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터가 된 이후로 휴가를 온전히 즐겨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를 돌보고 챙기는 것 역시 결국 일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받아들였고, 2023년 여름에 태국의 작은 섬 끄라비로 떠났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졌고, 그 시절을 떠올리면 상쾌한 풀 냄새가 먼저 다가온다.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신테틱 네이처는 이런 기억을 닮아 있다. 바질과 은방울꽃 향이 살짝 젖은 잎사귀처럼 싱그럽게 퍼지다가 재스민의 잔잔한 잔향으로 조용히 마무리되는 향.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쉴 때 복잡하던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는 순간과도 꼭 닮아 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파도는 늘 같은 속도로 부서지고 해는 정해진 시간에 뜨고 지는데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루가 충분히 완성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속에서 나 역시 그저 존재해도 괜찮았으니까. 아주 오랜만에 숨을 탁 틔울 수 있었던 곳,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춰도 괜찮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운 장소. 아마도 나는 끄라비를 아주 오래도록, 어쩌면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마리끌레르> 뷰티 디렉터 김상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