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매혹적인 룩은 모델이 지닌 본연의 아름다움을 토대로 아티스트가 구현한 컬러와 질감이 잘 결합했을 때 완성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생김새와 매력은 저마다 다른 법이니까요.”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들었어요. 영문학 전공자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기로 마음먹기까지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제가 아는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전수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영문학을 전공해 교사가 되고 싶었죠. 그러던 차에 성년을 앞둔 시기에 우연한 계기로 메이크업이 만들어내는 힘, 모델과 아티스트의 시너지, 제스처의 중요성 등을 알게 되었어요. 메이크업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인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미적 감각을 공유하는 일이에요.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끝없이 배우며 정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 이 길을 걷기로 결심했어요.

에르메스는 특유의 우아함과 간결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있죠. 뷰티에 이를 접목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점이 있나요? 에르메스는 오랜 역사를 이어온 장인정신에서 비롯된 우아함과 전문성, 그리고 실용성을 강조한 간결함을 모두 지녔어요. 이런 점을 뷰티 컬렉션에도 접목하고 싶었죠.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춘 컬러 스토리부터 기술력을 포함한 텍스처와 포뮬러, 실용적인 패키지, 그리고 에르메스 특유의 아이덴티티가 돋보이는 디자인까지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였어요. 기능을 넘어 오브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 점 또한 브랜드의 가치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죠. 뷰티 컬렉션 전반에 걸쳐 우아하면서 심플한 무드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당신은 자연스러운 컬러 조합과 적절한 농도 조절의 일인자라고 생각해요. 메이크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는 메이크업에서 조화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는 에르메스 뷰티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클로드 모네가 “아름다움은 빛, 색, 형태 간의 미묘한 조화다”라고 말했듯 다양한 컬러를 자연스럽게 조합하고, 그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하는 것이 아티스트의 역할이에요. 항상 밸런스를 생각하며 적재적소에서 하모니를 이루게 하려고 노력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모델이라는 대상이 있어야 하는 직업이죠.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상호 간의 소통 과정도 무척 중요할 것 같아요. 수년 동안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며, 가장 매혹적인 룩은 모델이 지닌 본연의 아름다움 위에 아티스트가 구현한 컬러와 질감이 잘 결합했을 때 완성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누구나 지니고 있는 생김새와 매력은 다른 법이니까요. 체형에 맞는 옷이 따로 있듯이, 같은 주제라도 모델에 따라 그에 맞는 메이크업을 해석하는 능력은 필수죠.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잘 결합했을 때 최고의 결과물로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선보인 아이 메이크업 컬렉션 ‘르 르가르’가 큰 화제였죠.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팔레트의 색상 조합이에요. 색상 구성은 어떤 방식으로 했나요? 아이 메이크업 컬렉션 중 ‘옹브르 데르메스 아이섀도우 팔레트’를 구상할 땐 사용하기 편하고 기능적으로 훌륭한 제품을 만들려고 했어요. 네 가지 컬러가 모두 조화로운 앙상블을 이루면서 팔레트의 한두 가지 컬러로도 심플한 룩을 거뜬히 소화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서 각 팔레트에 베이스로 활용할 수 있는 은은한 뉴트럴 셰이드를 포함했어요. 여기에 포인트가 되는 악센트 컬러, 시선을 끄는 글리터리한 텍스처 등으로 변주했고요. 눈매를 강조하고 깊이를 더하는 음영 셰이드도 놓치지 않았죠. 가장 큰 특징은 어떤 컬러와 질감을 결합해도 서로 잘 어우러진다는 점이에요. 하나만 사용해도 좋고, 네 가지 색을 모두 사용하면 더욱 완성도 높은 메이크업을 구현할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르 르가르’ 론칭 행사에서 본 그린 아이섀도가 유독 기억에 남아요.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드는 컬러 팔레트는 무엇인가요? 저 또한 02호 옹브르 베제탈을 특히 좋아해요. 르 르가르 컬렉션을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심혈을 기울였어요. 그 당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받았을 때는 옹브르 베제탈을 두고 걱정이 많았거든요. 은은하고 실용적인 컬러로 구성한 다른 팔레트와 달리, 시선을 확 끄는 강렬한 그린 컬러가 메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농도에 따라 아름답고 오묘한 인상을 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아이템이라고 자신했고, 지금은 가장 애착을 느끼는 셰이드가 되었어요.

