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출신 사진가이자 영화감독 윙 샤(Wing Shya)의 카메라는 스크린에 담기지 않은 사이의 순간을 포착해왔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서 아름다운 장면들을 건져 올리던 그는 이제
익숙한 방식을 내려놓고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응시한다.
삶이라는 영화 속에서, 다음 장면을 모른 채로 기꺼이 셔터를 누르는 그와 나눈 대화.



두 권의 사진집 <Solace> <Day / Night>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현장에서 스틸 사진가로 활동하며 촬영한 사진을 중심으로 여행지에서 포착한 사적인 풍경 등을 함께 엮은 책이다. 약 30년간 쌓아온 방대한 아카이브를 다시 들여다보고,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엮는 과정에서 무엇을 느끼고 경험했나?
사실대로 말하자면, 사진집을 만드는 전 과정에 나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언제나 이런 식으로 작업한다.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다고 제안하면,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사진을 전부 보낸 뒤에 자유롭게 만들어달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출판사와 북 디자이너에 대한 믿음이 있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고, 무엇보다 독자에게 어떤 구성이 흥미로울지를 생각하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내 방식대로 사진을 고른다면 아마도 엄청나게 추상적으로 만들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는 책이 되겠지만, 그것이 결코 독자를 위한 책은 아닐 것이다. 또한 어떤 종류의 촬영이든 촬영을 마치면 내 작업도 동시에 끝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지나간 작업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보다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게 내게는 훨씬 재미있고 설레는 일이다.
흥미로운 태도다. 그럼에도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작업물을 재해석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은 있었을 듯한데.
간혹 찍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던 사진들을 편집자가 고를 때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조합된 사진들을 볼 때, 혹은 원본이 아예 다른 형태로 바뀌어 있는 걸 볼 때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더라. 늘 새로운 눈으로 내 작업을 보고 싶기 때문에, 그게 내 사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 더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
두 책을 나란히 감상하면서 이전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일관된 시선이나 스타일을 발견하기도 했나?
어떤 사진들은 영화 스틸 컷이 아닌데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더라. 그건 아마 내 작업 방식의 영향이 클 것이다. 예를 들어 나무나 사과처럼 정적인 대상을 바라볼 때도 나는 그 대상 너머에 누군가의 이야기가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접근한다. 평소 스타일을 의식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이미지를 바라보는 내 방식 자체가 영화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사진을 시작한 지 10년쯤 지났을 때였다. 그 무렵부터 사람들이 내 사진을 “시네마틱하다”고 표현하기 시작한 것 같다. 스틸 이미지가 아닌데도 영화 속 장면 같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내가 사진에 마치 영화처럼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시네마틱한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거라 짐작한다. <해피 투게더>를 시작으로 <화양연화> <2046>까지 세 작품에 함께하며 그의 영화적 세계가 구축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 시기의 경험이 이미지를 바라보고 만드는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나?
당시에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의 감각과 방식을 깊이 흡수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영화를 찍는 방식부터 조명과 카메라를 활용하는 방식, 현장에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방식까지 모든 게 아주 자연스럽게 내 안에 스며들었다. 특히 사진을 찍은 이후의 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때는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기 전 이어서 스틸 촬영을 마치면 밀착 인화지를 만들어 감독에게 보여주곤 했다. 그러면 왕가위 감독이 마음에 드는 사진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W’라고 표시했는데, 그가 사진을 고르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내가 이미지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장편영화 <전성열련(Hot Summer Days)>을 시작으로 영화 작업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감독으로서 영화를 연출할 때 사진 작업에서 구축해온 고유한 스타일이 오히려 제약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나?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내 핏속에 흐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던 왕가위의 스타일을 답습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전성열련>은 홍콩의 시나리오 작가 토니 찬(Tony Chan)과 공동 연출한 로맨틱 로미디물인데, 그에게 제작 초기부터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거듭 이야기하곤 했다. 이후에 몇 편의 영화를 더 연출하는 과정에서도 늘 이미지 자체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오롯이 집중했다. 영화 작업을 할 때는 관객의 존재를 의식하며 감독으로서 완결된 이야기를 전달하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한다.
<해피 투게더> 촬영 당시 카메라 셔터 소리가 워낙 커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동안에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고 들었다. 당시의 제약이 오히려 영화의 장면 바깥에 존재하던 순간들을 포착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인가?
