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레도 이전에도 유수의 브랜드에서 일하며 수많은 뷰티 브랜드를 아트의 경지에 올려놓았어요. 처음 바이레도에 왔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바이레도의 설립자 벤 고햄(Ben Gorham)은 감정과 추억이 깃든 향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브랜드를 설립했어요. 추상적 기억을 브랜드에 녹여내는 것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제가 바이레도에 합류하기로 결심한 주된 이유이기도 해요. 벤과 다이렉트로 소통하며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에 브랜드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빠르게 캐치할 수 있다는 점도 저에겐 큰 장점이고요. 바이레도의 감수성과 진정성을 깊이 사랑해요. 일을 위해 다른 곳에서 영감을 찾을 필요 없이, 이곳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저에겐 큰 영감을 줘요.
바이레도의 설립자 벤 고햄이 향을 대하는 방식은 무척 은유적이면서도 미니멀해요. 메이크업 작업을 할 때도 그와 자주 논의하는 편인가요? 벤과 저는 솔직한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받아요. 그는 비즈니스 면에서도 무척 뛰어난 사람이지만, 창의적인 아티스트의 면모도 지니고 있어요. 해답을 찾는 동시에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하죠. 벤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그 방식을 존중해요. 성과에 대한 압박이나 부담이 없는 환경이라 편안하게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바이레도의 독창성과 자유로움이 루치아 피카라는 아티스트를 만나 날개를 달았네요. 이곳에 합류하자마자 가장 먼저 정립하고자 한 건 무엇인가요? 바이레도에서 제가 처음 작업한 제품은 리퀴드 립스틱이에요. 제형을 리퀴드로 선택한 이유도 바이레도가 향수에서 출발한 브랜드이기 때문이죠. 향수와 감정, 두 가지를 접목해 어떻게 메이크업에 접근할지 가장 많이 고민했어요. 바이레도의 모든 향수는 개인의 추억을 향으로 해석한, 하나의 작품이자 이를 경험하는 이들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예요. 이 부분에 착안해 메이크업 또한 감정 전달의 매개체가 될 수 있게 하려고 했어요.
이런 서사로 인해 당신의 작업이 단순히 뷰티만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그림 속에서 잘 어우러진 것이군요. 사람들이 언어로 자기표현을 하듯이, 저는 컬러와 텍스처를 통해 조화와 아름다움을 드러내려고 해요. 서로 대조되는 색상을 조합하기도 하고, 톤온톤으로 우아한 느낌을 연출해보기도 하죠. 다양한 컬러를 조화롭게 활용하며 원하는 무드를 구현하려고 노력해요. 제가 만든 모든 제품은 정적이고 조화로운 면을 지니고 있어요. 이런 제품의 면면을 최대로 끌어내고 보여주기 위해 여러 제품과 컬렉션을 혼합할 때도 많습니다.
8월에 출시한 립스틱에 대해 좀 더 알려주세요. 이번 신제품은 텍스처가 핵심이에요. 컬러와 텍스처를 통해 사람들에게 경험과 기억을 각인하고자 했어요. 놀라울 정도로 매끄럽게 발리는 새틴 텍스처는 사람들에게 각인되기에 충분하죠. 이렇게 사람들에게 ‘각인’된 제품은 곧 ‘갈망’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이 매끄러운 텍스처를 갈망하게 되는 것이죠. 그 연결 고리가 참 재미있어요. 메이크업은 마치 매일 갈아입는 옷 같아요. 발림성은 곧 착용감으로 연결되고요. 가장 좋아하는 신발을 신고, 스웨터를 입을 때 자신감이 생기는 것처럼, 이 립스틱을 바르면 이런 자신감 넘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그러고 보니 바이레도에 합류한 뒤 처음 론칭한 것도 립 제품이죠? 루치아 피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도 선명한 레드 립이고요! 립스틱이 지닌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립스틱은 제 커리어 내내 함께했어요. 다른 제품으로 눈을 돌려도, 언제나 돌고 돌아 립스틱으로 돌아오게 돼요. 립스틱은 룩 전체를 좌우할 뿐 아니라, 기분이나 느낌, 감정에도 큰 영향을 미쳐요. 저는 어떤 결점을 가리기보다 나를 더 돋보이게 하는 메이크업에 초점을 둬요. 메이크업은 마치 자서전 같아서 자신만이 가진 스토리와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해주는 장치죠. 본인만의 시그니처 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립스틱도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에 충분해요.
