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브리스가 ‘겨드랑이가 보이는 민망한 옷’이라는 오명을 벗고, 젠더리스 패션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트렌드에 뒤처질 수 없기에 큰마음 먹고 구매한 장 폴 고티에 슬리브리스. 겨드랑이 쪽 암홀이 시원하게 파인 과감한 디자인은 인생 첫 제모를 시도하게 했다. 그저 ‘털’만 걷어내면 무대 위 아이돌처럼 말끔한 겨드랑이가 나를 반길 거라 믿었지만 웬걸. 성인이 된 후 처음 마주한 털 없는 겨드랑이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어둡게 그늘져 있었다. 새하얀 피부가 자랑이었건만, 이제 그건 옛 영화가 되고 만 것이다. 속상한 마음을 비집고 강렬한 투지가 솟았다. 여름이 지나면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마는 겨드랑이와 착색에 대해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아보고 싶어졌다.


피부 착색의 근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는 마찰에 따른 자극이다. 피부가 맞닿은 부위는 불가피한 움직임만으로도 마찰이 생겨 미세한 상처를 유발하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 체내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 이때 멜라노사이트가 자극을 받아 멜라닌을 과다하게 생성하고, 이 멜라닌이 피부 표면에 각질과 함께 축적되면서 착색으로 이어지는 것. 또 다른 이유는 호르몬이다. 사춘기를 기점으로 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지면, 이는 자연스럽게 멜라닌 생성으로 이어진다. 특히 체모가 나는 부위는 성호르몬 수용체가 많이 분포하기 때문에 멜라닌이 더욱 활발히 쌓인다. 게다가 겨드랑이는 다른 부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부가 얇고 민감해 태생적으로 착색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비운의 주인공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멜라닌과의 결투를 선포했다. 우선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스킨케어로 눈을 돌렸다. 멜라닌 생성 억제에 효과적이라는 비타민 C와 니아신아마이드를 함유한 제품과 각질 제거제를 사서 매일 밤 샤워 후 스킨 패드로 착색 부위를 가볍게 닦았다. 그리고 미백에 좋다는 크림은 물론이고 값비싼 페이스 세럼과 워시 오프 팩을 바르는 정성을 들였다. 결과가 곧바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이 과정을 6개월가량 루틴으로 지속하자 상태가 조금 완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낱같으나마 희망을 본 나는 약 1년 동안 이 루틴을 습관으로 유지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겨드랑이는 만족할 만큼 밝아지지 않았다. 결국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닫고 병원을 향했다.


이미 다년간의 보톡스와 피부 레이저 시술로 단련되어 있었기에 웬만한 시술은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겨드랑이에 토닝 시술을 받기 위해 오프숄더 형태의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만세를 한 자세로 누우니 엄청난 민망함이 엄습했다. 다행히 시술은 15여 분 만에 속전속결로 진행되니 걱정말길! 시술 과정도 비교적 간단하다. 약 5분간 필링제로 겨드랑이 각질을 부드럽게 제거한 뒤, 10분 정도 멜라닌을 파괴하는 토닝 레이저를 받으면 끝이다. 예민한 부위임에도 통증은 거의 없는데, 함께 시술을 받은 동료 에디터 역시 “레이저 제모에 비교하면 전혀 아프지 않았어. 열감만 약간 느껴질 뿐 시술이 진행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니까”라며 동감을 표했다. 확실한 효과를 보기 위해 시술은 5~10회 받는 것이 적당하며, 만족할 만한 변화를 위해선 약 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2회에 걸쳐 받은 결과 아직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지만 피붓결이 한결 정돈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시술 원리는 각질 제거와 멜라닌 관리로 여태껏 해온 홈 케어 방식과 동일한데, 착색된 피부를 원상 복구하는 데 한계를 느낀 이유는 무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셀더영의원 가정의학과 정소영 전문의는 홈 케어로는 예방과 증상 완화 정도만 기대할 수 있을 뿐,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세라마이드, 유레아, 글리세린 등을 함유한 보습제를 꾸준히 바르면 피부 장벽이 강화돼 각화와 착색 악화를 예방해요.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레이저를 이용해 피부 속 깊숙이 쌓인 멜라닌을 파괴해야 하는데,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죠.” 그리고 그는 잘못된 홈 케어 방법이 만연하다며 지적했다. “각질을 제거하는 건 좋지만, 적절한 강도와 빈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세신’ 문화가 있어 보디 스크럽은 강하게 해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보디 스크럽제나 때수건으로 피부에 과도한 마찰이나 자극을 주는 건 오히려 피부 장벽을 무너뜨리고 착색을 악화시킬 수 있죠. 요즘 많이 출시되는 AHA, BHA 같은 화학적 각질 제거제를 주 1회 정도 사용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효과적이에요.” 확실한 효과를 기대하며 한 행위가 오히려 자극이 되어 증상을 악화시키고 있었다니. 그는 면도기와 왁싱 같은 물리적 제모 방법, 레몬과 베이킹 소다 등 민간요법, 그리고 겨드랑이가 꽉 끼는 옷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코 착색을 악화시키는 요소에 대해서도 주의를 줬다. 그렇다면 흔히 피부 미백에 좋다고 알려진 비타민과 니아신아마이드 등을 함유한 스킨케어 제품을 겨드랑이에 바르는 것은 정말 도움이 될까? 정소영 전문의는 이에 대해 “꾸준히 사용하면 멜라닌 생성 억제에 도움을 주고, 항산화 효과로 피부 톤이 고르고 맑아지죠. 하지만 피부 표면이 아닌 진피 등 더 깊은 층에 발생한 착색에는 효과를 보기 어려울 수 있어요. 이런 경우에는 하이드로퀴논과 트레티노인 등 미백 효과가 있는 연고를 처방받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다만 이런 연고들은 낮 시간 동안 자외선 차단제를 필수로 발라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죠” 라고 답했다.


여름철 다이어트 고민은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지만, 착색된 피부에 대해서는 민망해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무관심과 방치 속에 피부 착색은 나날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이는 인생을 살아온 당연한 증표라 할 수 있는데, 부끄러워할 게 뭐가 있는가. 병원 침대에 누워 겨드랑이를 활짝 드러내 보인 나처럼 많은 이들이 용기를 내 피부 착색을 지우고 당당한 태도로 슬리브리스를, 아니 이 여름을 즐기길 바란다.

KIEHL’S 울트라 스쿠알란 바디 크림. 끈적이지 않는 생크림 텍스처로 고보습 성분인 스쿠알렌이 피부에 수분을 공급한다. 250ml, 8만4천원.
L:A BRUKET 퍼밍 바디 세럼. 해양 유래 AHA 성분이 묵은 각질을 부드럽게 제거하고, 식물성 보습 성분이 피부를 촉촉하게 보습해준다. 120ml, 7만7천원.
AĒSOP 루센트 페이셜 리파이너. 화학적 각질 제거 성분인 글루코노락톤을 함유해 피붓결을 부드럽게 정돈하고, 풍부한 비타민이 영양을 채워주는 워시 오프 마스크팩. 60ml, 11만5천원.
INNISFREE 비타민 C 잡티 토닝 패드. 순수 비타민 C를 함유한 패드 원단에 니아신아마이드와 마그네슘 아스코빌포스페이트, 판테놀이 조합된 멀티비타민을 함유한 세럼을 더했다. 60매, 2만8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