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옷도 작품이 될 수 있다.
패션 역사에서 아카이브는 늘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우스에 새로 영입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는 일종의 교과서였고, 시대를 정의한 디자이너의 아카이브 피스는 수많은 패션 학도에게 창작의 출발점이 되어 주기도 했죠. 최근, 아카이브를 둘러싼 풍경은 미묘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디자이너와 컬렉터의 영역을 벗어나 셀러브리티의 무대와 레드카펫에서도 빛을 발하고, 이제는 전시까지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인데요. 지난 해에는 아제딘 알라이아 재단은 ‘라 갤러리 디올(La Galerie Dior)’에서 공개한 ‘TWO MASTERS OF COUTURE’를 통해 알라이아가 40여 년간 수집한 디올 쿠튀르 아카이브를 공개했고, 라프 시몬스는 도버 스트리트 마켓 긴자에서 자신의 디자인 여정을 집약한 아카이브 피스 팝업 전시를 선보였죠. 이렇듯이 아카이브 패션은 이제 레드카펫도 모자라서 전시장까지 점령하고 있죠. 올해 유난히 활발하게 들려오는 아카이브 전시 소식을 정리해 봤습니다.
Westwood | Kawakubo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Victoria)은 20세기 패션의 규율을 무너뜨린 두 혁명가,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레이 가와쿠보를 조망한 전시를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는 펑크, 젠더, 신체, 권력 구조라는 테마 아래 140여 점의 주요 아카이브 피스를 선보이며, 두 디자이너가 옷을 통해 사회적 규범에 어떻게 도전해 왔는지를 탐구하죠. 웨스트우드의 본디지 팬츠와 코르셋, 가와쿠보의 해체적 실루엣, 그리고 리한나가 2017년 멧 갈라에서 착용한 드레스까지.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상징적인 피스들을 통해 두 인물이 패션을 통해 던진 사회적인 메시지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죠.
위치 |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멜버른
기간 | 2025년 12월 7일 – 2026년 4월 19일
Helmut Lang: Séance de Travail 1986–2005







헬무트 랭은 데뷔와 동시에 패션계의 질서를 뒤흔들었습니다. 화려함과 과잉의 시대에서 그는 덜어내고 비워낸 특유의 미니멀리즘을 과감하게 제시하며 한 시대를 이끌었죠. ‘Helmut Lang: Séance de Travail 1986–2005’는 헬무트 랭의 급진적이고 컬트적인 컬렉션이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했는지를 해부하듯 보여주는 아카이브 전시입니다. 그의 고향 비엔나 응용미술관(MAK)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랭이 기증한 1만 점 이상의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컬렉션을 비롯한 패턴 샘플, 원단 스와치, 캠페인 이미지, 쇼 노트, 설치 작업까지 폭넓게 공개합니다. 전시를 통해 패션 시스템을 재정의했던 헬무트 랭이 이끌던 헬무트 랭을 입체적으로 읽어낼 수 있죠.
위치 | Museum of Applied Arts (MAK), 비엔나
기간 | 2025년 12월 10일 – 2026년 5월 3일
Schiaparelli, Fashion Becomes Art


엘사 스키아파렐리는 패션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선구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초현실주의를 쿠튀르에 도입하며 옷을 캔버스로 활용했는데요. ‘Schiaparelli, Fashion Becomes Art’ 전시는 스키아파렐리의 혁신적인 세계관을 대규모 아카이브로 조망합니다. 전시에서는 살바도르 달리와 협업한 ‘랍스터 드레스’, 트롱프뢰유 니트, 스켈레톤 드레스 등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아이코닉한 피스들이 공개되는데요. 여기에 다니엘 로즈베리가 이끄는 현대 스키아파렐리의 오트 쿠튀르 작품이 병치되어 과거의 아카이브가 오늘날 패션 하우스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줍니다.
위치 | V&A South Kensington, 런던
기간 | 2026년 3월 28일 – 11월 1일
The Antwerp Six

월터 반 베이렌동크, 드리스 반 노튼, 앤 드뮐미스터, 딕 비켐버그, 디르크 반 사네, 마리나 이. ‘앤트워프 식스’는 1980년대 벨기에 패션을 세계적인 영역으로 올려놓은 전설적인 디자이너 그룹입니다. 이들은 앤트워프 왕립 미술학교에서 린다 로파의 지도 아래 1986년, 최정예로 졸업한 인물들인데요. 졸업과 동시에 런던 ‘브리티시 디자이너 쇼’를 통해 패션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앤트워프 식스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학생 시절부터 패션 신에서 핵심 디자이너로 자리 잡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가는데요. 각 디자이너의 초창기 컬렉션부터 아카이브 피스 등을 통해 패션의 흐름을 이끈 앤트워프 식스의 미학을 한눈에 엿볼 수 있죠.
위치 | Fashion Museum Antwerp (MoMu), 앤트워프
기간 | 2026년 3월 28일 – 2027년 1월 17일
NIGO: From Japan with Love

하라주쿠의 백스트리트에서 출발해 베이프, 휴먼 메이드를 거쳐 겐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기까지. 니고의 디자인 여정에는 언제나 빈티지 아카이브가 있었습니다. ‘NIGO: From Japan with Love’는 니고의 30여 년에 걸친 창작 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인데요. 니고의 개인 컬렉션을 중심으로 700점 이상의 오브제가 공개되며, 빈티지 의류, 희귀 디자인 피스, 세라믹 작품, 그리고 전시를 위해 제작된 실물 크기의 유리 다실 설치 작품까지 폭넓게 선보입니다. 특히 니고의 10대 시절 방을 재현한 공간은 그의 취향과 수집 문화가 어떻게 디자인으로 전환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위치 | Design Museum, 런던
기간 | 2026년 5월 1일 – 10월 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