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회 칸 영화제를 이끄는 ‘칸느 박’ 박찬욱 감독.

박찬욱 감독이 오는 5월 열리는 칸 영화제(Cannes Film Festival)에서 장편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습니다. 한국인이 심사위원장을 맡는 건 영화제 역사상 처음인데요. 아시아인으로서도 중국 출신의 왕가위 감독 이후 20년 만입니다.
칸 영화제는 지난 26일 공식 발표를 통해 박 감독의 위촉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로써 박 감독은 경쟁 부문 심사위원단을 이끄는 의장으로서 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포함한 주요 수상작 선정 과정의 최종 의사결정을 이끄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데요. 심사위원장은 단순한 대표 직함을 넘어 공식 경쟁 부문의 심사 방향과 논의를 이끌고 그해 영화제가 어떤 얼굴과 메시지를 남길지를 결정하는 상징적인 자리죠.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Thierry Fremaux)는 박 감독을 두고 “독창성, 시각적 장악력, 그리고 기묘한 운명을 가진 남녀의 다층적인 충동을 포착해내는 탁월한 감각은 현대 영화사에 기억될 만한 순간을 진정으로 선사해왔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한국은 매년 보석 같은 작품을 복원해내고 있는 위대한 영화 강국이며, 영화인을 예우하는 공간에서 관객 수백만 명을 매료하는 주요 현대 걸작을 생산해왔다”며 한국 영화 전반에 대한 경의도 덧붙였죠.
이에 박 감독은 “극장이 어두운 것은 우리가 영화의 빛을 보기 위함이다. 우리가 극장 안에 자신을 가두는 것은 영화라는 창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해방되기 위함이다.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갇히고, 심사위원들과 토론하기 위해 다시 한번 갇히는 이 자발적인 이중의 구속은 제가 큰 기대를 가지고 기다려온 일”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증오와 분열의 시대에, 하나의 영화를 함께 보기 위해 극장에 모여 숨결과 심장 박동을 맞추는 단순한 행위 자체가 그 자체로 감동적이며 보편적인 연대의 표현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습니다. 심사위원장 자리를 수락하며 영화라는 공동의 체험에 대한 신뢰를 다시 한번 강조한 셈이죠.

박 감독과 칸의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첫 경쟁 진출작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며 글로벌 영화계에 단번에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이후 2009년 <박쥐>로 심사위원상, 2022년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며 칸과의 관계를 꾸준히 이어왔죠. 그래서 붙은 별명이 ‘칸느 박’. 2017년에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또 다른 방식으로 칸의 한가운데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한국 영화계 인사들이 칸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사례는 적지 않았죠. 1994년 신상옥 감독을 시작으로 이창동 감독, 배우 전도연·송강호, 홍상수 감독 등이 그 자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심사위원장에 오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인데요. 한국 영화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진 순간이죠.

한편 최근 박 감독은 신작 <어쩔수가없다>를 통해 다시 한번 날 선 연출을 선보였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선택이 빚어내는 아이러니를 집요하게 파고든 이 작품은 특유의 블랙 유머와 차가운 시선으로 동시대 현실을 비틀었는데요. 흥행 면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며 존재감을 입증했습니다. 거장의 이름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를 계속 갱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죠.
제79회 칸 영화제는 5월 12일 개막해 23일까지 프랑스 남부 칸에서 열립니다. 지난해 심사위원장이었던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che)의 뒤를 이어 올해 칸의 중심에 설 박찬욱 감독. 전 세계 영화계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황금종려상을 결정할 마지막 한 표는 이제 그의 손에 달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