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성들은 한 시대를 지나며 자신의 삶으로 하나의 좌표를 남깁니다.
<마리끌레르>는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 어른‘들을 만났습니다.
오랜 시간 자신을 단련하며 결국 하나의 세계가 된 여성들.

배우 박정자

배우에게는 그런 게 있어요. 이건 내가 꼭 해야 한다는 마음.
근데 그건 망상이지. 나 아니면 못 해? 천만의 말씀이에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은 있어요.
그 방식만큼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누구도 못 해.

사진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배우 박정자는 무대에 올라 의자에 앉았다. 촬영 소품으로 준비된 연극 <19 그리고 80>의 대본을 몇 장 넘기다 불현듯 대사를 읊기 시작한다. 크게 소리를 뱉지 않음에도 특유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관객석으로 뻗어나간다. 조명을 세팅하느라 소란하던 현장에도 순식간에 정적이 내려앉는다.

“이해해. 세상엔 죽는 걸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그렇지만 실제로 죽는 건 아니야. 다만 사는 동안 마음의 문을 닫는거지. 자! 손을 뻗어. 나에게 생을, 나에게 명을, 나에게 L.I.F.E! 나에게 생명을 달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의 종착역에서 아무런 할 말도 없는 거지.”

연극 <19 그리고 80>은 가족과 학교에서 소외돼 비뚤어진 열아홉 살 소년 ‘해롤드’가 세속의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여든 살의 할머니 ‘모드’를 만나 사랑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1987년 초연 이후 2003년부터 박정자 배우가 기획에 나서 공연을 올렸고, 극 중 모드의 나이와 같은 여든이 되던 2021년에 <19 그리고 80>의 마지막 공연을 연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 대사는 열여덟의 해롤드에게 여든의 모드가 하는 말이에요. 모드의 지혜가 부러운 거야. 그리고 그 사랑이 부러워. 왜 나한테는 그 지혜가 없을까? 왜 사랑이 모자랄까? 나를 자꾸 돌아보게 해요. 그래서 나의 멘토예요.” 방금 전 단 서너 문장의 대사만으로 무대의 주인이 돼 공기를 바꿨던 그가 해사하게 웃는다. 한국 현대 연극사의 주요 장면마다 자신의 이름을 새긴, 한국 연극계의 거목 박정자. 1962년 <페드라>로 데뷔한 이후 <대머리 여가수> <신의 아그네스> <19 그리고 80> <에쿠우스> 등 1백6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고, 1986년 <위기의 여자>로 동아연극상, 백상예술대상, 서울극평가그룹상을 수상한 그다.

무대는 기록으로 남지 않고, 매 순간 사라진다. 매번 새로 시작하고 동시에 소멸하는 연극의 찰나 안에서 그는 지난 60여 년간 수없이 소멸하고, 또 되살아났다. 1962년 데뷔 이후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무대에 올랐던 그의 성실과 집요함을 가늠해본다. 홀로 버터야 하는 시간에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두려운 순간에도 발을 딛어 무대에 올랐을 그 바위 같은 마음을. 무대 위에서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익숙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타성에 머무는 것을 끝내 거부해온 시간들을.

오는 4월 12일부터 시작되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준비 중이시지요. 이번이 세 번째 공연입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마음가짐이 조금씩 달라짐을 느끼시나요?

조금 더 즐기고 싶은데… 늘 즐기고 싶다면서도 매번 긴장하니까. 즐기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이번엔 조금 더 즐겨볼까 생각은 하는데 마음대로 될진 모르겠어요. 이 나이에도 그만큼 긴장한다는 게.(웃음)

이토록 오랫동안 무대에 오르셨어도 여전히 긴장되고, 떨리고, 걱정된다는 말씀이시죠?

아마 죽을 때까지 긴장할 거예요. 어쩌면 갈수록 더 긴장할지도 모르죠. 그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아요. 결국 긴장한다는 건 내려놓지 못한다는 뜻이겠지요. 아쉬움이나 미련 같은 것들을.

아쉬움이나 미련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일 텐데요. 배우님 기준에서 더 잘됐다거나 이번 무대가 더 좋았다는 의미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지나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런 순간은 존재하죠. 찰나일 뿐이지. 무대는 매번 라이브잖아요. 영화를 찍어 필름으로 남는 것도 아니고, 그림처럼 작품으로 남는 것도 아니에요. 매번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거예요. 매 순간 산화되는 거야. 그런데 그 순간이 우리에게는 절정이거든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다만 그때 과연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느냐? 그건 또 다른 문제죠. 가끔은 무대 위에서 저 자신을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볼 때가 있어요. 마치 삼차원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나를 바라보는 거예요. 어떤 날은 스스로에게 말하죠. ‘박정자, 너 이거밖에 못하니?’ 하며 실망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박정자, 너 참 잘한다. 이건 너 아니면 아무도 못 해’ 하며 요샛말로 자뻑할 때도 있죠. 하지만 그것도 결국 순간이에요. 찰나예요. 그건 누구도 몰라요.

