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자리의 충만함을 믿는 마음, 내일로 기꺼이 향하기 위한 내면의 근육, 삶을 지탱하는 힘.
사랑을 말하는 예술 작품 속 언어들을 모았다. 우리의 세계가 각양각색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라며.

피에르 베르제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프란츠

“어젠 플레옐에서 멋진 공연을 관람했어. 정명훈 음악 감독이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을 지휘했지.
극도의 정확성은 감수성을 둔화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는 늘 놀라곤 해.
(…) 오직 극단으로 몰아붙인 엄격성만이 가능케 하는 정점에의 도달.
그 순간을 아는 이들은 세상에 무척 드물지. 너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어.”

피에르 베르제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20대 시절, 얄팍한 사랑이 흔들리고 요동칠 때마다 사랑이 경외로 나아가는 순간을 동경해왔다. 더 이상 상대에게서 무언가를 바라거나 요구하지 않고, 그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존재하도록 허락하는 것, 상대를 붙잡지 않으면서도 곁을 지키는 성숙함을. 사랑과 경외, 이 두 감정이 공존할 때 일시적인 열망이 어떻게 지속 가능한 신뢰로 이동하는지 마흔이 다 되어서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그 믿음 위에서, 비로소 타인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생 로랑은 예민했고, 불안정했으며, 스스로를 지키는 데 능숙하지 못한 창작자였고, 피에르 베르제는 그 반대편에 서서 그를 단단히 지켜냈다. 두 사람은 연인으로서는 끝을 맞았지만, 감정이 소진된 뒤에도 신뢰가 남아 있었다. 2002년 생 로랑이 은퇴한 뒤에도, 베르제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생 로랑의 죽음 이후에는 작품과 아카이브를 관리하며, 그를 역사로 남기고자 했다. 이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그 순간을 아는 이들은 세상에 무척 드물지, 너는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어.”

앨런 타운센드 <우주의 먼지로부터>

문학동네

“나는 우리의 필연적인 소멸에서 위안을 느낀다. 가끔은 우리가 무한에 가까운 잠재력을 품은 씨앗 같다고 생각한다.
당신과 나, 그리고 모든 인간의 원자들은 세상이 아직 다 써 내려가지 않은 이야기에서 한 부분을 담당할 것이다.
나에게 그것은 우리의 사랑이 영원하리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앨런 타운센드 <우주의 먼지로부터>

‘우리는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존재’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기든지 우리는 계속 여기 존재한다고. 언제나 그럴 것이라고”라는 문장을 쓰기까지 작가이자 과학자 앨런 타운센드가 거쳐왔을 절망과 희망, 아픔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환희들, 그리고 깊은 슬픔을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긴 후에도 나는 다 알지 못한다. 네 살 딸아이에 이어 아내마저 뇌종양 판정을 받은, “대략 계산해보건대 1천억 분의 3보다 희박한 듯”한 이 “붕괴의 순간”을 감히 가늠할 수 없다.
거대한 절망 앞에서 그와 아내는 오랫동안 매진해온 과학을 통해 얻은 것을 사랑으로 결합하며 함께 나아갔다. 그는 “과학을 하면서 모든 예상과 증거를 반박하는 결과를 만날 때가 참 좋”았기에 내 가족의 병이 “그러한 예외이기를” 바라면서도, 과학으로 여러 가능성을 직시해왔기에 “승산이 없을 수 있음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죽음을 앞둔 그의 아내는 “과학의 시선으로 삶을 대하면서 평온과 용기를 발견했”고, 그로 인해 그 역시 절대적 괴로움과 상실의 순간에도 아내에게 “이제 당신은 자유로워졌다고, 우리는 괜찮을 거라”는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앨런 타운센드의 이야기를 통해 과학이 사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과학이 삶을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을, 과학이 무엇보다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삶을 끝내기 직전까지 갔었던 사건이 분자 수준에서부터 나를 바꿨다”는 작가의 글에서 상실이라는 잿더미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발견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그러듯”.

