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 맥시멀 실키 매트 립스틱 #캐비아. 3.5g, 3만9천원대.

새해을 앞두고 무너졌다. 그간 잘 참아왔던 외로움은 찬 바람이 불어오자 폭발해버렸고, 휴대폰에 데이팅 앱을 깔아 열심히 손가락을 좌우로 휘둘렀다. 그렇게 한 사람과 매칭되어 만날 약속까지 덜컥 잡아버렸지만 문제가 있었다. 바로 손톱. 단정한 스타일이 좋다는 그의 바람과 달리 나의 네일은 아주 길고 새까맣게 반짝였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지만, 왠지 모를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도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부여잡고 옷장과 화장대에 화풀이를 했다. 평소 좋아하는 화끈한 옷과 짙은 컬러의 립 제품을 서랍 가장 깊숙한 곳에 넣고, 깔끔한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투명한 립밤을 바르고 거울 앞에 섰다. 평소의 요란한 모습은 숨길 수 있었지만, 서글픈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다음 날 친구를 만나 하소연을 하자 친구는 피식 웃었다. “누가 뭐래도 난 그 손톱처럼 뾰족한 네 면모를 좋아해. 범접할 수 없는 무기 같잖아.” 날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인정하는 나만의 무기를 버리다니, 실소가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금 화장대를 뒤적이다 맥의 새까만 블랙 립스틱을 꺼내 쓱 발랐다. 스피커에선 카라의 ‘프리티 걸’이 흘러나왔다.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2025년엔 더 당당하게, 더 뾰족하게. 아주 여봐란듯이!

<마리끌레르> 뷰티 에디터 현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