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한 창작자의 헤리티지라 부를 수 있을까.
어떤 기준이나 기대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가장 뜨거운 마음으로 완성한 첫 작품,
그 안에는 여전히 확장을 거듭하는 세계의 단단한 기반을 비추는 단서가 남아 있다.
영화, 음악, 문학의 영역에서 각자의 언어로 시대를 통과해온 창작자 21인이 자신의 처음과 연결된 물건과 기억을 건넸다.
한 시절을 온전히 바친 기록, 처음이기에 가능했던 선택이 그 안에 담겼다.
세상에 건넨 첫 선언, 그 선언과 함께 하나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하던 순간.
뮤지션
김사월
정규 앨범 <수잔>

<수잔> 한때 내가 알던 여자 ‘수잔’에 대한 이야기다. 언젠가는 스스로를 수잔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어떤 때는 나와 수잔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제 와서는 그에 대해 어떤 표현을 하기가 조심스럽다. 수잔은 내가 만든 가상의 인물이지만, 결과물이나 소유물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더 귀중하게 대하고 싶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그때 수잔이 내게 조금은 열어주었던 세계가 고맙고,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
처음의 장면 <수잔>이 음원 사이트에 공개되던 날, 나는 택시 뒷좌석에 앉아 여의도를 지나며 황금빛으로 물든 은행나무 이파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오가 되자 이어폰을 꽂고 나의 첫 앨범을 새삼스럽게 다시 들어보았다. ‘아, 문제 없이 잘 나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걸 듣는 동안에도 창밖의 세상은 평소와 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앨범 한 장 발표한다고 대단히 바뀌는 건 없겠지만, 그래도 해야 할 것을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감상이지만, <수잔>으로 인해 나의 세상은 약간 바뀐 것 같다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은 것 꺼내기에 민망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란 건 뒤집어 말하면 ‘그것’까지 보여주었다는 것 아닐까. 그 용기가 멋있어질 수 있도록, <수잔>을 만들며 시선을 옮기는 방식을 배운 것 같다. 지금까지도 음악을 통해 내 이야기를 내보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