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고 표현해내는 순간.
배우 심수빈이 가장 큰 기쁨으로 내딛는 걸음.

심수빈 SimSubin 첫세계 새 부산국제영화제 부국제 BIFF 윤단비 마리끌레르 MarieClaireKorea
오간자 드레스 Ganni.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지우러 가는 길>에서 임신 중단을 결심한 고등학생 ‘윤지’를 표현하며 배우의 세계에 처음 들어온 심수빈. 이후 드라마 <기리고> <은밀한 감사> <참교육>을 지나온 그는 올해 다시 한번 부산을 찾아와 두 개의 얼굴을 보여준다. 첫사랑의 낯선 욕망을 마주하는 <첫세계>의 ‘진’, 새와 연관된 고등학생 연쇄 추락사를 쫓는 <새>의 ‘혜정’. 인물의 감정을 섬세히 들여다보며, 용기 있게 성장해갈 그가 연기에 대한 애정 어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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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세계>와 <새>로 다시 한번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을 예정이에요.

지난해에는 처음이라 많이 긴장했는데, 이번엔 차분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면 좋겠어요. 스크린으로 제 얼굴을 보는 건 여전히 떨릴 것 같아요.(웃음) 기회가 된다면 다른 상영작도 보고 맛집도 찾아가려고요. 예전에 부산을 여행하면서 맛봤던 ‘젤라떡’을 또 먹고 싶어요.

<첫세계> 얘기부터 나눌까 해요. 윤단비 감독님과의 첫 만남을 어떻게 기억 하고 있나요?

오디션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제 연기를 본 감독님이 처음 하신 말씀이 이거였어요. “커여운데요?”(웃음) 그땐 ‘어떤 신호일까?’ 싶었는데, 촬영하다 보니 그 표현이 감독님의 세계에서는 좋은 의미로 쓰이더라고요. 저도 모르는 사랑스러운 면을 발견해주신 게 아닐까 싶어요. 감독님이 제가 맡은 ‘진’을 ‘똥강아지’라고 부르시는데, 저도 진이 그만큼 경쾌한 캐릭터라고 느꼈거든요. 평소 생각이 많은 저와 다른 면이 있어서 현장에서 마음을 가볍게 가지려고 했어요.

<첫세계>의 이야기는 어떻게 다가왔어요?

이 영화가 저를 찾아왔을 때 참 반가웠고, 꼭 붙잡고 싶었어요. 당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여름의 섬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도 좋았고요.

영화에 담긴 여름의 장면들이 참 예쁘더라고요.

완도에서 배를 타고 조금 더 가면 ‘소안도’라는 작은 섬이 있어요. 그곳과 근처의 다른 섬들을 돌아다니면서 찍었어요. 풍경과 날씨, 날것 같은 감정을 살리면서 유기적으로 촬영을 이어갔죠. 완성작을 보면서 ‘내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싶기도 했어요. 섬에서 즐겁게 쌓은 추억도 생생해요.

<첫세계>에 함께하며 ‘첫사랑’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해봤나요?

첫사랑이 풋풋하고 달콤하기만 하진 않잖아요. 오히려 ‘사납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엄청 크고 뜨거운 불덩이를 한입에 삼킨 듯 어쩔 줄 모르겠는 감각’이란 문구를 시나리오의 첫 장에 적어두고 연기했어요. 그 감각이 지나가야 비로소 상대를 이해하게 될 거란 생각도 들어요. 이기심 등으로 인해 알아보지 못한 면면을 나중에 깨닫기도 하니까요.

윤단비 감독님이 “첫사랑은 하나의 세계가 끝나고 다른 세계가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말한 게 떠오르네요. 누구나 그런 사랑을 겪는다는 점에서 생긴 고민은 없었나요?

설득하는 연기를 하려 하진 않았어요. 관객 입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인물의 내밀한 감정에 공감되는 순간을 많이 겪었거든요.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집중하고, 제 경험을 토대로 표현한다면 누군가에게 분명히 가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한편 <새>에서는 진과 사뭇 다른 매력을 지닌 혜정 역을 맡았어요.