예고 없이, 벼락같이 오는 찰나에 사로잡히는 것이지요.

그럼요. 그런 순간이 있죠. 2023년에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럭키’ 역할을 맡았어요. <고도를 기다리며>는 내게 특별한 작품이에요. 1969년 초연 때부터 처음 임영웅 선생님이 연출하시고, 김성옥, 함현진 선생님 같은 배우들이 출연하셨죠. 지금 세대는 그 배우들이 누군지도 모를 거예요. 아마 다 어머니 뱃속에 있었겠지요?(웃음) 이후로도 배우들이 바뀌며 이어져왔지만, 그 작품은 늘 명품 공연 중의 명품이었어요. 나는 오래전부터 그 작품을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작품에 신구 선생님과 이순재 선생님이 출연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그분들 사이에서 남자 역할인 럭키를 하겠다고 자원했어요. 패기가 있었지. 무모했어.(웃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했어요. 럭키는 원래 대사가 한 마디도 없는 짐꾼이거든. 그러다 갑자기 8~9분 동안 쉬지 않고 대사를 쏟아내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그 대사가 무슨 말인지, 맥락이 닿는 건 하나도 없어요. 관객도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듣기 어려워요. 그 말을 뱉어내는 나조차도 몰라. 아마 이 대사를 쓴 (사뮈엘) 베케트 자신도 무슨 말인지 모를 거야.(웃음) 어느 순간 말문이 터지듯, 혼자 8~9분 동안 말을 쏟아내는 거예요. 대화가 아니에요. 숨도 거의 못 쉬어요. 그런데 그런 장면은 나 혼자만의 의지로 연기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무대 위에서는 일종의 엑스터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그걸 느끼지 못하면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신들린 상태여야 가능한 거지 맨 정신으로는 못 해요. 그렇게 그 장면을 끝내고 나니 극장 안이 고요해졌어요. 깊은 적막이었죠. 아마 2층쯤이었던 것 같아요. 먼 객석의 중년 남자 목소리였어요.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는 그 순간, 그가 혼잣말로 아주 작게 “브라보” 하고 내뱉은 한 마디. 그 말이 무대 위에 있는 나에게 정확히 꽂혔어요. (잠시 정적) 그걸로 끝이었어요. ‘맞아. 이거야. 나는 이것 때문에 연극을 하는 거야.’ 이런 관객이 배우를 살리는 거예요.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해요. 지금이라도 그 관객을 찾고 싶어요.

무대 위의 희열도 매 순간 깊이 몰입하는 데서 오는 것일텐데요. 몰입으로 이끄는 힘은 무얼까요?

그건 내가 좀 무지해서 그래요. 공연도 어떤 작품은 8개월씩 이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매일 같은 걸 반복해야 해요. 그런데 그게 더 힘들어요. 왜냐하면 내가 거기에 익숙해질까 봐, 타성에 젖을까봐. 어제 한 것을 오늘 또 그대로 되풀이하게 될까 봐요. 그래서 늘 나 자신을 끄집어내야 해요. 매번 새롭게 꺼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요즘 캐스팅은 더블, 트리플, 심지어 쿼드러플 캐스팅까지 있잖아요. 끔찍해요. 예전에는 <신의 아그네스>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같은 공연을 1년 8개월씩 쉬지 않고 했어요. 월요일 쉬는 날도 없었어요. 그렇게 무식하게 했죠. 무식해서 용감한 거예요.

하지만 한 작품으로 1년 8개월씩 무대에 오르다 보면 관성에 젖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원치 않아도 자연스레 그렇게 될 것 같고요. 그건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일이에요.

배우가 한 역할에 관성에 젖는 것과 성숙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다름이 있다고 보세요?