‘르 르가르’ 론칭을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어요. 한국의 인상은 어땠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좋은 기억만 남아 있어요.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따뜻하게 환영해주었고, 특히 ‘르 르가르’ 컬렉션이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 무척 인상 깊었죠. 론칭 행사가 끝난 뒤에는 북촌 한옥마을의 고즈넉한 거리를 산책했는데, 전통 고택을 개조한 레스토랑에서 먹은 근사한 런치도 매우 기억에 남아요. 한국의 뷰티 브랜드를 탐색하면서 문화적인 관점에서 K-뷰티의 면면을 알아보는 재미도 쏠쏠했고요. 아, 마지막으로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에도 다녀왔네요. 짧지만 알찬, 그리고 많은 영감을 얻는 시간을 보냈어요.

한국 여성들은 뷰티에 관심이 무척 많아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런 점이 느껴졌나요? 앞서 이야기했듯, 이번 서울 방문은 저에게 많은 영감을 선사했어요. 특히 서울의 뷰티 매장에서 만난 고객들은 놀라울 정도로 전문적인 지식을 지니고 있더군요. 대부분의 사람이 그토록 뷰티 상식이 풍부한 도시는 서울이 처음이에요. 그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잘 선택하는 것 같아요. 그 때문인지 모든 여성이 자신에게 잘 맞는 메이크업을 하고 있는 듯했고요. 가볍고 은은한 광채가 도는 베이스와 생기로운 뺨과 입술, 그리고 이따금 컬러 포인트를 주는 아이 메이크업까지. 이 정도로 전문적인 메이크업을 한 여성을 흔히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죠. 다양한 뷰티 캠페인에서 심심찮게 남자 모델이 활약하는 것도 매우 인상 깊은 부분이었어요.

오늘의 인터뷰는 <마리끌레르> 코리아 3월호에 실립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에르메스 뷰티의 아이템이 있나요? 글로 피니시의 스킨에 ‘루즈 에르메스 41 로즈 팝 리미티드 에디션’을 발라보길 권해요. 짙은 푸크시아 핑크 컬러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하나만 발라도 포인트가 되니, 기분 전환이 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단 하나의 통통 튀는 컬러로, 얼굴뿐 아니라 기분까지 활력 넘치게 바꿀 수 있으니까요. 과감하다 싶어도 뭐든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해요. 도전할 용기만 있다면, 금세 컬러의 매력에 빠져들 거예요.

단 하나의 메이크업 아이템만 사용해야 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고 싶은가요? 단연 에르메스 뷰티의 ‘트레 데르메스 꾸르브 씰 아이래쉬 컬러 뷰러’예요. 또렷한 눈매를 위해 제가 빠뜨리지 않고 사용하는 아이템이죠. 메이크업을 하는 날에도, 하지 않는 날에도 이건 필수예요. 얼굴에 즉각 생기를 불어넣거든요.

요즘 시대는 획일화된 아름다움에 점점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뷰티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어요. 브랜드와 제품이 쏟아지면서, 선택의 폭도 그만큼 넓어졌죠.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제품을 선택할지 부담이 훨씬 커졌고요. 저는 앞으로 여성과 남성 모두 자유로운 컬러 플레이를 즐기는 시대가 오길 바라요. 그 안에서 자유와 영감을 얻고, 놀이하듯 뷰티를 즐기는 모습으로요. 제 목표 또한 이런 환경을 만드는 것이에요. 모두가 만족하는 포뮬러와 컬러 등 다양한 제품군을 구성해 획일화된 아름다움의 기준에 매몰되지 않도록 말이에요.

아티스트로서 생각하는 메이크업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메이크업과 스킨케어를 아우르는 뷰티 전체가 자신을 표현하고 기분을 환기하며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운 모습을 끌어 올리는 매개체라고 생각해요. 메이크업을 단순히 변신을 위한 도구로 생각해선 안 돼요. 자신을 숨기기보다는 스스로의 모습을 똑바로 인지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자세가 진정한 아름다움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