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로봇이 옷을 입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병원과 공사 현장, 식당 등 일상에서 로봇을 만나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며 패션 업계도 새로운 고객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위한 의류라는, 아직 개척되지 않은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글로벌 패션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한데요. 패션의 다음 무대는 사람의 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로봇이 일상이 되는 순간

행주를 들고 테이블 위 얼룩을 닦는가 하면, 케이팝 안무를 추다가 넘어져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일어서는 휴머노이드(Humanoid). 인간의 신체 구조를 모방해 두 발로 걷고 두 팔을 자유자재로 쓰는 이 로봇이 SF 영화 속 상상을 벗어나 현실이 된 건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입니다. 엔비디아(Nvidia), 테슬라(Tesla), 피겨 AI(Figure AI)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앞다퉈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휴머노이드를 낙점하며, 수십 년 내 이 시장이 수천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데요. 일부 모델의 가격은 이미 2만 달러 수준까지 내려와, 가정마다 한두 대씩 보급되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교육과 돌봄부터 제조, 물류, 서비스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휴머노이드와 인간이 함께하는 로봇이 많아질수록 외관과 기능을 고려한 의류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금속 프레임이 그대로 노출된 로봇과 상황에 맞는 유니폼을 갖춰 입은 로봇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전혀 다른 존재로 다가오기 때문이죠. 배터리와 센서,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신뢰를 주는 외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면서, 패션 업계 역시 휴머노이드 의류라는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봇을 위한 옷, 한세실업의 청사진

그 블루오션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건 한세실업이었습니다. 나이키, 갭, 자라, H&M 등 유명 브랜드의 옷을 만들어 온 국내 의류 제작 업체죠. 지난 8일, 한세실업은 서울 강남구 섬유 센터에서 ‘웨어 더 퓨처(Wear the Future) 미디어데이’를 열고 미래 의류를 공개했습니다. 로봇을 위한 옷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선제적 행보로 업계의 이목이 쏠렸는데요. 무대에 오른 김익환 부회장의 말은 명쾌했습니다. “휴머노이드가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노인을 보살피는 시대가 온다면 그들 역시 업무에 맞는 의복이 필요합니다.” 한세실업은 3D 디자인, AI 도입에 이어 휴머노이드를 다음 단계로 정의하고, 이 시장을 가장 먼저 연구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공개된 의류는 휴머노이드가 맡게 될 역할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구성됐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돌봄 로봇의 옷은 친근함에 초점을 맞췄고, 열을 배출하는 것이 중요한 산업 현장용 모델은 소재와 기능성을 강조했죠. 휴머노이드는 사람보다 관절을 훨씬 넓게 움직이고, 충전이나 정비를 위해 몸체 일부가 드러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장시간 작동하며 발생하는 열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인데요. 한세실업은 이러한 조건을 고려해 냉감 소재와 내구성이 강한 원단 기술을 바탕으로 로봇의 몸에 맞게 설계했습니다. 사람의 몸을 기준으로 발전해 온 패션 산업이 이제는 로봇의 몸까지 영역을 넓힌 것입니다.

사람 냄새 나는 휴머노이드를 위한 여정

휴머노이드가 일상으로 들어올 미래를 준비하는 움직임은 해외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로봇을 더 이상 차갑고 낯선 기계가 아닌, 사람이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로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미국의 로봇 공학 스타트업 피겨 AI는 지난해 가정용 휴머노이드 ‘피겨 03’에 니트 소재의 부드러운 외피를 입혔습니다. 기계가 가진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를 지우고 거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죠. 1X테크놀로지스(1X Technologies) 역시 가정용 휴머노이드 ‘네오’에 몸에 밀착되는 베이지색 니트와 신발을 입혀 소음과 이질감을 함께 줄였습니다.

런웨이에서도 로봇은 옷을 입었는데요. 베이징의 노에틱스 로보틱스(Noetix Robotics)는 지난해 파리 유네스코 행사장에서 빈티지 조끼와 진주 목걸이를 걸친 휴머노이드 ‘N2’를 선보였습니다. 최근에는 중국 현지 휴머노이드 기업들이 섬유와 니트 분야의 인재를 영입하거나, 의류 기업과 손잡고 소프트 스킨 개발에 뛰어들고 있죠. 로봇의 성능뿐 아니라 사람이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까지 줄이려는 노력인데요. 휴머노이드가 우리 곁에 가까워질수록 로봇에게 무엇을 입힐 것인가는 더 이상 부수적인 질문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