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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남자가 내 앞에서 마스카라를 바르건, 빨간 립스틱을 듬뿍 칠하건 크게 상관없다. 그렇지만 내 남자가 나와 함께 있는 동안 파우더로 얼굴을 톡톡 두드리며 메이크업을 고친다거나, 어젯밤 나와 터프한 키스를 나눴던 남자친구가 뷰티 숍에서 유수분의 밸런스를 따져가며 화장품 고르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솔직히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

Y는 얼마 전 만난 지 두 달 된 남자친구와 첫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후 고민이 많아졌다. 아름다운 리조트에서 즐기는 바캉스는 완벽했다. Y의 남자친구가 두둑한 메이크업 파우치를 꺼내놓기 전까진 말이다. “얇은 컨실러로 꼼꼼하게 잡티를 가리고는 BB크림을 바르더라. 마지막엔 에어쿠션을 들고 얼굴에 톡톡 찍어대는 거 있지? 그것도 극도로 섬세한 손길로 정성스럽게 말이야.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펴 바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어.” Y는 조그만 퍼프로 콧방울까지 꼼꼼하게 두드리던 그의 모습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여행 마지막 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자마자 기내가 건조하다며 지그시 눈을 감고 안개 분사형 미스트를 얼굴 앞에 대고 갈 지(之) 자를 그리던 그를 보고 Y는 한 번 더 경악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이후로 만날 때마다 자꾸 이 남자의 모공 사이에 낀 BB크림에 눈길이 가. 내 앞에서 에어쿠션까지 두들겨대다니. 그 장면이 자꾸 떠올라 정말 미치겠다고.”

뷰티 마니아 남자친구 때문에 고민이 많은 Y와는 달리 남자친구가 그루밍족인 덕분에 편한 연애를 즐기고 있다는 B. 그녀는 오래전부터 머리카락과 눈썹을 제외한 온몸의 털을 말끔하게 왁싱한다. 본인의 것을 포함해 바닥에 떨어진 사람의 털(?)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너무 싫다는 게 이유다. 다행히 B와 함께 사는 그녀의 남자친구 M은 그녀처럼 왁싱숍을 즐겨 찾는다. 겨드랑이는 매끈하게 관리하고 다리나 팔에 나는 털은 눈에 잘 띄지 않게 숱을 조절한다.

얼굴에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상태를 방치하는 남자, 반대로 가방 속에서 오일 페이퍼를 꺼내 꾹꾹 눌러 닦는 남자. 둘 중 누가 나을까? 개인적으로는 그 남자가 애초에 집에서 더 깔끔한 상태로 약속 장소에 나와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B처럼 꽤 까다로운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M 같은 그루밍족이 환영받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여자들은 단지 적당히 깨끗하고 단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평범한 남자를 바라는 것뿐이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사귄 지 얼마 되지 않는 여자에게 우아하고 섬세한 손짓으로 화장하는 장면을 대놓고 보여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굳이 자세히 알고 싶지 않은 건 분명하니까. 언젠가 남자친구의 모공에 BB크림이 끼건, 눈가에 아이라인이 번지건,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날이 올 때까지 부디 여자친구 앞에서 에어쿠션은 잠시 접어두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