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때론 한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됩니다.

출처 : 인스타그램 @milanocortina2026

아르마니 이후의 밀라노

2025년 9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르마니 홈페이지에는 ‘Milan, September 4th 2025’ 라는 문구를 시작으로 그의 사망 소식을 전했죠. 공식 발표에 ‘밀라노’라는 지명을 써 놓을 정도로 그와 밀라노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아르마니 덕분에 ‘메이드 인 이탈리아’가 세계적 언어가 됐다고 평가하는 패션 매체도 많을 정도니까요.

아르마니 홈페이지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이탈리아 선수들을 위해 일하는 것은 언제나 큰 기쁨이자 자부심의 원천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이탈리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문장입니다.

출처 : 인스타그램 @milanocortina2026

걸음으로 남긴 추모

제25회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 개막식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향한 헌정 퍼포먼스로 그 시작을 알렸어요. 거대한 스포츠 이벤트의 개막식에서 한 디자이너를 기린다는 건 무척 이례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그 장소가 밀라노라면, 그리고 헌정 대상이 아르마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밀라노는 오랫동안 이탈리아의 경제, 디자인, 패션이 교차하는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늘 패션을 산업이자 언어로 사용해 왔고, 아르마니는 그 언어를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만들어온 사람이니까요.

출처 : 인스타그램 @milanocortina2026

도시는 사람을 닮는다

개막식에서 아르마니를 기리는 방식은 묵직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설명 대신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초록색, 하얀색, 빨간색 옷을 입은 모델들이 무대 위를 걸었고 하나의 이미지처럼 움직였습니다. 옷에는 메시지가 담겼고 워킹은 퍼포먼스이자 애도였습니다. 밀라노가 사랑한 디자이너를 떠나보내는 방식으로는 이보다 더 적절한 연출도 없었을 겁니다.

출처 : 인스타그램 @milanocortina2026

아이러니하게도 이 방법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올림픽이라는 전 세계적 무대에서 그의 이름이 곧 이 도시를 설명하는 단어가 됐거든요. 밀라노가 어떤 곳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던 것이죠. 아르마니는 단순히 유명한 디자이너가 아니었습니다. 밀라노의 이미지를 세계에 각인시킨 인물이었습니다. 덕분에 ‘잘 재단된 슈트 같은 도시’라는 이미지도 생겼습니다.

제25회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 개막식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아르마니를 추모합니다. 그래서 그를 닮은 방식으로 올림픽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