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이렇게나 설레고, 고통스러운지 몰랐을 겁니다. 그 시작점에서는요. 자신을 투영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파리를 비롯한 유럽에서 자신의 이름과 브랜드를 알리기 시작한 패션 브랜드 ‘희수박’의 박희수 디자이너입니다.

아직 국내에는 ‘희수 박’이란 브랜드가 낯설 것 같아요. ‘희수 박’은 어떤 브랜드에요?
희수 박은 저만의 세계예요. 저는 직접 느낀 감정이나 경험을 통해 컬렉션을 만드는 편인데요. 제 옷을 입는 분들에게 이 감정이 전해지면 좋겠어요.. 좀 여운을 남기기를 바란다고 해야 하나? 각자 ‘희수 박’을 다르게 느낄 수 있게 여지를 남기고 싶어요.

디자인을 통해 전해지는 감정을 각자 다르게 해석하길 바라는 거죠?
네, 그게 목표예요.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실존하지 않고, 결코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직접 만질 수 있기를 바라는 일인 것 같아요. 처음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어요?
어머니가 피아노를 전공해서 어렸을 때 오스트리아 빈으로 오게 되었어요. 감정을 손으로 표현하는 게 익숙했죠. 저에게는 그 매개체가 그림이었어요. 사춘기 때부터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거든요. 감정은 실제로 보이지 않잖아요. 들리지도 않고, 냄새도 안 나고. 그래서 더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포트폴리오 만들 때도 어떤 정확한 디자인을 낸다기보다는 천을 이용해서 소음 같은 무정형의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죠.

학교생활은 어땠어요?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에 진학해서 패션을 직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요.
그 자체가 즐겁지는 않았어요. 교수님들이 친절한 스타일이 아니라서.(웃음)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함께한 친구들 덕분이었어요. 보통 패션 스쿨이라고 하면 경쟁하는 분위기라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런 게 하나도 없었어요. 성향이 모두 달라서, 오히려 서로 도와가며 공부했어요. 지금도 그 친구들과 좋은 사이로 지내요.

학교 졸업 후, 브랜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졸업을 했지만, 제 정체성을 여전히 모르겠더라고요. 지금도 컬렉션을 만들면서 스스로 무얼 원하는지 조금씩 찾아가고 있어요. 완전히 ‘이건 나야!’ 혹은 ‘내가 하는 거 너무 좋다!’라는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브랜드를 만든다기보다는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스스로 어디까지 나를 만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어요. 조금 힘들지만, 아직 젊으니까.

친구들과 작업하다가 홀로 하려니, 더 힘들 것 같아요. 외롭기도 하고요.
정말 외로워요. 지금 파리에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는데, 디자이너끼리의 경쟁이 치열해요. 보통 브랜드 론칭 후 자리 잡기까지 5년 정도 걸린다고 해요. 저는 이제 막 시작한 신인이라, 시즌을 계속 발표하면서 버티는 것이 참 어려워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유럽에서는 공장들이 밀집되어 있지 않다 보니, ‘희수 박’ 같은 경우 한 가지 아이템은 폴란드에서, 다른 아이템은 헝가리에서 제작하는 식으로 운영되어요. 생산 과정이 한국과 완전히 다르죠. 한국은 공장들이 모두 근방에 있다고 들었어요.

그 부분은 몰랐네요. 국경을 넘어 공장을 찾고, 생산해야 한다는 부분이요.
주로 제작하기가 복잡한 옷을 디자인하다 보니, 어려움이 더 큰 것 같아요. 공정이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이런 방식을 택하게 되었어요. 작업할 때는 보통 3주 정도 공장에서 먹고 자고 해요. 예측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작업자와 같이 해요.

그래서 더 멋진 룩을 완성하고요.(웃음) 스스로를 끝까지 밀어붙여 무언갈 발견하는 과정이 쉽진 않잖아요.
지금의 저는 잃을 게 없어요. 결혼한 것도 아니고, 애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며 “한 번 해보자!”라고 마음먹었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요.(웃음)

그런 다짐으로 완성한 룩들의 독특한 실루엣이 재미있어요.
제가 처음 유럽으로 온 것이 2001년도였어요. 당시에는 동양인이 정말 없었고, 다른 친구들에 비해 왜소했어요.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부러 남성복이나 실루엣이 큰 옷을 입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저와 같은 여성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옷으로 존재에 힘을 더하고 싶어요.

브랜드가 디자이너의 삶을 얼마나 투영하고 있는지 여실히 느껴져요. 저는 실루엣뿐 아니라, 이걸 완성하는 기법도 흥미로웠어요.
저에게 보이지 않는 어떤 틀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엄하신 편이라, ‘틀리면 안 된다’, ‘이건 잘 해내야 한다’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예전엔 그림도 아름답게 그리려고만 했지, 거칠게 표현하는 건 못했거든요. 3년 전에 처음 소재를 어떤 기법을 통해 수축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요. 이 기법을 시도할수록 재미있는 거예요. 수축이 소재나 재단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더라고요. 제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런데 이게 너무 좋은 거죠. 제가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맞닥뜨리는 것이. 지금은 이 기법에 빠져서 이번 2027 봄-여름 컬렉션을 제작하면서 원단 샘플만 50개 넘게 만들었어요.  

즐기며 하고 있다는 게 대화 속에서 느껴져요. 디자인을 할 때, 영감을 어디에서 찾는 편이에요?
어떤 트렌드를 따라가는 건 제 방식이 아니에요. 저의 뮤즈는 제 고양이 ‘노노’인 것 같아요. 매일 저에게 다른 영감을 줘요.

노노에게 영감을 받아 일을 하면서 재미있다거나 이 일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어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여러 기법을 통해 원단 샘플을 만들 때 약간 희열을 느껴요. 때론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완전히 다르게 나올 때도 있는데, 작업하면서 ‘나도 언젠가 멋진 컬렉션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너무 좋아요.

그런 순간이 자주 찾아오나요?
아니요. 자주는 아니에요. 그래도 ‘이거 하면 진짜 나다’ 싶은 순간이 있어요. ‘이렇게 가면 되게 좋은 방향으로 가겠다’ 싶은. 저는 남들이 뭐라고 하는 것보다 스스로 뿌듯했으면 좋겠어요.

생각해 둔 앞으로의 목표가 있어요?
인터뷰 준비하면서 이렇게 메모해 뒀어요. ‘세계관을 넓히고 싶다.’ 누가 봐도 ‘이 사람이 이 옷을 만들었구나’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저는 ‘티셔츠 하나를 만들어도 어떻게 하면 내가 투영될 수 있을까?’ 같은 걸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앞으로도 제가 이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아, 제가 진짜로 내향적인 성격이거든요. 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앞으로는 이 인터뷰처럼 세상에 제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 더 보여주고 싶어요. 저의 개성을 드러내서 비로소 옷이 나를 닮아가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