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캐시미어 니트웨어를 선보이며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일군 패션 기업가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 Cucinelli). 그에게 패션 비즈니스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다짐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브루넬로 쿠치넬리를 이끄는 인간 중심적 가치, 그의 삶과 철학이 시적으로 담긴 <Brunello: The Gracious Visionary>. 이탈리아 영화와 음악의 두 마에스트로, 주세페 토르나토레(Giuseppe Tornatore)와 니콜라 피오바니(Nicola Piovani)가 만나 완성한 이 특별한 다큐멘터리가 마침내 로마에서 공개되었다.

로마 치네치타(Cinecittà) 스튜디오의 테아트로 22(Teatro 22)에서 열린 <Brunello: The Gracious Visionary> 월드 프리미어 현장. 뜨거운 박수와 함께 스크린 앞에 등장한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자신의 삶과 철학이 오롯이 담긴 필름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이 순간에 대한 흥분과 경이로움을 전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멀리 이곳 로마까지 와주신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기 두 분의 마에스트로는 영화와 음악 감독을 넘어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분은 이 영화를 통해 나의 영혼에 깊숙이 맞닿았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며 우리가 믿는 것을 향해 진심으로 나아갔죠.”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직접 출연한 <Brunello: The Gracious Visionary>. 이 영화는 그가 유년기의 경험과 자신을 둘러싼 인물들을 통해 어떠한 철학과 가치관을 갖게 되었는지, 어떠한 사명감으로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진다. 그의 사업 철학은 어린 시절 기억에서 출발한다. 움브리아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성실한 노동이 반드시 존중받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목격하며 성장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해 공장에서 일하게 된 아버지가 모욕적인 대우를 받고 돌아온 날, 아버지가 지키던 침묵은 그에게 어떤 회사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되었다. “어떤 성공도 인간의 존엄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그에게 노동은 단순한 생산 활동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방식이어야 했다. 또한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식사하던 시간도 그의 세계관을 형성한 중요한 장면으로 영화에 담겨 있다. 그가 가족이 식사하는 장면을 보며 뭉클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박했지만 서로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가족의 온기가 가득했던 그 식탁은 훗날 그가 회사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직원과 장인을 오롯이 존엄한 존재로 대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제안하는 그의 모토는 모두 이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극본과 연출을 맡은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말처럼 <Brunello: The Gracious Visionary>는 다큐멘터리도, 극영화도, 그렇다고 브랜드 광고 홍보용 영화도 아니다. 이 작품은 이 세 가지 형식이 서로 유기적으로 얽히며 마치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캐시미어처럼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따스하게 완성되었다. 단일한 구조의 일반 다큐멘터리 형식과 달리 쿠치넬리의 삶을 서로 다른 서사적 형식이 교차하는 구조 안에 담아냈다. 주변 인물들의 목소리와 아카이브 영상, 그리고 쿠치넬리 본인이 직접 출연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며 회고하는 시네마 형태의 실험적 내러티브가 돋보인다.
영화 <시네마 천국>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토르나토레 감독이 한 인물을 조망한 다큐멘터리에 집중한 건 처음이 아니다. <시네마 천국>의 음악 감독으로도 유명한 엔니오 모리코네의 전기영화, 그의 예술적 초상과 삶을 다룬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를 몇 해 전에 선보인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보다 여운을, 서사보다 감정을 중시하는 연출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쿠치넬리의 삶을 사건의 연대기로 나열하지 않고, 하나의 시적 흐름으로 담았다. 나아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니콜라 피오바니의 음악은 쿠치넬리가 추구한 시적 영화의 정서를 풍성하게 극대화했다.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주세페 토르나토레와 니콜라 피오바니라는 두 거장이 함께 이 작품을 완성했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하는 지점이었다.

월드 프리미어 이벤트가 열린 다음 날, 인터내셔널 프레스 컨퍼런스가 진행되었다. 로마 오페라극장에서 시작한 이 영화적 대화는 시적인 철학으로 이어졌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와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 영화음악을 맡은 니콜라 피오바니가 참석한 이 자리에서 전 세계 각국의 기자들은 영화에 담긴 태도와 철학에 대한 질문을 건넸다. 첫 질문은 이 영화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다큐멘터리인지, 극영화인지, 혹은 브랜드 영화인지 묻는 질문에 토르나토레 감독은 단호하면서도 차분하게 답했다. 그는 이 작품이 특정한 하나의 장르로 정의되기를 원하지 않는 영화라고 설명하며, 사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이에 덧붙여 브루넬로 쿠치넬리라는 인물을 설명하기에 가장 확실한 방식은 그의 삶을 하나의 시적 구조로 바라보는 것이라는 견해를 전했다. 이어진 질문은 브루넬로 쿠치넬리에게 향했다. 왜 지금, 자신의 삶을 영화로 남기기로 결심 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 작품이 자신의 업적을 정리하기 위한 전기적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직접 전하고 싶어 한 선택이라고 답했다. 특히 인간의 존엄, 일의 의미,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은 누군가가 대신 말해줄 수 없는 것이기에 자신의 목소리로 남기고 싶었다고. 이 영화는 회고가 아니라 대화이며, 과거를 정리하기보다 미래 세대에 건네는 질문에 가깝다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나아가 인상적인 영화음악에 대한 찬사에 니콜라 피오바니는 이 작품을 ‘시적인 영화’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음악이 장면을 이끌기보다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길 원했다고 밝혔다. 음악이 과장된 감정이나 극적인 전개를 보조하는 대신 그의 시선과 생각을 따라 선율을 선택했다며, 음악은 영화의 메시지를 강조하기보다 그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돕는 역할을 맡았다고 강조했다.
“이 다큐멘터리에 담긴 이야기는 결국 끈기와 열정의 서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모든 젊은이에게 바칩니다.
그들이 언제나 자신의‘아름다움을 향한 꿈’을 두려움 없이 가꾸어나가길 바랍니다.
꿈에서부터 인간의 진정한 정신적 성장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패션 기업가, 브루넬로 쿠치넬리(BrunelloCucinelli)
이 실험적인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윤리와 신념의 대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쿠치넬리는 영화가 자신의 브랜드를 소개하기보다, 자신이 평생 고민해온 질문들을 공유하는 장이 되길 바랬다. 인간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비즈니스의 경제적 구조는 인간의 존엄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아름다움은 어떤 책임을 요구하는가라는 질문에 영화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이런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고자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퀄리티와 장인정신,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을 중심에 둔 기업을 이끌며 인문학적 자본주의와 인간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원칙을 확산하는 데 힘쓰는 쿠치넬리. 솔로메오 마을의 복원, 장인 학교 설립,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과 조경 프로젝트는 이러한 그의 철학이 꾸준하게 실천되어왔음을 증명한다. 결국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Brunello: The Gracious Visionary>라는 이야기가 품은 끈기와 열정의 서사를 이 시대 모든 젊은이에게 바친다. 꿈을 향해 두려움 없이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인간의 진정한 정신적 성장은 오롯이 그리고 언제나 꿈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읊조리며.

그리고 그의 유년과 청년 시기를 연기한 배우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