masciotta)의 의상은 단연 압권. 스커트 위에 토리노의 상징인 ‘몰레 안토넬리아나’를 포함한 도시 미니어처를 정교하게 구현했고, 드레스 전체에 트리처럼 조명을 장식해 설원 위에서 환하게 불을 밝혔습니다. 올림픽 세레머니가 단순한 행사를 넘어서 도시 브랜딩과 패션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완벽하게 묶어낼 수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준 순간이었습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장갑 한 켤레가 만든 대회의 얼굴

때로는 작은 굿즈 하나가 올림픽의 정체성을 더 선명하게 남기기도 합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그 역할을 맡은 건 캐나다 백화점 체인 허드슨스 베이가 선보인 벙어리장갑, 레드 미튼(Red Mittens)이었죠. 캐나다를 상징하는 빨간색에 하얀 단풍잎을 더한 이 장갑은 출시와 동시에 기념품의 범주를 넘어 대회 전체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캐나다 올림픽 위원회는 판매량이 350만 켤레를 넘어섰다고 발표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경기장 안 선수들뿐 아니라 거리를 가득 메운 관중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장갑을 끼고 응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올림픽 패션이 한 선수의 전유물이나 조직위의 결과물에 머물지 않고, 관중이 함께 공유하는 아이템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 좋은 사례로 남았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패션아트가 된 한국적 실루엣

피켓 안내요원의 의상을 논할 때 2018 평창 올림픽은 빼놓을 수 없는데요. 철사와 비즈 등으로 조형물을 짓는 금기숙 작가는 개막식에서 한국적 ‘패션아트’의 진수를 선보였습니다. 입체적인 조형미를 더한 의상 덕분에 안내 요원의 발걸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교한 미장센이 되었고, 대회의 첫인상 또한 독창적인 한복 실루엣으로 각인되었습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장식한 이영희 디자이너의 올림픽 찬가 의상 / 국립대구박물관 소장품

나아가 평창은 올림픽의 가장 경건한 순간에 한복의 아름다움을 배치했습니다. 올림픽 찬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소프라노 황수미가 착용한 디자이너 이영희의 한복은 전통 복식이 지닌 절제된 미학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평창의 눈꽃을 형상화한 은은한 은색 자수와 바람에 흩날리는 치맛자락은 전통 한복이 현대적인 대형 무대에서도 얼마나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지 증명했습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베라 왕이 완성한 은반 위의 서사

2022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피겨 스케이팅은 하이패션이 어떻게 경기의 언어로 스며드는지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네이선 첸(Nathan Chen)은 디자이너 베라 왕이 맞춤 제작한 두 벌의 의상을 입고 빙판 위에 올랐습니다.

첸은 쇼트 프로그램에서 턱시도를 재해석한 투피스 스트레치 앙상블로 세련미를 강조했고, 프리 프로그램에서는 강렬한 그래픽 프린트 톱과 블랙 팬츠를 조합해 퍼포먼스의 몰입감을 끌어올렸습니다. 비록 의상 자체가 기술 점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예술성을 핵심으로 삼는 종목 특성상 디자이너의 미감은 선수의 연기를 관중의 기억 속에 더 깊이 각인하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유니폼을 넘어 선수의 세계관을 담는 트렁크

피겨가 의상으로 서사를 끌고 간다면, 스노보드는 장비와 소지품이 선수의 이미지를 먼저 완성합니다. 그래서 요즘 올림픽에서 패션 하우스의 영향력은 옷장에서 끝나지 않고, 선수의 오브젝트로까지 뻗어 나가죠. 스노보드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 3관왕인 숀 화이트가 베이징 2022에서 들고 등장한 루이 비통 커스텀 스노보드 트렁크가 그 변화를 상징합니다. 루이 비통이 숀 화이트를 위해 제작한 이 특별한 트렁크는 그가 자신의 브랜드 화이트스페이스를 론칭하며 생전의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와 협업해 기획한 결과물입니다. 단순히 보드를 담는 도구를 넘어 패션 하우스의 장인 정신과 선수의 정체성을 하나로 결합한 셈입니다. 

이러한 행보는 올림픽 이후 더 구체적인 비즈니스로 이어졌습니다. 숀 화이트의 개인 스노보드 브랜드 화이트스페이스와 몽클레르 그레노블이 협업해 실제 스노보드를 선보이며, 패션 하우스의 영향력이 장비 영역까지 확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복이나 굿즈처럼 일회성 노출에 그치지 않고, 선수의 전문성과 하우스의 기술적 감각이 결합한 고기능성 라이프스타일로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동계올림픽은 얼음과 눈 위의 기록 경쟁을 넘어, 각국의 문화와 패션 하우스의 철학이 교차하는 거대한 쇼케이스가 됐습니다. 모든 장면은 경기 결과와 별개로 강력한 이미지를 남기며 전 세계인에게 긴 여운을 남겨왔습니다. 이제 시선은 2026 밀라노·코르티나로 향합니다. 다음 무대에서는 어떤 패션이 가장 먼저 시대의 공기를 포착할까요. 메달 집계표보다 오래 기억될 한 컷을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