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얼굴에 맞는 진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기술이라는 점에서, 초개인화 시대에 더욱 적합한 도구이기도 하다. 다만 이 편의성이 우리의 사고력을 위축시키거나 감정을 무뎌지게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방향성과 사용자의 주체성이 중요할 것이다.

처음엔 무시했다. AI라는 거대한 흐름이 나의 삶에 스며든다는 사실이 싫었고, 약간의 검색조차 스스로 하지 않는 수동적인 삶은 아무래도 내 방식이 아니었다. 이미 지척까지 밀려들어 나를 제외한 모든 지인의 휴대폰에는 ‘챗GPT’가 다운로드되어 있지만, 그마저도 계속 무시했다. 그러다 친한 영상 감독의 사무실에 놀러 가 작업하는 모습을 눈동냥하다가 생각보다 그 영역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번 머릿속에서 구현하기 바빴던 시안이 몇 번의 타이핑으로 금세 눈앞의 현실로 나타났다. 그날 이후 시안 작업을 할 때 활용한 것을 시작으로, 결국 매달 22달러를 지불하며 챗GPT 유저가 되었다.


사실 내 주변만 돌아봐도 챗GPT가 없던 시절에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에 대한 의존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금융 정보 및 비즈니스 뉴스 전문 리서치 기관인 마켓워치(MarketWatch)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58%의 근로자가 업무에 AI를 활용하고 있으며, 3명 중 1명은 거의 매일 AI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2022년 등장한 이후 2~3년 사이에 사용량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 흐름이 이대로 괜찮은지를 두고 벌이는 갑론을박은 여전히 뜨겁다. 부정적 여론도 적지 않은데, 특히 레딧(Reddit)과 X(구 트위터) 유저들 사이에서는 회의적 반응이 두드러진다. 한 레딧 유저는 “챗GPT가 인간의 뇌 활동을 상당 부분 방해하고 있다”라고 언급했고, 한 X 유저는 “챗GPT 때문에 어떻게 일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삭제하기로 결심했다”라는 게시 글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AI가 우리의 일상을 더 편리하게 해주고 있다는 점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다양한 브랜드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AI 서비스를 적극 도입하고 있으며, 특히 인력 부족이 심화되는 시대에 AI의 등장은 산업구조 전반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마치 2차 산업혁명 당시 기계의 등장이 산업 지형을 뒤흔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AI가 생활 전반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AI라는 개념이 단순한 관념으로만 존재했을 때, 우리가 상상한 미래는 우주복을 입은 로봇, 자동으로 머리를 감겨주는 기계처럼 다소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 현실 속 AI는 훨씬 더 친숙하고 실용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상담원과 연결되기 전 챗봇이 응대를 대신하거나, 개인의 취향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제품을 추천하는 등 실생활에 밀착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용자 경험은 친숙한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기 때문에 심리적 거부감도 적다.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뷰티 인더스트리도 이 흐름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지금은 대부분의 뷰티 브랜드에서 AI를 활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중 가장 활발하게 도입된 기술은 개인 맞춤형 제품 추천 시스템이다. 사용자가 스스로 촬영한 사진을 업로드하면 AI가 피부 타입을 분석해 적합한 스킨케어 제품, 파운데이션 셰이드, 퍼스널 컬러에 기반한 메이크업 제품까지 제안해준다. 가장 똑똑하게 활용하고 있는 화장품 기업은 로레알이다. 이들은 테크 기업 모디페이스(ModiFace)를 인수해 자사 브랜드에 통합 적용했다. 그 결과, 랑콤은 웹사이트와 매장에서 립스틱과 파운데이션을 가상으로 테스트할 수 있도록 했고, 메이블린 뉴욕은 숏폼 콘텐츠 플랫폼에서 AR 립 컬러 필터를 활용해 바이럴 광고 효과를 거두었다. 에스티 로더 그룹의 맥, 바비 브라운, 에스티 로더 또한 유사한 시스템을 도입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이 브랜드들은 음성 플랫폼까지 접목해 마치 개인이 뷰티 어시스턴트를 곁에 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AI 기반 맞춤화 서비스는 브랜드뿐만 아니라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도 활발하게 이용되는 중이다. 아마존의 뷰티 부문은 브랜드에 관계없이 입점된 모든 제품을 분석해 소비자에게 최적의 선택지를 제안하며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AI 기반 뷰티 솔루션 기업의 중요성도 더욱 커지는 추세다. 대표적인 예가 대만의 퍼펙트 코퍼레이션(Perfect Corp.)이다. 이 회사는 얼굴 구조, 피부 톤, 눈과 입 모양 등 70개 이상의 특징을 분석하는 AI 페이스 분석 기술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건 물론이고 주름, 모공, 유분, 잡티 등 15개 피부 문제 항목에 대해 약 95% 이상의 정확도로 분석해낸다. 이 외에도 수천 개의 리뷰 데이터를 기반으로 방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어 기술적 신뢰도를 확보했으며, 글로벌 뷰티 브랜드들과도 깊은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중이다. 실제 사용자 후기에도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 레딧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AI 피부 분석을 통해 내 피부 타입을 명확히 알 수 있고, 이에 맞게 루틴과 제품을 추천해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일부 사용자는 추천 제품을 구매해 루틴을 바꾸는 데까지 이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제 AI는 뷰티 산업에서 단순한 보조 도구가 아니라 브랜드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핵심 매개체가 되고 있다. ‘개인의 얼굴에 맞는 진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기술이라는 점에서, 초개인화 시대에 더욱 적합한 도구이기도 하다. 다만 이 편의성이 우리의 사고력을 위축시키거나 감정을 무뎌지게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방향성과 사용자의 주체성이 중요할 것이다. 내가 책과 자료를 구매할 때처럼 기꺼이 승복하지 못하면서도 챗GPT에 22달러를 지불한 것처럼 ‘어쩔 수 없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결국 AI를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AI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편의를 돕는 역할로서 머물러야 한다. 뷰티업계 역시 기술에만 의존하기보다 인간 고유의 감각과 창의성, 감성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자세로 이를 조화롭게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AI는 우리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따뜻한 기술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