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곳인 답십리 고미술상가가 최근 힙한 성지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옛것들 사이로 감각적인 젊은 사장님들이 둥지를 틀며 이곳은 이제 단순한 골동품 시장을 넘어 보물 찾기를 즐기는 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는데요. 여러 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미로 같은 이곳이 처음이라면 알짜배기들이 모여 있는 2동만 공략해도 충분합니다. 주의할 점은 타이밍! 일요일은 상가 전체가 쉬고 평일엔 문을 닫는 곳이 많으니 활기찬 보물 지도를 완성하고 싶다면 반드시 토요일에 방문하길 추천할게요. 복도에 무심하게 쌓인 물건들 속에서 나만의 취향을 발굴하는 짜릿함 답십리의 핫한 상점 4곳을 소개합니다.

호박포크아트갤러리

@hobakfolkartgallery
@hobakfolkartgallery

제프 쿤스와 조선 목가구의 힙한 동거

고미술 상가에는 고미술만 있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편견을 보란 듯이 깨뜨리는 공간이 호박포크아트갤러리입니다. 이곳의 주인장은 물건의 국적이나 연식 같은 스펙보다는 당장 내 방에 두었을 때 보기에 좋고 쓰기에 좋은가를 최우선으로 두는데요. 그래서일까요? 매장 한편에는 현대 미술의 악동 제프 쿤스의 대형 포스터가 고급 액자에 담겨 걸려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이질적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그 옆에 놓인 땟물 좋은 조선 시대 목가구와 환상적인 케미스트리를 보여줍니다. 이곳은 조선의 반닫이부터 유럽의 빈티지 아카이브 피스까지 시공간을 초월한 다채로운 셀렉션을 자랑합니다. 정직하고 깔끔한 USM 모듈 가구와 고미술의 조합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던 사람이라면 이곳의 과감한 믹스 매치에서 새로운 인테리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호박포크아트갤러리는 단순히 옛것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옛것과 새것을 감각적으로 비빔밥처럼 섞어내는 큐레이션 쇼룸에 가깝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뻔하지 않은 공간 연출을 꿈꾼다면 이곳이 정답입니다.

오브

@ofjec_t
@ofjec_t

손끝으로 느끼는 시간의 온도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인스턴트 시대, 오브(OF)는 잠시 멈춰 서서 시간의 가치를 되묻는 공간입니다. 박물관 진열장 너머의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호흡하는 생활 기물로서의 고미술을 지향하죠.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터치입니다. 보통 값비싼 고미술품은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경고문이 붙기 마련이지만 오브에서는 대다수의 기물을 직접 만져보고 그 물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손에 쥐었을 때 전해지는 도자기의 서늘한 감촉, 나무의 따뜻한 결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낡은 것이 왜 아름다운지 왜 여전히 사랑받는지 깨닫게 됩니다. 사장님은 완벽하게 완성된 공간을 보여주기보다 손님들과 함께 공부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공유하고 싶어 합니다. 클래식한 멋을 음미할 줄 아는 이들이라면 이곳에서 자신만의 보물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낡은 물건에 담긴 기억을 쓰다듬으며 진정한 의미의 새로움을 발견해 보세요.

고복희

@gobokii_kr
@gobokii_kr

국경 없는 취향의 평온한 화합

가게 이름에서부터 푸근함과 정겨움이 느껴지는 고복희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온 물건들이 기묘하고도 평화로운 조화를 이루는 곳입니다. 한국의 소박한 사발, 프랑스의 화려한 앤티크 그릇, 중국의 기품 있는 다구, 그리고 일본의 정갈한 소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지만 어느 하나 튀는 법 없이 서로를 부드럽게 감싸안습니다. 이곳은 쇼핑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일상에서 영감이 필요할 때 방문하고 싶은 쉼터에 가깝습니다. 일과 중 잠시 들러 구경하면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기물들이 내뿜는 따뜻한 에너지 덕분에 마음이 차분하게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죠. 화려한 설명이나 호객 행위는 없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공간을 꽉 채우는 힘, 그것이 바로 고복희가 가진 매력입니다. 빈티지 가구 위에 무심하게 놓인 찻잔 하나, 벽에 걸린 족자 하나가 주는 위로가 필요하다면 고복희의 문을 두드려보세요.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감성을 채우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예명당

@yemyungdang

복도 끝에서 만난 14세기의 차 한 잔

답십리 2동의 긴 복도를 걷다 보면 시선을 사로잡는 정갈한 누빔 천을 마주하게 됩니다. 홀린 듯 발걸음을 멈추면 사장님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 바로 예명당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골동품점이 아니라 다도에 쓰이는 누빔 천과 함을 직접 개발하고 제작하는 장인의 공방이자 사랑방입니다. 예명당의 시그니처인 ‘누비함’은 그 섬세한 정성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구경을 하다 보면 사장님은 자연스럽게 차 한 잔을 권하시는데요. 이때 내어주시는 찻잔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무려 14세기 고려청자나 조선 후기 신안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진품 찻잔에 차를 담아주시기도 하거든요. 박물관 유리창 너머로만 보던 수백 년 전의 도자기를 내 손에 쥐고 차를 마시는 경험, 상상만으로도 짜릿하지 않나요? 손끝에 닿는 도자기의 질감에서 흐르는 시간을 느끼며 옛것이 주는 묵직한 감동과 사장님의 따뜻한 환대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