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의 저속 노화는 나이를 들면서도 젊음을 유지하고자 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건강한 노화에 대한 수용성을 가지게 됐다. 이제는 시간을 되돌리고자 하기보다는 나이를 ‘잘’ 들어가려는 태도를 가지며, 노화를 싸워야 할 적으로 인식하기보다 조율하고 동행해야 하는 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떠한 개념과 이를 지칭하는 언어, 그리고 대하는 태도는 변화한다. 노화도 마찬가지다. 인류는 언제나 노화를 두려워하며 살아왔고, 이를 이겨낼 방법을 찾기 바빴다. 기원전의 클레오파트라조차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우유 목욕을 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 터.
안티에이징이란 어원의 시초는 1910년대 공업 장비를 반영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고무를 마모 방지 처리해 특허를 받은 캐나다의 ‘안티 에이징 머티어리얼(Anti Aging Material)’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뒤 1955년에 미국의 학자 제럴드 J. 그루먼은 이런 안티에이징의 개념을 인간에게 적용하며 노화의 개념을 학문적으로 확장했고, 1960년부터 실질적인 반노화 시술이 성행하며 안티에이징 열풍이 불었다. 시간이 흘러 2000년대에 도착한 인류는 노화를 대하는 다른 태도를 가지게 된다. 노화를 멈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늦추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 것.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케일럽 핀치와 미주리 대학교의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리클레프스는 심포지엄을 통해 처음으로 ‘슬로에이징’을 소개했다. 이후 이 개념에 대한 연구가 가속화됐고, 인류가 천천히 노화하며 더 오래 그리고 젊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에도 영향을 끼쳤고, 저속 노화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의 활약과 맞물리며 최근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슬로에이징은 대체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 가장 중요하게 살펴볼 것은 식사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좋은 음식의 중요성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은 얼마나 ‘잘’ 먹고 있는가? 저속 노화 식단의 바이블처럼 여겨지는 정희원 교수의 <저속노화 식사법>은 굶기와 폭식, 그리고 온갖 자극적인 맛에 중독된 이들을 위해 ‘MIND(Mediterranean-DASH Intervention for Neurodegenerative Delay) 식단’을 추천한다. 이는 지중해식 식단과 고혈압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대시(DASH) 식단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용어는 생소할 수 있지만 사실 평소 미디어에서 권장하는 식단과 상당히 유사하다. 통곡물과 푸른잎채소를 주식으로 삼으며 베리류의 과일과 견과류를 간식으로 먹을 것, 그리고 패스트푸드와 당을 멀리할 것. 흥미로운 점은 붉은 고기는 일주일에 4회 미만으로 제한하고, 생선 섭취를 주 1회 권장하는 점이다. 고기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긴 하지만, 포화지방 함량이 높아 혈관 건강에 해로울 수 있으며 염증을 촉진할 수 있어 식물성 단백질과 포화지방 함량이 낮은 생선을 권하는 것이다. 심지어 단백질을 많이 먹는다고 무조건 근육이 잘 형성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가속 노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또 다른 포인트는 여태껏 건강한 몸의 적으로만 대하던 지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다. 물론 트랜스지방과 포화지방은 앞으로도 주의해야만 하지만, 불포화지방은 조금 다르다. 지방산의 탄소 사슬 중 일부에 이중결합이 있는, 즉 빈자리가 있는 불포화지방은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고 잠재적으로 주요 질병의 위험성을 낮춘다. 그러므로 올리브 오일과 건강한 생선 기름, 코코넛 오일 등에 들어 있는 불포화지방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추천한 ‘MIND 식단’은 배제하는 식재료군만 인지하고 유동적인 식단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 또한 큰 매력이다.
이런 노력으로 우리는 얼마나 더 천천히 노화할 수 있을까? 통상적으로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신체는 2.5년 노화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일상생활 중 혈당 스파이크로 머릿속이 마치 안개가 낀 듯 멍해지는 브레인 포그가 방지되어 더욱 활기찬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며, 인지 기능 감퇴 예방 효과가 뛰어나 치매 발생 위험을 어떤 약물보다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다. 즉, 이는 단순히 살을 빼기 위해서, 또는 근사한 보디 프로필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전까지 건강하고 온전한 상태로 삶을 살아가는 것과 맞닿아 있다.
이 외에도 저속 노화는 식사는 물론 수면과 운동, 심지어 마인드셋마저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정희원 교수는 <저속노화 식사법>과 <저속노화 마인드셋> 출판 이후 수면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면의 중요성을 과학적으로 다시금 절감했어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단 사흘의 수면 부족만으로도 젊고 건강한 사람의 심혈관계 위험 지표가 상승할 수 있다고 해요.” 그리고 그는 쉼을 게으름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의 변화가 절실하다며 충분한 휴식이야말로 생산성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사회 전반의 과로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평균 근로시간이 긴 대한민국은 이제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있다.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개인의 몫을 넘어 사회 전체가 협력해 바꿔야 할 시점이다. 저속 노화가 지향하는 바는 단순한 유행이나 일시적 건강관리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노년기의 질병과 노쇠를 최대한 늦추고 줄이려는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삶의 전략이며, 결국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할 방향이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은 인류의 오랜 염원이자 본능에 가깝다. 진시황이 영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았듯, 이 욕망은 앞으로도 세대를 거쳐 이어질 것이다. 불로초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지금의 일상 안에서 삶의 속도와 방향을 조율해야 한다. 시장 역시 이 흐름에 발맞춰 ‘저속 노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신제품을 쏟아내며, 관련 분야의 개발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소비자의 반응 또한 뜨겁다. CJ제일제당의 곤약밥과 솥반 등 웰니스 라인의 매출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으며, 전자레인지에 데우기만 하면 되는 수산 기반 즉석식품은 연간 25~30%의 성장을 이뤄냈다. 편의점 브랜드 CU의 닭 가슴살 판매량은 올해 2분기 기준, 전년 대비 33.7%의 매출을 올리며 건강식품의 인기를 체감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식품 산업뿐만 아니라 뷰티 산업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단순히 노화를 방지하기 위한 스킨케어 제품을 구매하는 데서 벗어나 실질적 건강을 생각하는 이너 뷰티 소비가 늘고 있다. 일례로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는 올해 이너 뷰티 시장이 2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며, 이는 2019년 기준 약 3배 가까이 성장한 수치인 셈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및 분석 전문 기관인 HTF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마켓 또한 비슷한 흐름을 보이며, 77억 달러이던 작년 시장을 기준으로 올해 약 7.5%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길게 이야기했지만, 진리는 단순하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잘 먹고, 잘 자기 아니겠는가. 하지만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지키기 못하기 십상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쉬운 것조차 하지 못하게 됐는지 스스로를 탓하기보다 몸과 마음을 위해 아주 작은 일 하나라도 실천해 옮겨보는 건 어떨까. 가장 중요한 건 작은 변화를 통해 몸과 마음의 긍정적 변화를 직접 느껴보는 일. 작은 물결에서 큰 파도로 다가올 저속 노화를 기대하며, 나 역시 집에서 준비해 온 ‘MIND 식단’ 도시락과 함께 헬스장으로 향해볼까 한다.