다가올 서정적인 가을, 한국 여성들에게 단 하나의 메이크업 아이템을 추천한다면요? 당연히 바이레도의 립스틱이죠! 무엇보다 이 제품은 멀티 유즈가 가능하거든요. 제가 어머니께 배운 요령인데, 립스틱을 입술에 바른 후 볼에도 똑같이 바르고 잘 퍼뜨리면 생기롭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룩을 연출할 수 있어요. 깊은 붉은빛이 감도는 벽돌색 립스틱 하나면 청명한 가을날, 오색 단풍 아래 산책이라도 하는 듯 산뜻한 기분이 들 거예요.
고향 나폴리를 향한 애정을 담은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당신만이 지닌 시적인 감성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인가요? 저는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좋아해요. 분명 나폴리 태생이기에 그럴 거예요. 나폴리는 절대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곳이자, 누군가에겐 도피처이고, 누군가에겐 뜻밖의 발견을 알리는 곳이에요. 인생엔 현실적인 부분도 분명 존재하지만, 예측할 수 없고 즉흥적인 재미와 낭만도 있잖아요. 그 대조적인 모습이 나폴리에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어요. 두말할 것 없이 저에게 큰 영감을 주는 장소예요.
이탈리아의 로마나 밀라노 같은 대도시만 가본 저로서는 나폴리의 풍광이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이네요. 그렇죠? 전 나폴리의 길가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 걸 좋아해요. 그 대화는 벅찰 정도로 무해하고 유쾌하며 기분 좋은 내용으로 가득해요. 저도 모르게 살며시 미소를 짓게 되죠. 하늘과 바다의 빛이 색색으로 변하는 풍경은 또 어떻고요! 그 밖에 작은 골목에 숨겨진 교회들은 마치 예술 작품처럼 그 자리에 존재하고, 폼페이와 그 주변의 벽화는 동시대적 생동감을 안겨줘요. 도시 전체가 영감의 원천이자 창의적 에너지로 가득한 곳이에요.
다시 메이크업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샬롯 틸버리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뷰티업계의 경력을 시작했죠.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릴 때부터 매거진 속 모델들을 보면, 패션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룩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20대 초반에 친구가 제게 메이크업 코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이 강의를 들은 것이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넓은 시야,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길이 생긴 느낌이 들었죠. 그 느낌을 그대로 믿고 따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실은 예전에 당신이 방한했을 때, 멀리서 본 적이 있어요. 당당한 자신감과 애티튜드, 그리고 결점을 가리기보단 장점을 강조하는 메이크업 방식에 깊이 매료되었던 기억이 나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적당한 친밀감과 집중력, 그리고 열정이 깃든 감정적 지능이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모델마다 얼굴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와 잘 어우러지게 자신의 감성을 담아내 표현해야 하거든요. 사람마다 지닌 아름다움과 세련된 느낌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훌륭한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근 다양한 화보와 영상 촬영으로 매우 바쁜 일주일을 보냈어요. 수많은 모델들에게 메이크업을 하면서 이번에 다시금 깨달았죠. 20년 이상 이 일을 했지만, 매번 내 손으로 누군가에게 메이크업을 하는 순간에 여전히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고요. 전 지금도 메이크업 기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어요. 작업할 때면 나만의 세계로 완전히 빠져들어 깊이 매료되곤 하죠. 마음은 변함없이 초심자 같아요. 여전히 모든 작업이 너무나 특별하고요.
아티스트로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새로운 색감을 연구하고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 제품을 사용할 대상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들이 그들만의 스토리를 전하고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요. 컬러가 강하게 느껴지더라도 룩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녹아들 수 있게 만들었을 때 큰 희열을 느껴요. 모든 사람이 제가 만든 제품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앞으로 바이레도에서 그려갈 새로운 청사진이 있나요? 지금까지 바이레도에서 립스틱, 리퀴드 립스틱, 아이섀도를 선보이며 컬러와 텍스처로 감정의 강력한 연결 고리를 만들어냈어요. 앞으로는 사람들의 일부로 스며드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피부 위에 무언가를 발랐을 때, 기분이 좋고, 그 좋은 감정이 오래 이어지길 바라요. 앞서 말했듯 메이크업과 감정은 깊게 연결되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