배우는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만나며 굉장히 많은 것을 얻어요. 리허설 때와는 완전히 달라요. 배우로서도 상상하지 못하던 것들을 관객을 통해 발견하기도 하죠. 그러면서 그 배역으로서 점점 성숙하는 거예요. 미술이나 드라마, 영화는 일단 완성하면 거기서 멈추잖아요. 이후에 업그레이드할 수 없어요. 하지만 연극은 달라요. 매번 공연하니까 깨달음이 와요. ‘아, 이거였구나. 연습할 때는 몰랐는데’ 하고. 관객이 무엇에 반응하는지도 알게 되고요. 그렇다고 관객과 야합하려고 하면 안 돼요. 그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들을 만나며 내가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기쁨이 있어요. 그 과정이 중요한 거죠. 이 작품으로 끝, 이걸로 완성, 이런 식이라면 나는 그건 좀 불행하다고 생각해. 더블 캐스팅까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최근처럼 쿼드러플까지 가는 작품은 나는 하지 않아요. 나는 연극을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건 마치 콘서트에 게스트로 와서 노래 한 곡 부르고 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진정성이 흐려져요. 배우가 기능인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배우는 그래선 안 돼요.

연극 <굿나잇, 마더> 당시 어머니 역의 감정이 깊이 스며들어 실제 일상에서도 힘든 시 간을 보내셨다고 회고하셨지요. 역할을 만나는 것은 어떤가요. 인물을 만나는 것 역시 매번 어려우신가요?

<굿나잇, 마더>는 내가 출연한 작품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만큼 특별한 작품이에요. 당시 나도 쉰 살이었고, 아이들도 다 키운 뒤였죠. 그런데 연습하는 내내 내가 그 어머니가 되어 있었어요. 이 작품은 딸과 단둘이 하는 연극인데, 엄마에게 딸이 ‘오늘 자살하겠다’고 선언하며 극이 시작돼요. 연습하는 동안에도 무척 힘들었어요. 얼굴에 늘 수심이 가득했죠. 어딜 가도 반듯하게 걸을 수가 없어. 세상을 곧게 바라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고 다녔어요. 사람들이 어디 아프냐고 물을 정도였어요. 표정이 늘 어두웠으니까. 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작품을 연습하고 무대에 올리는 동안에는 맡은 인물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아마 많은 배우가 공감할 거예요.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그 감정이 일상까지 스며드는 경험을 요. 물론 그 안에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고, 어두움도 있고, 또 그 반대도 있어요. 배우에게는 그런 온도 차이가 필요해요. 냉탕과 온탕, 지옥과 천국, 빛과 그림자가.

한 인물을 이해해가는 시간은 배우님께 어떤 과정과 의미인가요?

나는 이지적인 인간이 아니에요. 이성적으로 계산해 접근하지 않아요. 작품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연구하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드라마투르기 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들은 아는 게 너무 많고, 그걸 설명하고 덧붙이려고 해요. 나는 그렇게 못 해요. 그저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해요. 내 혈액형, 내 세포, 내 머리카락, 내 주름 같은 것들로. 그걸 굳이 어디에 맞춰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나는 내 몸으로, 내 감각으로 반응할 뿐이에요. 굉장히 동물적으로 접근해요. 먼저 반응하는 쪽인데 그게 내 식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을 연구하고 캐릭터를 분석해서 표현한다기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저 상상해요. 어떤 헤어스타일을 해야 할지,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할지 그런 것부터 생각해요. 그 후에 연습 과정에서 상대 배우를 만나고, 연출자를 만나고, 함께 작업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게 있어요. 동물적으로 반응하는 게 내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나는 이런 내 단점도 좋아요.

무대가 지겹거나 무대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으셨어요?

무대 위에서 실수했을 때 도망가고 싶죠. 그때는 도망가고 싶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어. 모래처럼 흩어지거나 연기처럼 사라져서 육신조차 남기고 싶지 않을 만큼 창피하고 부끄럽고 속상해요. 내가 실수를 많이 해요. 그럴 때 스스로에게 말해요. ‘나는 로봇이 아니야. 나는 인간이야. 실수할 권리가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의 실수는 치명적이에요. 내가 나 자신을 용서를 못 하니까 속상한 마음이 오래가요. 내가 두 발로 무대 위에 설 수 있을 때까지는 무대에 계속 서고 싶으니까 그런 거겠죠. 그게 내가 숨 쉬는 이유고, 존재의 근거니까요. 그래서 나는 어떤 역할이든, 나를 필요로 한다면 마다하지 않아요. 대사가 많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다못해 무대 한쪽에서 등을 객석에 대고 조용히 앉아 있는 역할이라도 그 순간, 그 존재 자체가 관객에게 전해진다면 그게 중요하지 않을까. 뭐, 또 중요하지 않으면 어때.

연극은 매 순간 단 한 번이라는, 인생의 기본값에 충실한 예술이기도 합니다. NG를 낼 수가 없다는 무대 연기의 특수성이 배우님에게 기쁨과 좌절을 동시에 안길 것 같습니다.

