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눈에 띄는 컬렉션은 어디일까요?

지난 2월 11일부터 16일까지 맨해튼 전역을 뜨겁게 달군 2026 F/W 뉴욕 패션 위크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시즌 뉴욕은 52개의 런웨이 쇼와 46개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포문을 열었는데요.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토리 버치(Tory Burch), 케이트(Khaite)를 필두로, 앤드루 커웬(Andrew Curwen)과 디오티마(Diotima) 같은 신예들의 등장은 뉴욕 패션의 세대교체와 새로운 에너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실용성과 현실성을 바탕으로 뉴욕 여성의 라이프스타일을 투영한 이번 컬렉션의 핵심 트렌드와 이슈를 정리해 드립니다.

캘린더 밖에서 선점한 뉴욕의 공기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와 랄프 로렌(Ralph Lauren)은 뉴욕 패션 위크 공식 일정이 시작되기 직전인 2월 9일과 10일, 오프 캘린더 쇼를 연이어 선보이며 뉴욕의 공기를 먼저 장악했습니다. 먼저 마크 제이콥스는 90년대 후반의 미니멀한 기운과 절제된 그레이 팔레트로 자신의 아카이브를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최근 몇 시즌간 보여준 과장된 볼륨 대신 한층 슬림해진 실루엣과 정교한 테일러링으로 방향을 틀며 뉴욕다운 전위적 태도를 옷의 비율과 리듬만으로 증명했습니다. 반면 랄프 로렌은 트리베카의 공간을 무대로 브랜드의 세계관을 더욱 거대하게 펼쳐 보였습니다. 시그너처인 에퀘스트리안 무드를 중심에 두고 메탈릭한 디테일을 가미해 모험과 낭만을 강조하며, 클래식이 판타지로 확장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완성했습니다. 뉴욕 패션 위크와 따로 또 같이 발맞추는 두 브랜드의 행보는 뉴욕 컬렉션의 위상을 둘러싼 논쟁을 역설적으로 잠재웁니다. 공식 캘린더의 칸을 비우더라도 뉴욕을 선택하는 순간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실험과 태도가 힘을 얻는 마크 제이콥스의 흐름과 헤리티지가 판타지로 치솟는 랄프 로렌의 흐름이 같은 타이밍에 교차하며, 이번 시즌 뉴욕이 결코 단조로운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점을 또렷하게 각인했습니다.

새로운 수장이 쏘아 올린 변화의 신호탄

공식 쇼 일정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건 새로운 수장의 출발을 알린 패션 하우스들의 첫 쇼였습니다. 프로엔자 스쿨러(Proenza Schouler)는 디오티마(Diotima)로 감각을 증명해 온 레이첼 스콧(Rachel Scott)의 첫 풀 컬렉션을 공개하며 변화를 선언했습니다. 스콧은 매끄러운 미니멀리즘 대신 구김이 살아있는 텍스처와 비틀린 테일러링을 앞세우고, 크로셰와 니트 디테일을 더해 뉴욕 커리어 우먼의 분주한 생활 리듬을 현실적인 룩으로 옮겼습니다. 쇼 말미를 장식한 오키드 프린트는 사진 위에 페인팅을 얹은 뒤 디지털로 가공해, 자연스러운 흔들림까지 디자인 언어로 끌어올렸습니다.

한편, 세븐 포 올 맨카인드(7 for all Mankind)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니콜라 브로냐노(Nicola Brognano)의 첫 런웨이로 처음 뉴욕 패션 위크를 찾아 존재감을 키웠습니다. 브로냐노는 스키니 진과 베이비돌 실루엣, 오버사이즈 백, 플랫폼 슈즈로 2000년대 초반의 에너지를 직관적으로 호출했고, 과감한 워킹이 담긴 클립이 빠르게 확산하며 쇼의 화제성을 끌어올렸습니다.

