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C 시계는 여전히 어렵고 복잡한 분야로 여겨집니다. 누군가 시계를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이 요구되는 분위기가 이런 현상의 주요 원인일 테고요. 그런데 워치스 앤 원더스의 인상은 사뭇 다릅니다. 워치메이킹을 모두의 문화로 확장하려는 의도가 피부로 와닿거든요. CV 바로 그 점을 강조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물리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정은 지식을 쌓은 뒤에 생겨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하나의 프로그램에 여럿이 참여하고, 기쁨을 나누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를테면 저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처음 오페라를 관람하기 전까지는 오페라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한 번의 잊지 못할 순간이 저를 오페라의 여정으로 이끌었죠. 이처럼 문화적 각성을 돕는 것 또한 ‘워치스 앤 원더스 제네바(Watches and Wonders Geneva, 이하 WWG)’ 재단의 역할이라고 믿습니다. 워치메이킹의 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직접 만지고 착용하는 행위를 통해 결국 이 분야를 사랑하도록 만드는 일 말이죠.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시대에 WWG라는 물리적 행사의 규모를 점점 키워나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겠네요. 우리는 화면을 통해 세상의 다양성을 쉽게 접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현실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게 됐어요. 반면 오프라인 행사는 어떤 문화와 현상을 현실에 단단히 뿌리 내리도록 돕습니다. 특히 그것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며 의식처럼 자리 잡을 때 더욱 그렇죠. 그렇기에 세상에는 이런 의미 있는 이벤트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익숙한 것, 낯선 것을 포함해 여러 창작물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로서요. 스크롤은 잊히지만, 이벤트는 기억되거든요.

대중 친화적 분위기도 인상적입니다. 럭셔리는 궁극적으로 대중에게 닿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소유를 넘어 향유의 대상이 될 때 예술 작품으로서 생명력을 얻을 테니까요. 까르띠에 회장으로 재임할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하이 주얼리와 워치에 소비재 이상의 가치를 부여해오셨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진정한 럭셔리란 무엇인가요? 럭셔리는 ‘필요’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실용적인 유용성을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열망하는 무언가를 지녀야 한다는 뜻이죠. 내면 깊은 곳에서 모두가 갈망하는 건 소유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 자체이지 않을까요? 럭셔리를 소수만의 세계에 머물지 않게 하기 위해, 또 럭셔리 산업이 지닌 배타성과 개방성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미학에 감응하는 사람들이 시각적 충격과 열정, 그리고 장인정신(savoir-faire)의 세계를 체험하도록 이끄는 일일 테고요.
그렇다면 ‘시계’의 표상 뒤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회장님과 저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시계의 묘미 말이에요. 시계를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경우는 아마 드물 겁니다. 보통 충분한 탐색과 조사를 거치겠죠. 그래서 시계를 사는 일은 우리 삶의 특정한 순간에 벌어지는 결정적 만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손목에 찬 시계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드러내고, 부모로부터 자녀에게로 전승되며 상징성을 더하기도 하죠. 그렇게 물건의 속성을 넘어 시간과 공간, 세대를 잇는 연결 고리의 일부가 되는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시계는 시간을 새기고 기억하게 하는 표식처럼 기능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줄곧 진정성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 WWG 역시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는 것 같아요. 물리적 측면에서 진정성을 논하자면, 그건 우리가 믿는 모습과 실체를 실제로 지니고 있다는 뜻이 되겠죠. 반면 도덕적 측면에서 보면 무엇보다도 그 신념을 말하는 사람의 태도에 진심이 담겨 있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이 실제와 일치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은 진정성 있게 공유하는 믿음 위에 서만 발현됩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 사회를 평화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요?
시계를 다루다 보면 자연히 ‘시간’의 개념에 대해서도 깊이 사고하게 되기 마련이죠. 회장님에게 시간은 어떤 대상인가요? 시간의 의미는 여러 층위로 나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점은 시간이 결코 홀로 멈춰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시간은 공간과 움직임, 물질의 변화와 함께 흐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현재’라는 멈춰 있는 특정한 시각에 머무는 대신, 계속해서 무언가가 되어가는 (becoming) 과정에 놓여 있죠. 시간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의 일부로 살아간다는 감각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단 한 번 크라운을 감아 어떤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를 선택하시겠어요?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되돌리지 않을 것 같네요. 그 모든 상황과 시간 속에서 지금의 제가 되어가는 과정을 행복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수를 포함해서 모든 결과가 의미 있죠.
“시계를 사는 일은 우리 삶의 특정한 순간에 벌어지는 결정적 만남이라 할 수 있다”라고 표현하셨는데, 생애 첫 시계를 고민하는 20~30대 여성에게 알려줄 만한 좋은 시계의 기준이 있을까요? 첫 만남이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요. 지금 이 순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을 고르세요. 그 시계가 여러분 곁에 평생 남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끝내 남아 있지 않다고 해도, 미래의 자신이 지금은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성장했기 때문일 테니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거예요.

삶의 많은 선택 앞에서 이 말씀이 떠오를 것 같네요. 2년의 임기가 이제 마무리되고 있는데, 돌이켜보면 어떠세요? WWG가 2년간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해왔다는 걸 실감합니다. 돌아보니 강한 목표 의식 아래 여러 측면에서 진전을 이뤄왔네요. 만약 처음으로 돌아간다 해도 지금과 같은 일들을 했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큰 확신을 가지고요.
앞으로 WWG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매우 멋지게 발전해나갈 거예요. 지금보다 더 흥미로워질 거고요. 이 글을 보는 분들에게 한말씀드리고 싶네요. 이미 시계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계속 이어가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직 그렇지 않다면, 내년에 꼭 WWG를 찾아와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