2년 전에 무척 힘든 때가 있어요. 연극 <햄릿>과 뮤지컬 <영웅>을 동시에 할 때였는데, <영웅>에서 안중근 열사의 어머니를 맡았어요. 그 역할은 연극에서도 이전에 두 번 맡은 적이 있어요. 배우에게는 그런 게 있어요. 이건 내가 꼭 해야 한다는 마음. 근데 그건 망상이지. 나 아니면 못 해? 천만의 말씀이에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은 있어요. 그 방식만큼은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누구도 못 해.
아주 잠깐 등장하는 역할이에요. 노래 딱 한 곡 부르는 건데, 대단히 중요한 노래에요. 안중근 열사의 어머니 조마리아가 옥중의 아들에게 말하죠.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야, 이제 갈 때가 되었다. 네가 나보다 앞서 가지만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가라.” 그 노래를 할 때 죽을 만큼 힘들었어요. 무대 위의 긴장은 내가 열 번쯤 죽어도 모자랄 만큼 커요. 세종문화회관 무대가 얼마나 커요. 형장으로 가기 직전 어머니가 지어 보낸 두루마기를 입는 장면이에요. 세트가 조금 열리면 어머니가 앞으로 서너 발자국 나와 노래를 해요. 그 순간은 자지러질 듯 힘들어. 입안이 바짝 마르고, 기침이 나려 하는데 그 모든 걸 참아야 해요. 모든 걸. 무대 위에서는 누구도 나를 대신하고 도와줄 수 없잖아요. 무대에서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이야. 무대 위에서는 온전히 혼자니까요. 이 이야기를 저는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한 적이 없어요. 배우라는 존재는··· 우리가 한자로 ‘배우(俳優)’라고 쓰잖아요. 사람 같지만, 또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극도의 긴장을 감내하며 쉬지 않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1962년 데뷔 이후 단 한 해도 연극 무대에 오르지 않은 해가 없으시죠?

그럴 수 있었던 건 내가 내 역할을 기다리지만은 않았기 때문이에요. PD나 연출자가 먼저 제안한 게 아니라 “이건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나서서 맡은 역할이 몇몇 있었죠. 지금도 나는 가끔 내 배역을 나 스스로 찾아 나설 때가 있어요. 돌이켜보면 그런 선택들이 나를 꽤 능동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맡겨진 대로 서 있기보다 스스로 선택하며 움직였으니까요. “이건 내가 할게”라고 말하던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임권택 감독님과 영화 <만다라>를 찍을 때는 감독님이 나를 다른 배역으로 캐스팅했는데, “저는 다른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 역할 저 주세요” 하고 먼저 제안했어요. 감히. 연극 <위기의 여자> 때도 마찬가지예요. 임영웅 선생님이 처음에 나를 염두에 두지 않고, 다른 배우들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때 선생님은 “박정자 씨는 위기가 느껴지지 않아서 안 돼요. 어떤 위기도 금방 돌파해버릴 것 같아” 하셨죠. 내 이미지가 위기라는 상황과 거리가 멀다는 거예요. 그런데 캐스팅이 계속 어그러지면서 결국 제가 선생님께 물었어요. “선생님, 박정자는 위기의 여자가 될 수 없나요?” 그렇게 해서 얻은 역할이었어요. 그리고 그 작품으로 동아연극상, 백상예술대상, 서울극평가그룹상을 받았어요. 그게 아마 박정자일 거예요. 그래서 나는 고정관념이 싫어요. 그건 참 위험한 거야. 연출자도, 제작자도, 관객도 다 고정관념이 있어요. 그걸 깨야 해요. 나는 스스로 그 고정관념을 많이 깨왔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부수고, 때로는 밀어내면서. 그게 배우로서 내가 지켜온 태도인지도 모르겠어요.

왜 흔히 한 가지 업을 오래 해오신 분들이 “나는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고도 말씀하시잖아요. 그 말 속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는 걸까요?

그건 괜히 꾸며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정말 진심이에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 거예요. 글쎄. 나는 그 안에 욕심이 있었겠지. 어쩌면 나는 타인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어요. 다른 엄마들에 비해서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맛있는 요리를 해서 가족을 행복하게 해준 적도 없어요. 가족에게는 늘 미안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내 인생을 그들이 대신 살아주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해요. 그러려면 1년을 쉰다? 2년을 쉰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배우는 운동선수와 똑같아요. 운동선수처럼 계속 훈련해야 해요. 몸의 감각과 긴장을 유지해야 하니까요. 몇 년 쉬고 소풍 가듯 “연극이나 한번 해볼까” 하고 무대에 오르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걸 용납하지 못해요. 용서도 안 돼요. 그건 제 방식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가 나를 불러주기만을 기다리지 않았어요. 때로는 내가 직접 작품을 만들기도 해요. 몸을 계속 움직이려고요. 나를 나태하게 두면 안 돼요. 게으름뱅이로 놔두면 안 돼.