<첫세계>에서는 제 밝은 면에 집중했다면, <새>의 혜정을 표현할 때는 좀 더 무거운 감정에 주목했어요. 어두운 분위기의 음악을 찾아 듣는 식으로 제 상태를 달리했죠. 다른 형태의 예술이 영감을 주기도 하더라고요.

혜정을 만나며 배우로서 느낀 것이 있다면요?

연기할 때 제 감정에 몰두하는 편이었는데요. 혜정이 엄마 ‘예옥’(강경헌)의 마음을 점점 헤아리듯이 저도 누군가를 이해해가는 캐릭터를 더 표현하고 싶더라고요. 다른 존재를 더 생각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제 세상이 확장되는 것 같아요.

<새>의 손현록 감독님이 비전 섹션 인터뷰에 이 질문을 남겼어요. “새장 밖으로 발을 내디뎌보자고 생각했다. 어떤 구분도 없다면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제게도 와닿는 질문이에요. 어딘가에 묶여 있지 않고 자유를 좇는 삶을 지향하거든요. 배우로서 제 정체성을 정해야 할 것 같았던 적이 있어요. 어떤 영화에서, 저의 어떤 면을 펼쳐야 할지 고민했죠. 그런데 그 노선이 저를 가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으면 감독님들이 다양한 모습을 찾아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흰 도화지 같은 상태이고 싶은 거네요.

네. 그게 추구미예요.(웃음)

우연히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연기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요?

스스로를 깨나가며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의 의미가 크다고 느꼈어요. 창작에 대한 열정 덕분인지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가는 데 마음이 절로 이끌렸고요. 작품을 끝낼 때마다 한 단계씩 성장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더 나아지고 싶은 습성이 있나 봐요.

“실패하는 내 모습까지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실패를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도 성장의 동력이 되죠?

맞아요.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실패가 성취일 수도, 성취가 실패일 수도 있잖아요. 그 지점을 자양분으로 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모험 정신이 있거든요. 소극적인 성격이지만 ‘할까? 말까?’ 하는 순간에 그냥 해버리는 선택을 자주 해왔어요. 무엇이든 해봐야 알게 되고 얻을 수 있는 게 있으니까요. 호기심과 경험의 힘에 대한 믿음으로 계속 선택하다 보니 저 자신이 용감한 사람처럼 여겨지더라고요. 그래서 용기 내는 일이 어렵지 않을 수 있겠다 싶어요.

시나리오를 꾸준히 쓴다고 들었어요. 어떤 이야기가 담기는지 궁금해요.

고등학생 때부터 제 안의 감정이나 생각을 틈틈이 글로 남겨왔는데 그 형태가 일기, 메모, 시나리오 등 다양해요. 요즘 학교에서 듣는 시 창작 수업의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시 짓는 감각은 감정의 충동적 발현이다. 그래서 시는 퇴고할수록 나아지는 문학이 아닐 수 있다.” 제가 글 쓰는 방식도 비슷한 것 같아요. 처음의 감정이 훼손되는 걸 원치 않아서 써둔 글을 자주 꺼내 보지 않는 편이기도 해요.

본인의 시나리오 속 캐릭터를 직접 연기해보는 건 어떨까요?

실제로 학교에서 해봤어요.(웃음)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는 건 잘해낼 수 있었는데, 이야기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살피는 건 어렵더라고요. 언젠가 한 번쯤 제 시나리오가 스크린에 펼쳐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만, 지금은 배우로서 캐릭터에 오롯이 집중하는 경험을 더 쌓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내일의 심수빈 배우가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나요?

어떤 작품이든 유연하게 녹아들 수 있는 배우이고 싶어요. 저를 잊고 다른 존재가 되어 순간적으로 몰입하는 게 인생에서 제일 재미있더라고요. 캐릭터에 마음을 쏟고, 작품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일이 참 멋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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