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생존을 위해(에너지 공급책으로) 음식을 먹는 사람과 기분에 휘둘려 음식을 먹는 사람. 이미 여러 연구에서 일반인의 70% 정도가 감정에 휘둘려 음식을 먹어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안타깝게도 이들 중 남자보다 여성의 비율이 현저히 높다. 심리치료사 샐리 베이커는 자신의 책 <음식에 대한 느낌을 바꾸는 방법(How to Feel Differently about Food)>에서 감정적인 식습관이 이제야 심리적 강박증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한다.
“최신 건강관리 지침을 보면 감정적 허기를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어요. 영양적인 측면이나 행동적인 측면에서 반드시 바꾸어야 할 나쁜 습관으로 파악하기 시작한 거죠. 감정에 따라 어떤 음식에 손이 갈지 미리 파악하고, 먹지 말아야 할 근본적인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임상심리학자 마크 윈우드 박사도 같은 의견이다.
“감정적 허기는 음식을 먹는다고 채워지는 게 아니에요. 일시적으로 착각을 일으킬 뿐이죠. 음식에 대한 과도한 반응을 개선하지 않으면 건강을 해치고 심각한 집착을 불러옵니다.” 감정적 허기를 해소하고 음식에 대한 집착을 이겨내는 방법은 그 동기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일 터. 감정에 따른 이상 식욕 증상과 맞춤형 대처법을 소개한다.
CASE 1
불안하거나 화가 나면 먹는 사람들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건강한 식습관을 파괴하는 주범이다. 업무 마감일이 가까워질수록 뭐든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이 케이스에 속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음식을 먹어야만 기분이 나아지고, 연인과 격한 말다툼을 한 후 바삭바삭한 감자칩 한 봉지면 마음이 풀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집착 증상 “불안할 때 음식을 찾는 식습관은 어린 시절과 관련이 있어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린 시절 좋아했던 초콜릿이나 감자칩을 찾게 되거든요.” 샐리 베이커의 말에 영양학자이자 인기 팟캐스트 <크레이브 캐스트>의 진행자인 알렉산드라 제미슨은 적극 동의한다. “여성들은 분노나 실망감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을 불편해해요. 성질 나쁜 여자로 보이길 두려워하죠. 그래서 바삭바삭한 음식을 씹으면서 공격성을 표출하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가 바로 감자칩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되고 체내 아드레날린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갈구한다. 또 칼로리가 높은 음식은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에 뇌에서는 스트레스가 조절되는 착각을 불러일으켜 나쁜 식습관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대처법 샐리 베이커는 일단 음식에 대한 집착의 강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라고 조언한다. 감자칩이 당기는 순간에 물을 한 잔 마셔보라. 그래도 허기가 가시지 않고 긴장감이 지속되거나(위가 꼬르륵거리는 느낌은 아니다)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이미 그 음식에 대한 집착과 감정이 생긴 게 분명하다. 이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몸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감정적 허기임을 알아차리고, 눈 딱 감고 5분만 견디면 사라질 허기라고 머릿속으로 주문을 외워라. 5분의 고비를 잘 넘겼다면 스스로에게 보상하라. 집착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을 다스렸다는 뿌듯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감자칩 대신 당근 스틱을 우걱우걱 소리 내며 먹거나 러닝머신을 뛰면 불안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CASE 2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먹는 사람들
완벽주의자들은 목표에 대해 양자택일의 태도를 보인다. 다이어트에 대해서 도 마찬가지. 완벽하게 체중을 감량하거나 아예 엉망진창으로 폭식하거나 둘 중 하나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내적 감정에서 발생하는 허기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유행하는 다이어트와 전형적인 식단이나 규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탓이다.
집착 증상 아마도 유지방이 잔뜩 든 치즈나 크림을 퍼먹고 있을 것이다. 완벽주의자들은 주로 저지방 다이어트를 하는데, 이때 결핍되기 쉬운 영양소인 비타민 A를 몸에서 갈구하기 때문. 요거트나 버터, 치즈 같은 유제품은 비타민 A를 다량 함유한다.
대처법 비판에 익숙한 완벽주의자들은 음식을 ‘마음껏 퍼먹는’ 순간에도 어떤 꾸지람의 소리를 듣게 되는데, 대체로 부모님이나 선생님 같은 어른의 목소리일 때가 많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정확히 누구의 목소리인지 파악하고 유년기 트라우마를 파악하자. ‘좋은 음식’ 또는 ‘나쁜 음식’처럼 음식에 대한 가치판단도 피할 것. 완벽한 사람은 없다. 마음에 여유를 갖고 적당히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CASE 3
위안이나 보상으로 먹는 사람들
슬플 때는 슬퍼서, 기쁠 때는 기뻐서 먹는다. 음식을 먹으면서 위안을 받거나 때론 음식 자체가 보상이라 여긴다. 감정과 식습관의 상관관계는 매우 복잡하고 이성의 힘으로 조절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에 쉽게 휘둘리는 편이다.
집착 증상 탄수화물 음식을 잔뜩 주문해놓고, 또 다른 탄수화물 메뉴를 주문하고 있을 것이다.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세로토닌이 분비되면서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활력이 생겨 위로를 받는 듯 느낄 수 있다. 메뉴는 주로 어린 시절 좋아했던 빵이나 피자, 햄버거인 경우가 많다. 폭식으로 세로토닌이 과다 분비되면 감정 기복이 겉잡을 수 없이 심해지고, 이런 감정을 위로하기 위해 또다시 탄수화물을 찾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대처법 음식을 제외하고, 자신에게 선사할 보상 아이템 리스트를 집 안 곳곳 눈에 잘 띄는 곳이 붙여두라. 명품 가방일 수도 있고,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집에서 주로 혼자 식사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으로 친구들과 외식을 해보세요. 함께 식사하면 음식의 양을 조절할 수 있어 폭식도 막을 수 있으니까요.” 샐리 베이커의 조언이다.
CASE 4
좀비처럼 무의식적으로 먹는 사람들
주로 수면 부족 상태에서 나타난다. 온종일 카페인과 설탕에 의존하고, 밤이 되어도 깊이 잠들지 못한다. 피로감에 상관없이 몸은 자동운행 모드로 작동 중이고(마치 좀비처럼), 자신이 어떤 감정적 허기로 먹고 있는지 분석할 기력조차 없다.
집착 증상 카페인과 설탕을 입에 달고 산다. 체내에서 포도당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기관이 뇌인데, 수면 부족 상태에서 하루를 견디고 집중하려면 설탕과 카페인이 더 간절하기 마련. “하룻밤만 숙면하지 못해도 호르몬 불균형 상태가 심각해져 설탕과 카페인 의존도가 높아져요. 지속적으로 수면이 부족하면 인슐린 분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혈당 수치가 치솟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죠.” 알렉산드라 제미슨의 우려 섞인 말이다. 수면이 부족하면 지방세포를 분해하는 랩틴이 밤새 충분히 생성되지 않는 위험도 있다. 랩틴은 두뇌에 배가 부르다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하는데, 수면이 부족하면 랩틴 분비가 원활하지 않아 하루에 300kcal 정도를 더 섭취하게 된다.
대처법 행동의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음식을 마구 먹는다면 음식일지를 써보자. 허기의 강도는 1~10까지 세세하게 기록할 것. 간식을 찾는 순간 허기의 강도를 체크하고, 떠오르는 생각을 전부 음식 일지에 적으면 된다. 일주일정도 쓰다 보면 어떤 때 음식이 당기는지 파악할 수 있다. 수면 관리 앱을 사용해 수면 시간과 수면 중 뒤척이는 정도를 체크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