그렇다. 가끔 친구들에게도 이 일화를 들려주는데 다들 재미있어하더라.(웃음) 처음 <해피 투게더> 현장에 스틸 사진가로 투입됐을 때 내 카메라에는 셔터 소리를 차단하는 사운드박스가 없었다. 녹음에 셔터 소리가 들어가면 안 되니까 감독이 “액션!”이라고 외친 직후의 아주 짧은 찰나를 활용하거나, 컷 사인이 떨어진 뒤에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해피 투게더>의 스틸 컷에 영화 속 특정 장면이나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이 담겨 있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대부분 배우들이 다음 신을 기다릴 때나 연기를 마친 직후, 혹은 긴장을 풀고 쉬고 있을 때 찍은 사진이다. 그런 찰나를 포착하기 위해 배우들이 연기하지 않는 동안에도 현장에서 늘 그들을 살폈고, 언제든 셔터를 누를 수 있도록 손가락을 얹어두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왕가위 감독은 이런 촬영 방식을 흔쾌히 받아들였나?(웃음)
처음에는 화를 내기도 했다.(웃음) 내가 통상적인 스틸 사진을 찍어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해피 투게더>에서 실제 연기 장면을 담은 사진이 없는 걸 보고 화가 난 그가 당시 촬영감독이던 크리스토퍼 도일에게 내가 사용할 사운드박스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정작 물건이 도착했을 때에는 촬영이 거의 끝나 있었다.(웃음) 하지만 이후 <화양연화> 현장에서 사운드박스를 쓸 수 있게 된 뒤에도, 심지어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어 셔터 소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배우의 감정이 얼굴에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순간을 포착하는 게 더 흥미롭다. 특정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배우의 사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온갖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저 사람들은 지금 싸우고 있는 걸까? 아니면 사랑에 빠진 걸까? 같은 사진을 보고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도 있는 거다. 그 점이 특히 재미있다.
그 때문인지 사진 속 인물이 영화 속 캐릭터로 존재하는 건지, 아니면 스토리 바깥에서 배우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건지 분간하기 어렵다. 배우가 배역과 자기 자신 사이에 머무는 순간에 유독 매력을 느끼는 건가?
그렇다. 최근 촬영한 영화 현장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연기를 시작하기 직전 배우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눈빛이나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에서 무언가가 느껴진다. 컷 사인이 떨어지고 연기를 마친 직후에도 그들의 눈에는 어떤 기묘한 기운이 남아 있다. 배우가 자신의 내면 어딘가에 깊이 집중하고 있는 순간, 나는 그 사람의 영혼을 들여다보려 한다. 영화 속 인물의 영혼이 아니라 배우 자신의 영혼 말이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마치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지는데 그게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스틸 사진 촬영 경험이 거의 전무하던 시절부터 왕가위 감독은 당신을 여러 작품의 현장으로 불렀다. 그가 일찍이 당신의 사진에서 발견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처음 촬영에 투입되었을 때는 현장에 전문 스틸 사진가가 따로 있었지만, 첫 영화를 함께 작업한 뒤부터는 촬영장에 나만 불렀다. 그는 나를 실험적이고, 독특하고,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진을 정통으로 공부하지 않았고, 전형적인 영화 스틸을 찍는 사진가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나는 언제나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내 사진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다른 방향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던 게 아닐까.






영화와 음악, 패션, 사진 등 각기 다른 문화 영역이 끊임없이 교차하던 1990년대 홍콩에서 활동한 경험이 창작자로서 당신의 감각을 형성하는 데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그 시절을 생각하면 홍콩의 풍경보다도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당시 홍콩은 무언가 다른 걸 해보려는 젊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서양에서 온 창작자들의 영향으로 영화든, 광고든, 음악이든 이 분야에 있는 모두가 이전과 다른 것을 만들려고 했다. 우리 세대는 기존의 전통과 규칙을 깨부수려 애쓰는 홍콩 기성 창작자들의 작업을 보며 자랐다. 왕가위 감독을 비롯해 당시의 창작자들, 특히 영화감독에게는 무척 대담한 구석이 있었는데, 그땐 그게 특별한 일인 줄도 모르고 홍콩 영화는 원래 그렇게 만드는 건 줄 알았다.(웃음) 훌륭한 감독과 배우를 만났고, 넉넉한 예산으로 작업할 기회도 있었던 그 시절을 살아본 걸 큰 행운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 시절을 즐겼다면, 지금 이 시절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물의 표정과 몸짓부터 자연 풍경 속 무심히 지나칠 법한 순간까지, 찰나를 포착하는 감각이 인상적이다. 사진을 찍을 때 직관은 어떤 역할을 하나?
어느덧 30년 넘게 사진을 찍다 보니, 이제는 어떤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통하는지 제법 예측할 수 있게 됐다.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작업하거나 SNS에 사진을 올리면 사람들의 반응을 바로 확인할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로 돌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의식적으로 내가 아는 것을 전부 잊어버리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어떤 현장에서든 매 순간 어린아이의 눈으로 피사체를 바라보고 싶다. 돈을 받는다고 해서 찍는 즐거움까지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남을 위해 일하기보다 스스로에게 더 흥미로운 사람이 되고 싶고, 외부의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싶다. “윙, 사진 찍어. 지금 이 순간 좋잖아.” 그 목소리를 따라가면 어떤 순간에 셔터를 누르든 그건 온전히 나 자신의 선택이 되는 거다.
세월이 주는 노련함을 내려놓고 다시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듯하다. 어떤 방식으로 그 감각을 되찾으려 하나?
