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체앤가바나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돌체앤가바나의 아이코닉한 ‘라이트 블루 오 드 뚜왈렛’을 론칭한
후, 지금까지 20년 넘게 함께 일하고 있어요. 돌체앤가바나는 로큰롤 정신과 화려한 영혼을 동시에 지녔죠. 이런 점이 저에게 무한한 영감을 줘요. 게다가 우리는 장인정신과 창의성, 그리고 이탈리아인 특유의 재치를 겸비했다는 점에서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요. 향수를 탄생시킬 때마다 함께 깊이 있게 논의하고, 관성처럼 굳은 이 시장을 뛰어넘는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새롭고 혁신적이며 시대를 초월한 무언가를 위해서요.


돌체앤가바나 패션은 관능적이고 대담한 느낌이라면, 향수는 그와 대비되는 상쾌한 시트러스 향이 떠올라요. 마치 이탈리아 남부에서 갓 수확한 과일을 맛본 듯 신선한 느낌이요! 돌체앤가바나 향수는 항상 이탈리아에서 나는 최상의 원료를 사용해요. 이탈리아에서 수확한 것 중 최상의 품질이라는 면에서 으뜸으로 치는 것이 바로 시트러스과 과일이고요. 질 좋은 시트러스과 과일은 주로 시칠리아, 칼라브리아 등 아말피 해변 근처에서 수확합니다. 돌체앤가바나 시트러스 향수의 원천과 영감이 되는 지역이죠. 이런 서사가 있기에 우리가 돌체앤가바나 향수 하면 시트러스와 신선한 향을 떠올리는 건 무척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또한 이 과정은 다양한 걸작을 만드는 작업의 시작이 되기도 했어요. 이렇게 탄생한 라이트 블루 오 드 뚜왈렛의 독창적인 시트러스 향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아이코닉 향수로 완벽히 자리 잡게 되었죠.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디보션 오 드 퍼퓸 인텐스’는 기존의 시트러스 향과 완전히 달라요. 달콤한 향이 독특하게 감도는데 이 향수에 대해 좀 더 설명해줄 수 있나요? 디보션 오 드 퍼퓸 인텐스의 향기가 독특한 까닭은 밝은 가몬드 향을 지녔기 때문이에요. 캐러멜, 아몬드, 꿀 등 미각적으로 해석되는 가몬드 카테고리는 묵직한 달큼함이 특징이죠. 하지만 디보션 오 드 퍼퓸 인텐스는 마냥 달기만 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공기처럼 가볍고 밝은 분위기를 자아내죠. 헤이즐넛과 바닐라를 배합한 따스한 분위기가 감돌다가, 이내 오렌지 블로섬의 싱그러운 무드가 코끝을 스치거든요. 두 가지 향조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어 가몬드 계열 중에서도 특별한 느낌을 주는 것이죠. 그런 이유로 ‘브라이트 가몬드’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달콤하면서도 싱그러운 특유의 무드를 놓치지 않았네요. 이렇게 다양한 향수를 탄생시킨 주인공으로서 돌체앤가바나의 향수 중 유난히 애정이 가는 향수가 있나요? 무척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그중 하나만 꼽자면 라이트 블루 오 드 뚜왈렛을 선택할 것 같아요. 이 향수 덕분에 돌체앤가바나와 성공적인 협업을 이끌 수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는 향수거든요. 제가 라이트 블루 오 드 뚜왈렛에 강한 애착을 느끼는 건 필연적일 수 밖에 없어요.


과거 이야기를 해볼까요? 어떻게 조향사가 되었나요? 저는 프랑스의 그라스에서 자랐어요. 향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그곳은 향수가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이라, 그야말로 공기 중에 향기가 가득해요. 할머니는 재스민을 수확하셨고, 할아버지는 자연 유래 원료의 공급자였으며, 아버지는 향료 중개인이셨죠. 제 삶이 조향과 향수에 스며든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아버지께서 최상의 수확물을 가지고 오실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스민과 바이올렛, 장미, 시트러스 등의 향을 맡으며 놀았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은 조향사가 되겠다는 제 바람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으셨어요. 그럼에도 저는 이 분야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열여덟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조향의 기술적 측면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했어요. 합성 분자와 향료 화합물을 다루는 기술적 부분과 그라스에서 쌓은 후각적 기억이 결합되니 조향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줄곧 이 길
을 걷고 있고요.


