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경구피임약을 먹은 지 오래됐어요. 벌써 2년 차예요.” 최근 들어 생리전증후군이 심해져 고민하는 동료에게 경구피임약 복용을 슬쩍 권한 에디터. 기존에 7일 정도이던 생리 기간이 절반가량으로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을 만큼 고통스럽던 생리통이 사라지는 등 몸으로 실감하는 효과가 기대 이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홀가분한 건 더 이상 호르몬의 노예가 될 일이 없다는 것!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생리 전 여자 친구’ 같은 밈을 보며 마냥 웃을 수 없을 만큼 널뛰는 감정 기복으로 힘들었는데, 경구피임약을 복용한 뒤부터는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긍정적으로 바뀐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나열해보면 장점투성이인 경구피임약은 그간 큰 오해를 받아왔다. 불임, 유방암 등 여성이 특히 두려워하는 질병을 유발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그 시작. 심혈관계 부작용으로 현재는 사용이 중지된 경구피임약 1세대와 안드로겐의 작용에 의한 여드름, 체중 증가, 다모증, 우울증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2세대 피임약이 심리적 불안을 더했다. 하지만 3세대에 이르러서는 부작용이 감소한 건 물론이고, 여성호르몬 함량을 0.02mg까지 줄인 초저용량 제품이 등장할 만큼 진화를 거듭하며 경구피임약에 대한 여성들의 부담을 완화했다. 동화산부인과의원 송동화 원장 또한 경구피임약을 대하는 환자들의 달라진 의식을 실감한다고 말한다. 경구피임약 복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며 더 나아가 미레나와 임플라논 같은 호르몬 시술에 관한 문의도 늘고 있다고 한다. “경구피임약 실제 복용 후기가 SNS에 많이 공유된 것이 긍정적 시각을 이끌어낸 주요 요인으로 봅니다.” 송동화 원장은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인 ‘임신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경구피임약의 발전 과정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공통점은 ‘임신에 큰 영향이 없다’는 사실이라고 명확하게 밝혔다. 애초에 임신을 염두에 두고 만든 약이기 때문에 임신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는 경구피임약은 매일 같은 시간에 먹어야 하므로 규칙적인 복용이 관건인데, 건망증이나 불규칙한 라이프스타일 때문에 자신이 없다면 호르몬 시술도 시도할 만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송동화 원장도 3년간 복용하던 경구피임약을 끊고, 팔에 호르몬 장치를 이식하는 시술법인 임플라논을 유지하고 있다. 의사도 시술을 받았다니 살짝 무서운 마음이 들던 에디터도 귀가 솔깃했다. 다년간 진화를 거듭한 경구피임약처럼, 10여 년 전에 등장한 호르몬 시술도 발전을 이뤘을까?
생긴 지 15년이 지난 미레나 시술은 자궁 내 장치를 삽입해 프로게스테론이라는 여성호르몬을 일정 기간 방출하는 방식으로 가장 대중적이다. 자궁이 아닌 팔 안쪽에 호르몬 장치를 이식해 심리적 부담감을 낮춘 임플라논도 있다. 미레나 이후 나온 자궁 내 장치로는 카일리나, 제이디스 등이 있는데 성분 자체는 미레나와 같으나 호르몬 용량이 개선된 버전이 출시돼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최근 많이 사용하는 카일리나는 미레나와 유지 기간은 5년으로 같고, 피임 효과도 동일합니다. 미레나가 주로 과다월경 등의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카일리나는 생리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적고 피임 효과는 유지하도록 개선했죠. 같은 성분이므로 부정 출혈 등 부작용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용량을 절반 정도로 낮춰 부작용이 훨씬 적습니다.” 송동화 원장은 과거에는 이런 시술을 피임만을 위한 것으로 인식했지만, 생리통이나 과다월경 등의 증상을 완화하는 목적으로도 사용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시술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아직 드문 편. 호르몬 시술의 부작용과 시술에 대한 두려움이 시술을 망설이는 주된 이유다. 게다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개인차’가 엄연히 존재하기에 누군가에겐 의학 기술의 축복이 다른 이에겐 되레 부작용만 안기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무월경을 바라고 호르몬 시술을 상담하러 온 환자에게 생리를 완전히 안 할 확률은 30% 정도라고 설명하면 굉장히 실망스러워합니다. 호르몬 시술은 애초에 생리를 중단할 목적으로 개발한 시술이 아닌데 말이죠.” 무월경에 이를 만큼 호르몬 용량을 높이면 오히려 부정 출혈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더 심해지기 때문에, 생리를 막을 방법으로 호르몬 시술을 적극 권하기는 아직 어려운 실정이다. 생리를 멈추길 희망한다면,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생리 멈춤’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고민했는지 한번 더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결정을 위한 빠르고 확실한 지름길은 산부인과 전문의와의 상담이니 병원을 찾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