최근에는 영화 촬영을 마치셨죠. 자전적 내용이 담겨 있다고 들었습니다.

작년에 영화를 하나 찍었어요. 이 이야기는 꼭 해야겠네요. 사실 이전까지 유준상 배우를 잘 몰랐어요. 근데 어느 날 그가 작업하고 싶다고 내게 전화를 했어요. 시나리오도 본인이 쓰고, 제작도 직접 한다는 거예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요. 연극배우인 저를 떠올렸다고 하더군요. 오케이. 난 연극을 중심으로 작업했지만, 영화도 좋아해요. 김기영 감독에게 처음 픽업된 배우이기도 하고요. 그 자부심은 있어요. 준상 감독과 처음 통화 하면서 거의 두 시간 반을 이야기했어요. 귀가 아플 정도였죠. 이제 그만 끊자고 했더니, “선생님, 제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아세요?” 하더군요. 통화 내용을 계속 메모하고 있었대요. 시나리오에 담으려고. 그렇게 준상 감독의 시나리오를 함께 만든 거예요. 김기영 감독과 작업한 이야기, 김지미 씨와 <육체의 약속>을 찍은 이야기, 연극을 하며 겪은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죠. 이 영화에 연극배우로 살아온 나의 시간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를 곧이 곧대로 보여주는 건 의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사바나 베이>를 읽어보라고 준상 감독한테 권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공연되지 않은 작품이에요. 작품에 두 여자가 나와요. 한 여자는 주인공인데, 나이도 저만큼 되었어요. 기억이 오락가락하죠. 다른 한 여자는 젊은데, 정체가 분명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두 사람은 계속 대화를 이어가요. 굉장히 미스터리한 작품이에요. 그 번역본을 번역한 친구에게 받아서 감독에게 줬어요. “이 작품을 영화 안에 잘 녹여봐요” 했더니 몇 장 면을 골라서 영화에 담았어요. 근데 그게 정말 탁월했어요. 내가 원래 칭찬에 좀 인색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내가 준상 감독에게 그랬어요. “당신 천재 아니야?”(웃음)

오래간만의 영화 촬영이 낯설지는 않으셨나요?

제작비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적었어요. 메이크업 담당도 없고, 조명 기사도 없고, 의상 담당도 따로 없고, 스태프가 다 합해도 10명 남짓이었어요. 등장인물은 그냥 내 지인들이 오가며 맡았고요. 햇빛이 나오면 그냥 그 빛으로 찍는 거예요. “선생님 옷 입으세요” 하면 “오케이, 알았어. 입을게” 하며 찍은 영화예요. 나는 현장에서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그건 난 모르겠어. 카메라 앞에서 그건 난 몰라요. 그러나 배우로서 감독이 원하는 지점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은 해야지. 강릉 바닷가에서 촬영할 때는 봄이었지만, 어마어마하게 추웠어요. 바람이 너무 차서 손가락에 동상이 걸릴 것 같았어요. 그런데도 “추워서 못 하겠다”, “잠시 쉬고 싶다” 같은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내가 어리광을 부린다고 누가 그걸 받아주겠어, 없어. 그러면 난 해야지. 그런 현장이었어요. 촬영이 끝나면 내가 스태프들에게 밥을 사줬어요. 얼마나 고맙고 귀해요. 얼마나 수고해.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 나눈 이야기 중 “무대에서 나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대답을 오래 곱씹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있어요. 나는 스스로를 엉터리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해요. 종교에 깊이 매진하거나 몰입하지 못해요. 그래도 가끔 무대 위에서 기도해요. 높은 천장, 조명을 올려다보며 “하느님, 더 욕심부리지 않겠습니다. 내가 연습한 만큼, 그 감동을 관객에게 온전히 전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뿐이에요. “잘하게 해주세요”, “성공하게 해주세요”가 아니에요. 오랜 시간 함께 연습한 배우들과, 멀든 가깝든 입장료를 내고 와준 관객들과 이 순간을 나눌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예요. 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이는 게 신기해요. 고맙고요. 그래서 내 생애의 1순위는 관객이에요. 관객이 없으면 나는 존재할 이유가 없지. 존재 가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