그라스라니, 단번에 납득이 가는 대목이에요. 그 또한 당신의 영감의 원천이겠지요?
그라스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 훌쩍 떠난 여행지, 항상 나를 둘러싸고 있는 지중해의 자연처럼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아요. 심지어 미식의 세계에서도요! 이번에 출시한 디보션 오 드 퍼퓸 인텐스가 바로 미식에서 영감 받은 향수죠. 이 향수는 제가 돌체앤가바나와 함께 밀라노의 마티니 바에서 파네토네를 음미하던 순간에서 탄생했거든요. 앞서 말한 가몬드 향조를 사용한 이유예요. 제 창작 과정은 상당히 구체적인 편이라, 흠뻑 매료된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의 생생한 순간을 구현하려고 노력해요. 그럴 때마다 매 순간 진짜를 담고 싶다는 충동과 열정을 느끼죠. 그 순간을 향기를 통해 되살릴 수 있도록요.


그렇게 구현될 향기를 위해 특별히 즐겨 사용하는 원료가 있나요? 모든 향에는 고유한 매력이 있어요. 그 고유성이 서로 뒤섞이고 조합되며 예상치 못한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고요. 무한한 잠재력이 있는 거죠. 그 안에서도 단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침향(oud)’를 꼽겠어요. 침향은 무척 매혹적이면서도 신비롭고 다채로워요. 나무와 흙의 짙은 내음이 오래 지속되면서 포근하고 우아한 느낌을 주거든요. 하나의 재료로 이토록 다양한 분위기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놀라워요.


이야기를 나눌수록 향을 구현하는 일이 무척 고도화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토리를 담는 추상적 작업과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물리적 작업을 동시에 해야 하니까요.이런 특성 안에서 어떻게 접점을 찾는 편인가요? 향수를 만드는 작업은 상당히 섬세한 균형 조절이 필요해요. 감정적이고 시적이며 서사가 담긴 무형의 산물을 만들어야 하는 반면에 피부 위에서 향이 잘 구현될 수 있는지, 공식으로 정확하게 변환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현실적인 부분이 잘 어우러져야 해요. 마치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함께 가야 할 동반자 같은 관계죠. 저는 브랜드의 세계관과 향수의 개요에 먼저 깊이 몰입한 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구체화해나가요. 향수가 감정적으로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도록요. 그런 다음 기술적 시스템 안에서 이 방식이 최대한 드러날 수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야 해요.


2006년에는 마스터 퍼퓨머, 2007년에는 올해의 퍼퓨머에 선정될 만큼 향수업계에 큰 업적을 남겼어요. 존경받는 지위에 있는 만큼 책임감도 남다를 듯한데, 후배 조향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조향은 급하게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에요. 어떤 향수는 개발하는 데 수년이 걸리기도 하고요. 성패와 관계없이 모든 프로젝트에 일관된 마음과 자세를 유지하세요. 그리고 늘 세상의 모든 것을 궁금해하세요. 끊임없이 영감의 원천을 찾아 나서야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어요. 이것은 제가 마리 살라마뉴(Marie Salamagne)나 다프네 뷔제(Daphné Bugey) 같은 젊은 조향사들에게도 조언한 내용이에요. 이런 방법을 기본으로 하되, 본인에게 맞는 스타일로 조정해가면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향사는 사람들을 단숨에 사로잡는 동시에,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향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금은 단순해질 필요 있어요. 너무 많은 요소를 넣어 장식하려고 하기보다 본인이 생각한 바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공식을 만들어 간결하게 임팩트를 전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마스터 조향사라고 할 수 있죠.


권태로움 없이 오랜 시간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저는 매일 특별한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심장이 뛰어요. 이토록 긴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으면 마치 처음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처럼 흥분되거든요. 조향은 조합과 창조에 의해 영원히 진화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어요. 언제나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 있기에 지루할 틈이 없죠. 제게는 이 일 자체가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겨울을 맞이하는 이 계절에 어울리는 향수를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낮이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는 날씨에는 따듯하고 포근한 분위기의 향이 꼭 필요해요. 단연 디보션 오 드 퍼퓸 인텐스를 추천할 수밖에요! 헤이즐넛과 바닐라, 오렌지 블로섬, 재스민의 밝고 긍정적인 무드가 얼어붙은 영혼까지 녹여줄 수 있을 테니까요.

“흠뻑 매료된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의 생생한 순간을 구현하려고 노력해요. 그럴 때마다 매 순간 진짜를 담고 싶다는 충동과 열정을 느끼죠. 그 순간을 향기를 통해 되살릴 수 있도록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