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워터리스 뷰티의 진화
매일 아침저녁 루틴으로 반복하는 스킨케어. 세안을 마치고 물기가 채 마르기도 전에 미스트를 뿌리고 토너와 에센스, 크림 순으로 발라 피부를 보습한다. 익숙한 방식으로 루틴을 이어가던 어느 날, 이 모든 화장품이 전부 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절대적인 화장품 원료인 물. 제품에 들어가는 전체 포뮬러의 60~90%를 차지하며, 특히 워터 타입 제품은 최대 90%까지 물로 채워진다. 우리 몸을 이루는 주요 성분이라 안정성은 물론 다양한 성분과 쉽게 섞이는 기본 용매이기 때문. ‘아쿠아(aqua)’, ‘워터(water)’ 같은 단어가 제품명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삶에서 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이자 기본을 이루는 물질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환경문제가 대두하는 시점에 유수의 뷰티 브랜드는 고차원적 질문을 던진다. ‘제품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넘어, 이것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그리고 다음 세대에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까?’ 이런 환경적 시선을 담아 새롭게 떠오른 트렌드가 바로 ‘워터리스 뷰티(Waterless Beauty)’다. 말 그대로 물의 함량을 줄이거나 완전히 배제한 포뮬러의 제품을 뜻한다. 워터리스 뷰티는 단순히 ‘물을 덜 쓰자’는 물리적 제안이 아니다. 환경을 고려한 새로운 뷰티 솔루션이자 포뮬러의 혁신으로,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는 새로운 뷰티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새로운 세대의 의식있는 선택
워터리스 뷰티가 등장한 건 사실 몇 해 전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물 부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꾸준히 제기됐고, 일부 브랜드는 제품 포뮬러에서 물 함량을 줄이거나 다른 원료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작은 변화를 시도해왔다. 그러나 이 키워드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젊은 소비자, 즉 젠지 세대의 뚜렷한 소비 가치관이 있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브랜드와 제품을 선택하고, 그 선택이 곧 자신의 세계관을 드러낸다고 믿는 것. 이들은 윤리적,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 소비를 지향한다. 단순히 가격 대비 효율만 따지는 합리적 소비를 넘어서 지금의 선택이 먼 미래까지 어떤 영향을 줄지를 고민하는 세대다. 북미 소비자 트렌드 리서치 기관 레제르(Leger)에서 발표한 ‘내추럴 뷰티 트렌드 리포트(Natural Beauty Trend Report)’에 따르면, 인터뷰에 응답한 여성의 69%가 워터리스 뷰티 제품에 관심이 있으며, 특히 18~34세 젊은 소비자가 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틱톡에서 #Waterless Beauty, #Solid Skincare 같은 해시태그가 유행하는 것이 그 증거. 파우더 타입 클렌저와 밤 타입 크림, 고체 샴푸, 고농축 오일 등 물 함량을 줄인 제품만으로 뷰티 루틴을 구성하는 ‘겟레디위드미(GRWM)’ 영상이 인기다. 워터리스 뷰티는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젠지 세대가 주도하는 아름다움을 가꾸는 의식 있는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워터리스 뷰티 시장의 현주소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Euromonitor International)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 뷰티 산업은 총 1천40만 톤의 물을 소비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헤어와 클렌징 부문에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물 함량이 가장 높은 화장품은 토너나 에센스 같은 스킨케어 제품일 것이라는 일반적 예상과 달리, 샴푸와 보디 워시처럼 씻어내는 방식의 제품이 오히려 많은 물을 포함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피부의 노폐물을 제거하는 계면활성제가 물과 만나면서 풍성한 거품을 만들기 때문. 또한 피부에 자극 없이 유연한 사용감을 위해 넣는, 촉감을 결정짓는 유화제와 점증제 성분이 물을 기반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 카테고리에선 물이 빠질 수 없는 주요 성분인 셈. 하지만 이런 흐름 속에서 워터리스를 위한 대안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고체 샴푸 바, 파우더 형태의 보디 워시, 샤워 폼 등은 불필요한 수분은 줄이면서도 사용감과 효능을 포기하지 않은 대표적 예다. 스킨케어 역시 변화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정제수 대신 식물성 추출물이나 오일, 파우더 등을 기반으로 한 포뮬러를 채택하면서 물 없이도 충분히 효과적인 스킨케어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클렌징 밤, 클렌징 파우더, 스틱 밤, 고농축 세럼 등 다양한 형태와 질감으로 뷰티 루틴에 흥미와 신선한 아이디어를 더하는 중. 대표적으로 러쉬의 배스 밤은 정제수를 사용하지 않고 만든 고체 바이고, 멜릭서 또한 물 대신 식물성 오일과 버터를 첨가해 만든 비건 립 버터를 선보였다. 이렇게 물을 덜 쓰면서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많은 뷰티 브랜드에서 힘쓰고 있다.
트렌드를 넘어 새로운 기준
워터리스 포뮬러는 환경적 가치 외에 실용성과 경제성 측면에서도 다양한 장점이 있다. 수분을 줄이면 미생물 번식의 위험이 낮아지고, 방부제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제품의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다. 또한 고체나 고농축 제형으로 만들어 부피와 무게 또한 줄었다. 실제로 트래블 키트로 많이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 제형을 담을 대용량 플라스틱 용기나 펌프의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친환경 소재로 제작한 리필형 포장으로의 전환도 용이하다. 제조 공정 또한 단순화되어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경제적이다. 이처럼 워터리스 뷰티는 단순히 친환경 실천을 넘어 새로운 제형과 사용감, 나아가 지속 가능성에 기여하는 소비 문화를 함께 제시한다. 무엇을 덜어냈는가보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에 주목하며, 앞으로 뷰티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