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브스턴스> 속 데미 무어의 모습.

“Remember. You are one.” 코랄리 파르자의 두 번째 장편영화 <서브스턴스>는 젊음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진지하게 탐구한 영화다. 젊음을 갈망하는 주인공의 욕망과 파멸을 충격적인 비주얼로 구현해 명확한 메시지를 강경하게 전했다. 영화에서 보여준, 영원할 수 없는 것을 욕망한 자의 말로는 실로 처참했다. 유사 이래 젊음은 찬미와 열망의 대상이었다. 셰익스피어는 <소네트 18>에서 젊음을 여름날에 비유했고, 존 키츠는 자신의 시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에서 찰나 같은 젊음이 영원히 지속되길 꿈꾸며 시를 썼다. 이렇듯 젊음이 찬미의 대상이 된 데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란 자명한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젊음, 그리고 청춘 가운데 있을 땐 지금의 얼굴과 몸이 영원할 것이란 착각 속에 산다. 소년 같은 마음으로 평생을 산다고 해도 탄력을 잃고 늘어진 피부와 형형하던 안광이 사라진 얼굴을 스스로 마주하면 자신이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는 젊음이 곧 아름다움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젊음을 아름답다고 여길까?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접근해보면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건강한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는 본능이 있는데, 신체적으로 젊을수록 피부 탄력, 머릿결, 에너지 등이 최상의 상태에 가깝다. 이것은 생물학적 건강과 생식력을 나타낸다. 젊음을 대표하는 생물학적 요소로는 충분한 콜라겐과 엘라스틴, 원활한 혈행, 균형 잡힌 호르몬 분비 등이 있고 이는 탄력 있는 피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뷰티의 목적은 태초부터 젊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니만큼 수많은 뷰티 브랜드에서도 이런 부분의 손실을 채우거나 예방하기 위한 제품을 출시한다. 콜라겐 생성을 촉진하거나 항산화 작용을 통해 세포 노화를 방지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얼굴의 대칭과 비율도 젊음과 연관이 있다. 대칭을 이루는 얼굴은 면역력과 건강을 반영하는 지표로 간주되며, 자연스럽게 젊음을 아름다움에 연결한다. 여기에는 심리학적 관점도 크게 작용한다. 외모가 매력적인 사람들은 더 친절하고 유능할 것이라 기대하는데, 이를 ‘헤일로효과(후광효과)’라고 부른다. 이런 이유로 유명인의 이미지에 따라 브랜드에서 광고 모델 기용 여부를 결정하게 되고, 이것이 소비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미와 젊음을 연관시키는 풍조는 고대 이집트부터 존재했다. 당시 미의 기준은 매끈한 피부, 가는 허리, 대칭을 이루는 얼굴이었는데,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피부 보호와 신분의 상징으로 활용했던 화장이 미적 효과가 더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이를 사수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생겨났다. 이집트인은 눈을 보호하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검은 가루인 콜(kohl)로 아이라인을 그리는 화장을 시도했으며, 수메르인은 자연에서 얻은 광물 성분으로 화장품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피부 미용을 위해 산양유와 올리브유, 꿀 등을 섞어 크림을 만들었고, 백랍(비즈 왁스)과 장미수를 섞어 얼굴 크림을 제조하는 방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또한 젊고 균형 잡힌 몸이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즉 아름다움과 선함의 조화와 연결된다고 믿었다. 자연스레 이를 앞세운 사회적 차별도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나이가 들거나 외모가 초췌해지면 정치적으로 밀려나거나 암살당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특히 로마의 황제 네로는 젊고 잘생긴 사람들을 선호해 그 매력을 잃으면 제거했다는 설도 있다. 젊음이 곧 권력의 상징이자 도덕성과 동일시했기 때문에, 지금보다도 더욱 획일화된 외모에 대한 사회적 강박이 강했고, 그 현상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젊음을 향유하고 잘 유지하는 사람일수록 사람들에게 선택받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뷰티 산업은 이런 사회적 차별과 사회현상 속에 더욱 발전했다. 가장 오래된 럭셔리 뷰티 브랜드로 알려진 겔랑(Guerlain)은 1853년, 나폴레옹 3세 부인을 위해 제작한 향수가 황족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고, 최초의 메이크업 브랜드인 맥스팩터(Max Factor)는 브라운관의 컬러 디스플레이가 보급됨에 따라 여배우들을 더욱 아름답게 치장하기 위해 탄생했다. 우리나라 또한 전통적인 화장법을 계승해 1915년, 국내 최초의 화장품 브랜드 박가분(朴家粉, 현 LG생활건강의 전신)을 시작으로 일본과 서양 브랜드가 들어오며 뷰티 산업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6·25전쟁 이후로는 경제성장과 동시에 태평양화학 현(아모레퍼시픽)이 등장했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면서 여성이 화장하는 현상이 일상적이 되었다.

