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얼굴과 갈등을 안고 돌아온 ‘성난 사람들’ 시즌 2가 에미상 트로피 세 개를 품에 안았습니다.


에미상 3관왕에 오른 ‘성난 사람들’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 시즌 2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피콕 극장에서 열린 제78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우수 음향상과 음향 편집상, 의상상을 받으며 3관왕에 올랐습니다. 에미상은 미국 방송계를 대표하는 시상식으로 그래미상, 오스카상, 토니상과 함께 미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4대 시상식으로 꼽히는데요. 이번 수상은 배우들의 연기뿐 아니라 이야기를 완성한 제작진의 섬세한 손길에도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게 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와 인물들로 완전히 판을 바꾼 시즌 2가 제작 기술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죠.
작품은 올해 14개 부문에서 총 16개 후보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배우 윤여정과 오스카 아이작(Oscar Isaac), 캐리 멀리건(Carey Mulligan), 찰스 멜턴(Charles Melton)이 연기상 후보에 올랐고, 이성진 감독 역시 작품, 각본, 연출 부문에 이름을 올렸죠. 다만 작품상과 남녀주연상 등 주요 부문 추가 수상을 기대했던 본 시상식에서는 아쉽게도 더 이상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하며 앞서 거둔 3관왕으로 일정을 마쳤습니다.


가장 사적인 분노에서 시작된 이야기
2023년 공개된 ‘성난 사람들’ 시즌 1은 도로 위 사소한 신경전이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커지며 집착에 가까운 복수전을 벌이는 이야기였습니다. 단순한 다툼을 넘어 현대인의 불안과 고립, 관계 속 결핍까지 날카롭게 파고든 스토리와 배우 스티븐 연(Steven Yeun)과 앨리 웡(Ali Wong)의 강렬한 연기가 돋보였죠.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담긴 상처와 쉽게 드러내지 못한 욕망, 그것이 들켰을 때 따라오는 수치심과 자괴감 등 화면에서 정면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내면까지 솔직하게 담아냈습니다. 이토록 현실적인 장면들이 전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건드렸던 걸까요? 작품은 골든글로브 3관왕을 비롯해 에미상 8관왕까지 거머쥐며 첫 시즌부터 독보적인 수상 기록을 남겼습니다.


화려한 클럽 안에서 뒤엉킨 욕망
시즌 1이 도로 위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충돌이었다면, 시즌 2에서는 판을 바꿔 여러 사람의 욕망이 부딪히는 화려한 컨트리클럽으로 무대를 옮겼습니다. 전작과 연결되는 속편 대신 완전히 새로운 사건을 다루는 앤솔러지(Anthology) 형식을 택해 또 다른 ‘성난 사람들’을 불러모은 것인데요. 이야기는 컨트리클럽의 총지배인 ‘조시’와 아내 ‘린지’의 다툼을 말단 직원 ‘애슐리’와 ‘오스틴’이 우연히 목격하며 시작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를 자신들의 처지를 바꿀 절호의 기회로 삼죠. 여기에 클럽의 소유주인 억만장자 ‘박 회장’ 역의 윤여정과 그의 남편 ‘김 박사’ 역의 송강호까지 얽히며 작은 비밀 하나가 직원과 관리자, 초부유층 사이의 치열한 힘겨루기로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갑니다.


의상으로 보여준 세대별 욕망의 얼굴
그렇다면 이번 에미상 시상식에서 의상상을 거머쥔 ‘성난 사람들’ 시즌 2 속 배우들의 의상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요? 의상 디자이너 올가 밀(Olga Mill)은 서로 다른 세대의 세 커플을 계절에 빗대어 옷으로 풀어냈는데요. 20대인 애슐리와 오스틴에게는 봄을, 중년의 조시와 린지에게는 가을을, 80대인 박 회장에게는 겨울을 연결했죠. 나이가 들며 삶의 모습이 달라지듯 옷차림에도 각 세대가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묻어났습니다.
Z세대 특유의 꾸밈없는 태도를 보여주듯 애슐리와 오스틴의 옷은 편안하고 자유롭습니다. 오스틴은 짧은 쇼츠와 후디처럼 힘을 뺀 아이템을 즐겨 입는 반면, 애슐리는 변화하는 인간관계에 따라 스타일이 계속 달라지죠. 초반에는 오스틴과 비슷한 편안한 차림을 고수했다면 클럽 여성들과 친해지기 시작한 뒤로는 로맨틱한 코티지코어 룩으로 넘어갑니다.


한편 밀레니얼 세대인 조시는 몸에 꼭 맞춘 수트에 스니커즈를 매치하며 격식은 갖추되 ‘쿨한’ 상사처럼 보이려 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지 않은 그는 클럽 회원들이 무엇을 입는지 눈여겨봤다가 비슷한 옷을 자신의 옷장에 하나씩 들이기도 하죠. 아내 린지 역시 목가적인 드레스를 즐겨 입으며 ‘잘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 애씁니다.


반면 이미 막대한 부와 지위를 가진 박 회장에게 유행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화이트와 크림, 그레이처럼 차분한 컬러 중심으로 옷장을 채우면서도 가죽 재킷 같은 예상 밖의 아이템을 더해 유행을 좇지 않아도 되는 여유와 힘을 보여주었죠. 끊임없이 다양한 정체성을 시도하는 20대부터 주변의 스타일을 의식하는 중년 세대와 유행에서 한발 비켜 서 있는 인물까지. 작품 속 의상을 따라가다 보면 세대의 차이는 물론 각 인물이 놓인 사회적 위치까지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본 시상식에서 추가적인 수상은 불발됐지만 ‘성난 사람들’ 시즌 2가 남긴 인상은 충분히 선명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인물의 나이와 취향, 계층과 욕망까지 세심하게 녹여낸 옷차림은 작품이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냈죠. 더 나은 삶을 원하고, 다른 사람의 자리를 부러워하며 때로는 자신이 가진 것조차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번 영화는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인물들을 통해 결국 모두의 마음 속에 있는 욕망과 불안을 파고든 작품으로 기억될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