유수연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문학동네

“내 마음은 재배중
같은 슬픔만 계속 키워내는 중

단숨에 타오르고 싶나
작은 군불을 기다리나

반짝이면 다 사랑인 줄 알았다”

유수연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사랑은 슬픔을 동반하는 일이란 생각을 자주 한다. 모든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하고, 영원할 수 없기에 필연적인 상실감을 안길 테니 말이다. 사랑할 용기가 희미해질 때면 유수연의 두 번째 시집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를 펼치곤 한다. “산다는 게 슬픔을 갱신하는 일”(‘정중하게 외롭게’) 같다며 책을 연 시인은 사랑과 사람, 삶 속에 자리한 슬픔을 익숙하면서도 다정한 언어로 말하듯이 전한다. “사랑도 삶도 맛만 보며 살 순 없을까”(‘우리의 허무는 능금’), “사랑하지 않을 때까지 사랑해보면 / 사랑 못할 게 없으니까”(‘수석’), “해결하면 사라지는 것 /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요”(‘행복 1’).
지나간 기쁨을 떠올리고, 미련과 허무를 끌어안으며 사랑으로 인한 감정을 여러 결로 섬세하게 펼쳐놓은 유수연의 시구들은 관계의 흔적을, “흐름의 시작을 찾을 수 없는 유수와 같은 시절”(‘소양강 소로우’)을 돌아보게 했다. 그렇게 ‘사랑의 원류’를 좇는 화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사랑의 불가피한 특성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랑하며 마주하는 감정들은 삶의 시간만큼 쌓여간다는 것을, 그 다양한 감정을 온전히 느끼다 보면 내일을 기꺼이 맞이할 ‘내면의 근육’이 자란다는 사실을 페이지를 넘기면서 깨달았다. “우리를 키울 거름은 우리가 떨군 사랑”이라던 시인의 표현을 되새기며.

이제니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

“그러니까 사랑 때문이다 사랑 때문이다.
없는 목소리가 그리워서 사전을 펼쳐 열어 사랑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는 밤이 있다.”

이제니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

사랑을 가장 선명하게 감각하는 순간은 대체로 그 안에 있을 때가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낸 후에야 뒤늦게 찾아온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올 때가 있다. 이제니의 시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는 누군가와 함께일 때보다 그들이 더는 곁에 없을 때 분명해지는 게 사랑이라는 사실을 새삼 되새겨보게 한다. 세상을 떠난 개가 곤히 잘 때 느껴지던 숨 냄새, 누군가와 살을 맞댈 때 전해지던 온기, 언젠가 나란히 앉아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피아노 건반을 누르던 때의 감촉 같은 것.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감각이란 이렇듯 어느 날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서,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향기에서, 익숙한 감촉에서 선명히 되살아난다. “사랑은 완전한 상실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작가의 말이 시를 읽고 나니 마냥 슬프게 들리지 않았다. 함께 지나온 시간이 우리 안에 남긴 흔적은 상실 이후에도 색과 형태를 바꿔가며 계속해서 살아 숨 쉴 테니까. 시의 화자처럼 ‘떠나간 이의 목소리가 그리울 때마다 사전을 펼치고 사랑이란 낱말을 찾아보는’ 순간에, 우리는 우리가 사랑했던 대상이 하나의 고정된 이름에 갇히지 않고 냄새와 소리, 감촉과 같이 다양한 이름으로 흩어져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이 깊은 위로로 다가온다.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문학동네

“나는 사랑의 소모를 두려워했다.
마치 광합성으로 스스로 제 먹이를 만드는 녹색식물처럼,
햇빛을 받아들이고 물을 길어 올려 자기 안에서 스스로 먹이를 만드는 사랑을 원했다.
내 몸속에서 혼자 사랑이라는 먹이를 만들고 그것을 먹으며 생존해가기를 말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황량한 겨울 들판을 헤매며 타인을 찾아 울부짖고 싶지는 않았다.”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소설 <새의 선물>에서 숱한 헤어짐을 거치며 삶을 관망하고, 절망보다 희망을 두려워하던 열두 살 소녀 ‘진희’. 그 아이는 어느덧 자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서 “애인은 셋은 되어야 사랑에 대한 진지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30대 중반의 어른이 된다. 진희에게 보편적 윤리나 책임을 운운하고 싶지 않다. 진희는 사랑을 앞에 두고도 사랑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지난날 자신을 지켜준 냉소에 충성하는 방식으로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진심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 무게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토록 진희 편을 들게 되는 이유는 그에게서 애써 외면해온 내 안의 모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진희에 대한 옹호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한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진희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희망에 기대를 걸어보기를, 부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이 바람을 붙들고 있다 보면, 나는 어느새 사랑을 믿는 사람이 된다. 진희를 향한 이 마음이 오래도록 묻어둔 나의 지난날에 건네는 응원이자 위로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진희를 꼭 안아주고 싶었던 마음으로, 언젠가 그때의 나를 안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