우리 사회가 젊음과 외모에 집착하는 경향은 크게 애쓰지 않아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미디어에서 여전히 광고 모델로 더 젊고, 더 어린 모델을 기용하는 것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모 브랜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탱탱하고 어린 피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사고판다는 오명을 쓸지라도 그 흐름을 멈추기는 어렵다고 한다. 이런 모델을 기용할수록 판매율이 높아지니 소비를 조장한다고 비난받아도 포기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성형, 필러, 보톡스, 리프팅 등 안티에이징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높고, 심지어 얼굴 피부 전체를 끌어올리는 안면거상술이 대유행하고 있다. 안면거상술은 전신마취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성형외과 전문의들도 꺼릴 정도로 위험한 수술 중 하나다. 라이프스타일 또한 강요받고 있다. 물론 건강하게 사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젊게 사는 방식’을 규정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사라지고, 젊음 자체가 상품처럼 소비되는 추세다. SNS를 숨 쉬듯 활용하는 요즘 젊은 세대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익명성 아래 사람들은 누군가의 얼굴과 몸을 향해 거침없이 손가락질을 하고, 화장법과 헤어스타일을 지적한다. 그로 인해 과시적 자기표현이 증가하고, 심리적 안녕은 저해되는 현상을 빚는 것이 지금의 젊은 세대다.

이런 현상에 대한 피로도를 호소하는 움직임도 분명 있다. 보디 케어 브랜드 도브(Dove)는 2004년부터 ‘리얼 뷰티(Real Beauty)’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50대 이상의 일반 여성을 모델로 기용하며 아름다움의 포괄적 개념을 제시했다. 로레알(loreal)과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등 유수의 뷰티 브랜드에서도 이 같은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호주의 대표적인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블랙모어스(Blackmores)는 피부의 표면적 미관보단 효능과 건강에 집중한다. 국내에서도 이런 흐름은 이어진다. 웰에이징을 넘어 슬로에이징 등 다양한 이름을 내걸고 이제는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당장 눈앞에서 이런 변화가 확연히 드러나진 않더라도, 이런 메시지를 발신하는 미디어가 점차 많아질수록 피부에 와닿는 감각과 인식 또한 바뀔 것이란 믿음으로 엉금엉금 움직이고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인식 변화를 미디어 메시지로 확장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단점을 감추기보다 장점을 살리는 것으로, 하나의 표현 수단으로 변신을 꾀하는 등 뷰티를 대하는 방향을 달리하는 것도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뷰티는 젊음을 사수해야 한다는 소명을 안고 태어났다. 꾸미고 가꾸는 행위 없이는 존재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래서 이 업계를 사랑하는 우리는, 오명과 난제를 가진 뷰티를 시대흐름에 걸맞은 자리에 놓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삶의 모든 단계에는 저마다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본질을 오롯이 이해하는 동시대적 접근으로. 젊음을 지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된다.

세계 최초의 메이크업 브랜드 맥스팩터(maxfactor)의 창립자, 맥스 팩터.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의 ‘오 마이 러브’ 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