캐롤린 베셋 케네디의 잔상

시대를 돌고 도는 패션의 법칙은 이번에도 유효했습니다. 다만 이번 뉴욕 패션 위크가 선택한 좌표는 화려한 Y2K가 아닌, 절제의 미학이 정점에 달했던 90년대 후반입니다. 도시의 공기를 다시 장악한 것은 파워풀한 코트와 매끈한 실루엣, 그리고 과장보다는 정교하게 계산된 비율이었습니다. 불필요한 장식은 덜어내고 소재의 결, 어깨와 허리선의 위치, 완벽한 길이감만으로 분위기를 완성하는 방식이 이번 시즌의 핵심 축을 이뤘습니다. 이는 영원한 패션 아이콘, 캐롤린 베셋 케네디의 우아한 그림자가 런웨이 곳곳에 짙게 드리웠음을 보여줍니다. 뉴욕 미니멀리즘의 스펙트럼은 세 브랜드의 서로 다른 해석을 통해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케이트(Khaite)가 단단한 라인과 구조적인 형태감으로 현대적인 강인함을 드러냈다면,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은 군더더기 없는 정공법으로 미니멀의 정수를 뽑아냈습니다. 여기에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는 독특한 비율과 태도를 가미해 클래식한 코드를 비틀며, 뉴욕 특유의 폭넓은 스타일 범위를 증명해 보였습니다.

룩의 마침표를 찍는 강렬한 레드 액센트

레드는 단순한 포인트를 넘어 룩의 전체 인상을 결정짓는 씬스틸러 역할을 맡았습니다. 런웨이 곳곳에서 올 레드 룩이 등장해 시선을 단번에 고정했고, 코트의 안감이나 칼라, 니트의 한 줄, 허리를 가르는 벨트처럼 레드 액센트가 반복적으로 리듬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블랙, 네이비, 그레이처럼 뉴욕의 기본 팔레트 위에 레드를 얹는 순간, 익숙한 실루엣도 즉시 새로워 보였습니다. 이런 흐름은 캐롤리나 헤레나(Carolina Herrera), 캘빈 클라인,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 퍼블릭 스쿨(Public School) 컬렉션을 함께 놓고 보면 더 또렷해집니다. 세 브랜드는 미국식 실용주의 룩이라는 견고한 뼈대에 레드를 영리하게 끼워 넣어, 현실적인 옷장의 분위기를 빠르게 반전시키는 전략을 공유했습니다.

패션쇼의 리얼리티와 판타지

실용주의가 시즌의 밑바탕을 단단히 잡았지만, 대중의 기억을 강렬하게 점유한 장면은 결국 런웨이 위 연출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이번 시즌 모델들은 커피 컵과 음료, 책, 꽃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오브제를 손에 쥔 채 도시의 리얼리티를 런웨이로 옮겼습니다. 콜리나 스트라다(Collina Strada)와 제인 웨이드(Jane Wade), 디오티마(Diotima), 코치(Coach)는 이 소품을 장식으로 소비하지 않고 서사 장치로 밀어 올렸고, 옷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브랜드의 세계관을 한 컷의 프레임 안에 압축했습니다. 이렇게 소품이 늘어난 데는 짧은 영상에서 룩의 상황을 즉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동시에 여러 쇼는 물결처럼 일렁이는 리퀴드 오간자로 화면을 장악했습니다. 파멜라 롤랜드(Diotima)와 크리스찬 시리아노(Christian Siriano), 엘레나 벨레즈(Elena Velez)가 선보인 매끄러운 광택과 반사는 조명 아래에서 움직임을 더 극적으로 강조했고, 디지털 화면에서 특히 강한 존재감을 남겼습니다. 여기에 김 쉬는 보트 쇼처럼 장소 자체가 장면을 만드는 연출로 확산력을 더했습니다.

뉴욕 패션 위크가 남긴 이번 시즌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강력한 판타지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절제된 미학 속에서도 레드의 강렬함이나 소재의 반짝임 같은 ‘확실한 한 방’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뉴욕에서 시작한 실용적이면서도 우아한 리얼리즘의 물결이 이어지는 패션 위크에서 또 어떤 변주를 거쳐 완성될까요? 이제 시선은 밀라노와 파리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