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게 하는 힘. 필름의 존재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그 안에서 흑백은 색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빛과 피부, 선과 질감으로 아름다움을 새롭게 읽는다.
진한 레드빛은 흑백필름 위에서 한층 깊은 검붉은 명암으로 표현되고, 유리처럼 반짝이는 질감은 어두운색 위에서 더욱 밝게 빛나며 입술의 존재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버버리 뷰티(BURBERRY BEAUTY) 키세스 리퀴드 매트 #106 더 레드를 입술 전체에 선명하게 바른 뒤, 맥(M∙A∙C) #클리어 립글라스를 충분히 덧발라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풍부한 광택을 연출했다.
뭉치고 갈라진 마스카라의 거친 질감과 오묘한 펄의 광택이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속눈썹을 뷰러로 확실히 컬링한 뒤, 샤넬(CHANEL) 레 베쥬 마스카라 #30 블랙을 여러 번 덧발라 선명한 라인을 이루게 했다. 아랫눈썹에 길고 도톰한 속눈썹을 붙이고 같은 마스카라를 두껍게 발라 가지런히 정돈되지 않은 불규칙한 결이 돋보이게 했다.
메이크업이 지워지는 동안 얼굴에는 완성된 아름다움과 지워진 흔적이 차례로 겹쳐진다. 아날로그 필름은 그 변화의 순간을 프레임마다 포착하며 모델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초상을 기록한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의 본질을 “그것은-존재했음”이라고 말했다. 민낯으로 대형 카메라 앞에 선 모델 서연. 이 사진은 민낯에서 어떤 진실을 발견하려고 촬영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그곳에 머물렀고, 카메라와 서로를 오래 바라보았다는 사실 자체를 흑백필름 위에 남기기 위해 담은 것이다. 셔터가 열리기까지 기꺼이 감수한 시간은 얼굴의 표면을 넘어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어떤 순간의 존재를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