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패션위크의 찬란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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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밀라노 패션위크가 막을 올렸습니다. 20여 년 만에 런웨이로 복귀한 랄프 로렌부터 남성성의 다양한 얼굴을 탐구한 돌체앤가바나, 절제된 우아함과 테일러링이 돋보였던 제냐, 그리고 전통과 혁신의 경계를 다시 묻는 프라다까지, 이번 패션위크의 시작을 알린 브랜드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통과 혁신, 장인정신과 실험성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패션위크가 한창인 가운데, 2026 F/W 맨즈 컬렉션의 하이라이트를 소개합니다.

랄프 로렌, 20년 만의 런웨이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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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밀라노 패션위크의 중심에는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무대에 오른 랄프 로렌의 ‘Fall 2026 퍼플 라벨 & 폴로 랄프 로렌 컬렉션’이 있었습니다. 20년 만에 밀라노 런웨이로 복귀한 랄프 로렌은 살롱 쇼 형식으로 폴로 랄프 로렌과 퍼플 라벨의 2026 가을 컬렉션을 한 무대에서 선보이는, 특별한 방식을 택했습니다. 아이비리그부터 프레피, 웨스턴, 워크웨어까지 아메리칸 헤리티지를 아우르는 스펙트럼을 통해 헤리티지 아이콘의 재해석을 펼쳐 보였죠. 컬렉션은 90년대 아이코닉한 폴로 스포츠 럭비 셔츠와 카무플라주 팬츠를 매치한 애슬레틱 룩으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알파인 부츠와 클래식 슈트를 결합하거나, 콘초 벨트와 볼캡, 인타르시아와 페어아일 패턴을 함께 레이어링한 슈트 등으로 클래식 코드의 경계를 대담하게 허물었는데요. 폴로 랄프 로렌의 프레피 정신과 퍼플 라벨의 절제된 우아함이 공존한 이번 컬렉션은 랄프 로렌 60년의 미학을 함축한, 아메리칸 헤리티지의 귀환을 알린 무대였습니다.

돌체앤가바나, 남성의 다채로운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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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상이란 무엇인가?” 돌체앤가바나는 2026 F/W 남성 컬렉션 ‘The Portrait of Man’을 통해 획일적인 남성상을 넘어 개성과 정체성의 무한한 변주를 제안하며 남성의 다채로운 초상에 대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컬렉션의 시작을 알린 것은 옷이 아닌, 다양한 인종과 국적을 지닌 모델들의 초상이었습니다. 이번 쇼는 단순히 룩을 나열하기보다, 한 인물의 궁극적인 개성과 스타일이 드러나도록 설계된 것이죠. 곧이어 펼쳐진 런웨이에는 돌체앤가바나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테일러링과 실루엣, 소재 디테일이 응축된 룩들이 등장했습니다. 골드 자수와 크리스털 버튼, 플로럴 아플리케를 더한 벨벳 슈트와 브로케이드 코트, 회중시계를 장식한 디테일은 르네상스 회화를 연상시키는 드라마틱한 장식미를 강조했죠. 여기에 레더 블루종과 데님, 트랙 팬츠에 테일러드 재킷을 매치한 룩은 클래식과 스트리트의 충돌을 보여주며 반항적인 에너지를 더했습니다. 서로 다른 실루엣과 소재, 질감의 대비를 통해 돌체앤가바나는 단일한 남성상이 아닌, 다층적인 남성의 초상을 완성했습니다.

제냐, ‘패밀리 클로젯’으로 돌아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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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밀라노 패션위크의 오프닝을 장식한 제냐의 2026 F/W 컬렉션은 삶의 기록을 펼쳐 보이는 무대였습니다. 알레산드로 사르토리는 이번 컬렉션을 ‘A Family Closet’이라 명명하며, 옷장을 세대와 세대를 잇는 기억의 저장소이자 스타일이 축적되는 공간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삶을 담은 옷, 삶을 위한 옷, 삶과 함께하는 옷이라는 슬로건 아래, 제냐는 이번 컬렉션을 하나의 삶의 기록처럼 풀어냈습니다. 쇼의 배경은 제냐 가문의 실제 개인 소장품에서 영감을 받은 ‘상상의 옷장’이었습니다. 무대 위에는 1930년대 에르메네질도 제냐 백작을 위해 제작된 최초의 슈트 ‘아비토 넘버원(ABITO N.1)’이 전시되며 브랜드의 출발점을 상기시켰습니다. 뉴트럴한 오가닉 톤의 컬러 팔레트 위에 유려하게 흐르는 실루엣, 절제된 디자인, 정교한 패턴과 소재의 완성도···. 기능성과 우아함이 공존하는 제냐의 이번 컬렉션에는 시간의 층위에 깃든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프라다, ‘BEFORE AND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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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다의 2026 F/W 남성 컬렉션은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동시에 이전의 것을 지우지 않고, 다른 형태로 진화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번 쇼가 열린 전시장 ‘데포지토(Deposito)’는 프라다 재단의 공간으로, 브랜드의 기억과 시간이 축적된 장소입니다. 거친 콘크리트 구조물과 문이 장식된 세트는 과거와 현재, 질서와 불완전함이 충돌하는 프라다의 세계관을 시각화하며 이번 컬렉션이 말하고자 하는 ‘불안정함 위에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몸 선을 따라 흐를 듯한 가늘어진 실루엣과 과장된 커프스, 불에 그을린 듯한 흔적과 인위적인 주름은 이번 시즌의 불완전한 미학을 상징합니다. 익숙한 테일러드 재킷과 셔츠, 니트웨어는 미묘하게 어긋난 비율과 마감, 소재의 변주를 통해 낯선 인상을 남겼죠. 이번 컬렉션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긴장 위에서 남성복을 다시 한번 재정립하는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디스퀘어드2, ‘Riding the Edge – Full Thro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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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라이징 스타 허드슨 윌리엄스(Hudson Williams)가 디스퀘어드2의 2026 F/W 쇼 오프닝을 장식하며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는 스키 슬로프를 연상시키는 런웨이를 가로지르며 이번 컬렉션의 시작을 알렸죠. 디자이너 딘 & 댄 케이튼이 이끈 컬렉션 ‘Riding the Edge – Full Throttle’은 겨울 스포츠의 과감함과 질주하는 듯한 속도감을 옷으로 풀어낸 무대였는데요. 브랜드의 뿌리인 캐나다의 겨울에서 영감을 받은 이번 컬렉션은 강렬한 에너지를 중심으로 과장된 실루엣과 대담한 컬러웨이, 해체와 재조합의 방식으로 완성했습니다. 오버사이즈 푸퍼 재킷과 스키 언더레이어, 레트로한 아프레 스키 스웨터, 하키 저지를 연상시키는 톱, 데님 트랙 재킷과 레더 블루종, 방수 팬츠와 과장된 실루엣의 아우터는 해체주의적인 미학이 돋보였죠. 스포츠웨어와 스트리트 무드를 넘나든 이번 쇼는 디스퀘어드2 특유의 유머와 반항적 에너지를 겨울 스포츠 테마 위에 과감하게 얹어낸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