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자리의 충만함을 믿는 마음, 내일로 기꺼이 향하기 위한 내면의 근육, 삶을 지탱하는 힘.
사랑을 말하는 예술 작품 속 언어들을 모았다. 우리의 세계가 각양각색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라며.

앨런 타운센드 <우주의 먼지로부터>

문학동네

“나는 우리의 필연적인 소멸에서 위안을 느낀다. 가끔은 우리가 무한에 가까운 잠재력을 품은 씨앗 같다고 생각한다.
당신과 나, 그리고 모든 인간의 원자들은 세상이 아직 다 써 내려가지 않은 이야기에서 한 부분을 담당할 것이다.
나에게 그것은 우리의 사랑이 영원하리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앨런 타운센드 <우주의 먼지로부터>

‘우리는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존재’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기든지 우리는 계속 여기 존재한다고. 언제나 그럴 것이라고”라는 문장을 쓰기까지 작가이자 과학자 앨런 타운센드가 거쳐왔을 절망과 희망, 아픔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환희들, 그리고 깊은 슬픔을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긴 후에도 나는 다 알지 못한다. 네 살 딸아이에 이어 아내마저 뇌종양 판정을 받은, “대략 계산해보건대 1천억 분의 3보다 희박한 듯”한 이 “붕괴의 순간”을 감히 가늠할 수 없다.
거대한 절망 앞에서 그와 아내는 오랫동안 매진해온 과학을 통해 얻은 것을 사랑으로 결합하며 함께 나아갔다. 그는 “과학을 하면서 모든 예상과 증거를 반박하는 결과를 만날 때가 참 좋”았기에 내 가족의 병이 “그러한 예외이기를” 바라면서도, 과학으로 여러 가능성을 직시해왔기에 “승산이 없을 수 있음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죽음을 앞둔 그의 아내는 “과학의 시선으로 삶을 대하면서 평온과 용기를 발견했”고, 그로 인해 그 역시 절대적 괴로움과 상실의 순간에도 아내에게 “이제 당신은 자유로워졌다고, 우리는 괜찮을 거라”는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앨런 타운센드의 이야기를 통해 과학이 사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과학이 삶을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을, 과학이 무엇보다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삶을 끝내기 직전까지 갔었던 사건이 분자 수준에서부터 나를 바꿨다”는 작가의 글에서 상실이라는 잿더미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발견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그러듯”.

알랭 기로디 <미세리코르디아>

엠엔엠인터내셔널(주)

“무상의 사랑을 잘 아니까. 영원히 침묵하며 사랑할 수 있어요.”

알랭 기로디 <미세리코르디아>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이 아니라 말할 수 있나. 어디까지가 사랑의 범주인가. 욕망, 질투, 분노, 의심, 죄책감, 집착 등 영화 <미세리코르디아> 속 인물들이 분출하는 모든 감정은 곧 사랑으로 귀결된다. 제목으로 쓰인 ‘자비’마저(미세리코르디아는 자비를 뜻한다).
엄마와 친구의 관계를 의심하는 것을 넘어 망상에 빠지는 ‘뱅상’. 그와의 갈등 끝에 충동적으로 뱅상을 죽이고 은폐한 ‘제레미’. 제레미를 향한 의심과 관심 사이에서 은근한 욕정을 드러내는 뱅상의 엄마 ‘마르틴’. 그리고 곁에 두고 싶다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제레미를 비호하는 사제 ‘필리프’까지. 진실을 막고, 금기를 깨는 이들의 욕망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매일 보는 낙으로’ 평생 비밀을 지키겠다 하며 ‘무상의 사랑’을 표현한 필리프의 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초월한 무한하고 절대적인 마음 앞에서 옳고 그름과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중요치 않다. 그것이 용납할 수 없는 파멸에 이른다 해도 말이다.
<미세리코르디아>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누군가를 향한 감정의 발현 자체가 곧 ‘사랑’이 아닐까. 그것이 꼭 아름답고 성스럽지 않더라도. 곱게 포장된 세계 밖에도 사랑이 있음을, 그 또한 사랑임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장필순 ‘그림’

“무지개 호수 외로운 뱃길 흰 은하수를 천천히 걸어
다다랐나요 꿈꾸던 그곳
오랜 시간 동안 날 지켜준 그대의 노래는
바람처럼 우리가 그리던 저 그림 속으로”

장필순 ‘그림’

여덟 번째 정규 앨범 에 대해 음악가 장필순은 “밝고 신나진 않아도 다 듣고 나면 위로가 되는, 말하자면 우울한 위로 같은 앨범”이라 말했다. 그의 말처럼 열두 개의 트랙에는 슬픔과 우울 같은 상념이 깃들어 있었다. 그 마음이 가장 진하게 느껴진 건 두 번째 트랙 ‘그림’이다. 이 곡은 앨범이 나오기 한 해 전 세상을 떠난 음악가 조동진을 향한 두 동생 조동익(작곡), 조동희(작사), 그리고 오랜 시간 함께 음악을 만들어온 동료이자 제자 장필순(노래)의 작별 인사다. 떠나보낸 이를 향한 그리움이 장필순의 소리로, 숨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음악을 들으며 상실을 사랑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고요히 응시하는 음악에서 말 그대로 ‘우울한 위로’를 받았다. 이별까지 사랑할 순 없다지만, 장필순과 그의 음악 친구들은 이별마저도 진정으로 받아들이며 사랑하고 있었다. 남겨진 이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애도가 ‘그림’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