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과학과 신앙의 경계를 끊임없이 흔들어온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한국 개인전이 누적 관람객 54만 명을 돌파하며 화려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데이미언 허스트의 개인전, 새롭게 쓴 96일의 기록
상어 한 마리가 미술관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가 지난 6월 28일 96일간의 여정을 마쳤습니다. 지난 3월 20일부터 이어진 이번 전시는 누적 관람객 54만 1,889명이라는 대기록을 써냈는데요. 이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최고 흥행작이었던 론 뮤익(Ron Mueck) 개인전의 53만 3,035명을 넘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인전 가운데 역대 최다 관람객 수로 새롭게 새겨졌습니다. 데이미언 허스트의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화려한 마무리였죠.





한국이 사랑하는 괴짜 예술가 데이미언 허스트
한국을 사로잡은 예술가, 데이미언 허스트는 영국의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며 어린 시절 접한 종교적 이미지에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영향이 처음으로 드러난 순간은 16세. 미생물학을 공부하던 친구를 따라 영안실에 몰래 들어가 시체를 찍은 사진 ‘죽은 자의 머리와 함께(1991)’를 1991년 첫 개인전에서 직접 공개했을 때였죠. 잘린 시체의 머리 옆에서 악동 같은 웃음을 짓고 있지만 속으로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는 그의 회고처럼, 죽음에 대한 집착과 공포는 이후 그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 놓인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은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잠긴 거대한 상어를 통해 바로 그 질문을 가장 직접적으로 던지는 작품입니다. 금방이라도 관객을 덮칠 듯 생생한 상어의 모습은 죽음의 공포를 직면하게 하는 동시에, 영원히 보존하려는 인간의 불멸에 대한 욕망을 보여주는데요. 소를 반으로 갈라 단면을 전시하거나 잘린 소머리와 파리 유충으로 생명의 순환을 시각화한 작업들도 모두 같은 질문 위에 서 있었습니다. 반면 같은 색을 반복하지 않는 엄격한 규칙으로 강박을 다룬 ‘스팟 페인팅’ 연작과, 회전하는 캔버스에 물감을 부어 멈추는 순간 우연히 고착되는 이미지를 만드는 ‘스핀 페인팅’ 연작은 질서와 우연, 그 양극단에서 삶과 죽음의 무작위성을 은유했죠.
생과 멸, 집착과 무상이라는 불교적 화두를 오랫동안 곁에 두고 살아온 나라, 한국이 그의 예술 세계에 유독 깊이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질문을 이토록 다채로운 형식으로 풀어낸 그의 작업이 한국인들의 철학적 호기심을 새롭게 자극했기 때문이죠.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 예술계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기록이었습니다.


죽음을 예술로 만드는 사람들
데이미언 허스트의 유리 속 상어 앞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듯, 우리는 언제나 삶의 끝, ‘죽음’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궁금해해왔습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유한함이라는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두려움 앞에서, 작가는 오롯이 자신만의 언어로 그것을 가장 솔직하게 꺼내 보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솔직함에서 관람객들은 비로소 자신의 삶과 죽음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볼 용기를 얻습니다. 똑같은 벽시계 두 개를 나란히 걸어두고 건전지가 닳아 하나씩 멈춰가는 과정으로 연인의 죽음을 그렸던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와 수천 개의 소 뼈더미 위에 앉아 핏자국을 씻어내는 퍼포먼스로 전쟁과 죽음의 냄새를 전시장 가득 채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 그리고 익명의 낡은 사진과 빛바랜 유품 옷가지로 잊혀간 개인의 죽음을 거대한 제단처럼 복원해낸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까지. 이들이 전 세계의 이목을 꾸준히 사로잡는 것 또한 그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죽음’이라는 주제가 어쩌면 가장 예술적인 소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들에 대한 변치 않는 관심이 증명해주는 셈이죠. 모두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 끝이 사실은 자신의 삶을 더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하니까요.


한국 전시 문화의 새로운 페이지
54만 명이라는 숫자는 결국 한국 전시 문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예술을 통해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 데이미언 허스트의 이번 전시는 그 무거운 질문을 누구나 가볍게 줄을 서서 마주할 수 있는 경험으로 풀어내며, 한국 전시 문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죠. 이 지평이 가져온 한국 예술계의 다음 장면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