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게 하는 힘. 필름의 존재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그 안에서 흑백은 색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빛과 피부, 선과 질감으로 아름다움을 새롭게 읽는다.
색이 사라진 자리에서 가장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것은 선이다. 나스(NARS) 네츄럴 매트 롱웨어 파운데이션 #양양으로 피부를 균일하게 정돈한 뒤, 지방시 뷰티(GIVENCHY BEAUTY) 프리즘 리브르 파우더 #N00 튤 오팔레센트를 덧발라 매트하고 보송한 느낌을 만들었다. 눈썹은 맥(M·A·C) 리퀴드라스트 워터프루프 라이너 #포인트 블랙으로 본래 눈썹보다 높은 위치에 얇고 긴 아치 형태로 그렸다. 입술은 메이크업포에버(MAKE UP FOR EVER) 아티스트 컬러 펜슬 매트 #600 애니웨어 카페인으로 윤곽이 도드라지게 했다.
눈가에 넓게 퍼뜨리듯 바른 초록빛은 흑백필름 위에서 짙은 회색의 면으로 변하고, 고르지 않게 쌓인 아이섀도의 질감은 거친 필름 입자와 만나 더욱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맥(M·A·C) 리퀴드라스트 워터프루프 라이너 #포인트 블랙을 눈두덩이 전체에 둥글게 채워 바르고, 경계를 정돈하지 않은 채 거칠게 마무리한다. 그 위에 맥 대즐 섀도우 #캐쉬인을 곱게 갈아 흩뿌리듯 얹어 오묘한 그린 펄을 더했다.
톱은 Vivienne Westwood.
아날로그 무비 카메라로 기록한 필름 프레임을 이어 붙였다. 모델은 자신의 메이크업을 천천히 지워가며 카메라 앞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촬영 주체로서 이미지가 변화하는 과정에 개입한다.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얼굴로 대형 카메라 앞에 선 모델 수아. 검은 천 아래에서 초점을 맞추고 필름을 장착한 뒤, 단 한 번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기다리는 과정은 빠르고 매끈하게 완성되는 뷰티 이미지의 시간과 정반대에 놓인다. 즉시 확인할 수도, 쉽게 되돌릴 수도 없는 불확실한 시간 속에서 사진가와 모델은 함께 한 장의 초상을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