어마어마하게 어렵지만, 의식적으로 잊으려 노력하면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떠오르는 일화가 하나 있다. 예전에 중국의 아주 외진 지역에서 10명 남짓한 학생들과 사진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다. 스마트폰 기업이 후원하는 프로그램이라 학생들이 매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오면 피드백을 해주는 방식이었는데, 첫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학생들이 찍어온 사진을 전부 삭제하는 거였다. 매일 그 과정을 반복하니 나흘째쯤부터는 학생들이 결과물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더라. 그러다 닷새째 되는 날 “오늘은 사진을 좀 볼까?” 하니까 학생들이 난리가 난 거다. “젠장, 어떡해요!” 하면서.(웃음) 그때 내가 학생들에게 물은 건,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을 얼마나 즐겼느냐는 것이었다. 조금 전 직관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나. 내가 돌아가고 싶고, 지키고 싶은 건 바로 그런 순간이다.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을 즐기는 상태. 어차피 지워질 사진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내가 무엇을 느끼고, 왜 이 장면을 찍고 있는지에만 집중하게 된다. 프레임이나 조명, 상황, 색채에 대한 계산은 그다음 문제가 되는 거다.
한때는 인물과 시대, 장소를 설정하고 시나리오를 만들거나 촬영에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는 등 이미지를 무척 치밀하게 구상했다고 들었다. 지금은 촬영에 접근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진 듯한데, 현장에서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카메라를 드나?
요즘은 젊었을 때 만난 거장들이 얼마나 대담한 사람들인지 떠올리며 나 자신이 어디까지 과감해질 수 있는지 시험하는 중이다. 어시스턴트가 다음 날 촬영에 어떤 조명을 사용할 건지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몰라, 내일 알려줄게. 걱정하지 말고 그냥 집에 가!”(웃음) 미리 세운 계획에만 골몰하면 새로운 시도를 할 여지가 사라진다. 내일 날씨가 어떨지,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알 수 없지 않나. 그러니 내게 중요한 건 촬영하는 순간을 즐기는 일이다. 그래서 실제로 카메라를 들기 전까지는 가능한 한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으려 한다. 분명 더 어려운 선택이지만, 그만큼 내 앞에 더 많은 기회와 선택지가 생겨난다. 마치 모든 문이 열려 있어서 어느 쪽으로든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익숙한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는 기성 사진가의 시도가 다음 세대 사진가들에게도 용기를 심어줄 수 있을 듯하다.
대담해져도 괜찮다는 태도를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어 기쁘다. 어시스턴트 중에 내 작업 방식을 어려워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내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본다. 나는 그들에게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다고, 그보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집중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수시로 조언한다. 가끔씩은 강하게 몰아붙일 때도 있다. 그게 내가 앞선 세대 창작자들에게 전수받은 태도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계획하지 않은 순간들이 당신의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다. 오랜 세월 수많은 이미지를 만들어오면서 우연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나?
언젠가 페루의 정글에서 샤먼과 열흘 가까이 같이 지낸 적이 있다. 그곳에서 우주와 인간이라는 존재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신비롭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인생이 하나의 거대한 게임과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 모든 것이 이미 쓰인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고, 나는 그 안에서 감독이 아닌 배우로서 내 역할을 연기하는 거다.
<화양연화> 포스터 이미지의 탄생 비화가 떠오른다. 당시 홍콩에서 방콕에 막 도착해 곧장 촬영장으로 향했는데, 하도 피곤해서 스태프들이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옥상에 신문지를 깔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왕가위 감독이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윙, 어디 있어? 거기서 뭐 해?” 얼떨결에 배우들의 부감 사진을 찍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감독이 나중에 그 사진을 찾을지도 모르니 이제는 정말 찍어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웃음)
그때 배우들은 옥상에서 대화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영화 속 장면이 아니었으니 그들의 얼굴 대신 마주 보고 선 두 사람의 다리를 찍었다. 그런데 그 사진이 <화양연화>의 포스터로 낙점된 거다. 정말 기막힌 일이지 않나! 내가 옥상에서 잠들지 않았다면, 왕가위 감독이 나를 깨우지 않았다면 그 사진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배우들이 연기하 고 있었다면 아마 얼굴을 찍었을 테고. 그 모든 우연이 겹쳐 한 장의 사진이 만들어진 거다. 나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 되어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 이미 시나리오를 써두었고, 나는 그 안에서 셔터를 눌렀을 뿐이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믿음이 때로는 일종의 허무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나? 그럼에도 여전히 카메라와 함께하는 여정을 즐기고 있는지 궁금하다.
카메라는 나를 참 많은 곳으로 데려다줬다. 왕가위 감독을 비롯한 수많은 창작자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었고, 세계 곳곳을 여행할 기회도 줬다. 그 모든 경험을 통해 창작자로서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물론, 지금도 그 여정을 즐기고 있다. 어차피 누군가 이미 써놓은 시나리오 속에 있으므로 나는 그저 내 역할을 잘해내면 되는 거다.(웃음) 가끔 실수하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도 괜찮다. ‘오늘은 조금 좋지 않은 날인가 보네. 그래도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나아가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